감히 '남의 편'에게 '힘들다'라고 말했다가...
죄는 미워하지 않되 사람은 미워하겠어요.
22. 10. 24. 남의 편에게 '뺏기지 않을 거예요.'< 사진 임자 = 글임자 >
"자긴 그게 문제야. 무슨 일만 하면 힘들다고 그러더라. 그런 일도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 공무원은 뭐 쉬운 줄 알아? 더 힘들어. 더!"
딸 낳고 아들 낳고 결혼 한지 10년도 더 지났는데 내가 무슨 '밀어'라도 듣자고 넋두리를 그에게 했던가?
내가 언제 '무슨 일만 하면' 힘들다고 말했다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씩이나 범하는 것인가.
"토요일 오후 내내 감 따고 저녁에는 밤늦게까지 감 깎았더니 너무 힘들더라. 감나무 키가 커서 고개가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
일요일 오전에는 시금치 밭에서 일하고, 오후엔 또 감말랭이 만든다고 계속 깎았어. 내가 감을 좋아하긴 하지만 일이 너무 힘드니까 질리려고까지 하더라."
잠자코 듣고 있던 남의 편이 대꾸했다.
"그것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다른 일 아무 것도 못해!나는 뭐 일하기 편한 줄 알아?"
"물론 공무원으로 살기도 힘들지. 그것도 힘들지만 육체노동도 정말 힘든 일이 많다 이거지 내 말은."
"그게 뭐가 힘들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 정도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아무 일도 못해. 사람이 왜 그렇게 약한 소리만 해 갈수록?"
아, 내가 깜빡했구나.
남에게 내 속마음을 얘기하는 게 아니었는데, 차라리 내 아이들에게나 얘기할 걸 그랬다.
적어도 내 아이들에게 저런 말을 했다면
"엄마, 많이 힘들었지? 정말 힘들었겠다."
라고 기특하게 대꾸해 주었을 것이다.
유전자 검사해 볼 것도 없이 내 친자식들이 확실하다는 걸 새삼 느끼겠지.
내심 내가 공무원을 그만둔 사실을 떠올리며 못마땅해 하는 빛을 또 잠깐 떠올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밖에 나가 봐, 공무원 힘든 거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 정도는 장난이야."
등등의 일장연설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내가 공무원이 힘들어서 그만둔 것도 아닌데 말끝마다 '바깥세상은 정말 전쟁이다.'라는 둥 '공무원 정도면 괜찮다'라는 둥 내 앞에서 수도 없이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였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그러면서 가끔
"그래도 자기 정도면 일할 만하지? 일행직 보다야 좀 낫지 않아? 축제에 동원되기를 해, 명절 비상근무를 서기를 해, 산불 비상근무를 서기를 해? 선거도 안 치르지, 면민의 날, 노인의 날, 군민의 날 이런 행사도 없지, 얼마나 좋아?지방직은 걸핏하면 행사에 인력동원에 비상 근무야."
이렇게 얘기하면
"아니 공무원 해 봤던 사람이 왜 말을 그렇게 해? 공무원이 가만히 앉아서 놀고먹는 줄 알아? 공무원만큼 힘든 직업도 없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네 정말. 자긴 일을 안 하니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지?"
이러신다.
참으로 융통성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공무원이시다.
프로크루스테스가 부활하셨나?
그저 자기 편할 대로다,라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속으로만 생각해야 해.
남의 편에게는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게 상책이야.
부부의 대화 시간과 가정의 평화는 반비례 하는 법이니까.
동시에 졸지에 무직인 나를 천하에 세상 물정도 모르고 사는 무지한 가정주부로 전락시키기에 이르렀다.
내 친구가 우려했던 사태가 비로소 벌어진 것이다.
"절대 일 그만두지 마. 너 공무원이라도 하고 있어 돼. 그만두면 너희 남편이 은근히 무시할지도 몰라. 이혼은 안말리지만 의원면직은 절대 안돼."
라고 친구는 말했다.
그러나, 나는 무지한 가정주부가 아니므로 신경 쓰지 않고 그 말은 가볍게 무시하기로 한다.
모태 백수 대하듯 한 번도 직장 생활 안 해 본 사람 취급하는 것이 살짝 거슬리긴 했지만 입 아프게 긴말할 것도 없다.
"어휴, 정말 여기도 힘들구만, 진짜 돈 벌기 힘들어."
이렇게 말하는 그는 현재 교육행정직 7급 공무원이다.
"그래? 그럼 다시 옛날처럼 국가직 시험 봐서 우체국 가서 일할래?"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절대 그렇게는 안 하겠노라 펄쩍 뛰며 심하게 반발을 하곤 하는 그는 과거 국가직 의원면직한 전과가 있다.
그저 육체노동을 오랫동안 해서 몸이 힘들다, 단지 그 얘기만 했을 뿐인데 남의 편은 꼬투리라도 잡은 듯이 꽉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단지 있었던 사실을 말했던 것뿐이다.
공감해주기를 바라고 한 말도 아니다.
그냥 저절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내가 몸살 났다고 파스를 붙여달라고 하기를 했나, 병원에 업고 가 달라고를 했나, 그것도 아니면 몸이 힘들다고 살림을 내팽개치고 아이들을 나 몰라라 하기를 했나?
내가 몸살이 나서 병원에라도 가야 한다면 119 구급대원에게 의지를 했으면 했지 남의 편에게는 결코 아쉬운 소리 따윈 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도 했다.
간헐적 원망.
그렇다, 그는 지금 아직도 여전히 내 의원면직에 미련 혹은 불만이 남아 있다,라고 나는 확신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게, 계속 공무원 하고 있었으면 그렇게 힘들게 일 안 하고 살아도 됐을 텐데."
언제나 마무리는 저 말이었다.
식순 마무리로 틀에 박힌 폐회사를 선언하듯 언제나 한결같다.
그렇다.
그는 한결같은 사람이다.
저렇게 한결같기도 쉽지 않을텐데.
남의 편처럼 한결같은 사람 세상에 또 없습니다.
한결같은 남자, 변함없는 남자와 사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러나, 한결같은 것도 지겨울 때가 있다.
내가 공직생활을 하고 안하고와는 별개다.
일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도 주말이면 논으로 밭으로 헤매고 다녔을 것이다.
내 마음, 홍길동은 알아주려나?
몸이 고되어 힘든 것을 힘들다고도 말 못 하는 설움, 이게 말로만 듣던 백수의 설움이란 말인가.
단순히 별 생각도 없이 힘들었다고 말 한마디 한 대가 치고는 너무나 가혹하다.
다음에 만에 하나라도 이런 상황이 또 발생한다면
"비록 몸이 정말 연체 동물처럼 흐느적 거리고 미친듯이 삭신이 쑤시고 기운은 다 빠졌지만 절대,결코 힘들지는 않아."
라고 하얀 거짓말이라도 눈 질끈 감고 해야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농사짓는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고 현물로 일당을 받아오면 언제나 제일 먼저 맛보는 사람이 남의 편이다.
거기에 내 피와 땀이 한껏 스며있단 말이다.
쌀은 혼자서 땅을 뚫고 들어갔다가 돋아나고 고구마는 때가 되면 알아서 땅에서 뛰쳐나와 압력솥 안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일을 해야 수확물이 있는 법이다.
정신 노동이 힘든가 아니면 육체노동이 더 힘든가 지금 그런 걸 따지자는 게 아니잖아 .
다 나름의 고충은 있는 법이라고.
신성한 육체 노동을 모독하지 말아 줘.
장담하건대, 지난 주말에 만든 감말랭이가 완성되면 가장 먼저 낚아챌 강력한 용의자는 남의 편이 될 것이다.
문 걸어 잠그고 혼자서만 꾸역꾸역 먹어대다가 변비에 걸리는 참변를 당하더라도 감말랭이 속에 박힌 먹지도 못하는 감 씨 하나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배울 만큼 배웠다는 양반이 도대체 왜 이러실까나?
내가 할 말이 없어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남의 편은 내가 본인의 말에 의기소침해졌다고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몹쓸 말을 내뱉은 그 입이 밉고, 그 입이 달린 그 얼굴이 밉고 그 얼굴로 사는 그 사람이 미워진다.
죄는 죄가 없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죄가 있다.
죄는 사람이 짓는 것이니까 말이다.
사람을 미워한 죄로 천국의 문을 두드릴 기회를 놓치더라도 현생에서는, 그 순간만큼은 실컷 미워하고 싶었다.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내 편이 아니라 '남의 편'이어서.
나의 기쁨, 나의 고통.
그는 과연 누구의 편일까.
그 사람은 남이다,
그 사람은 남이다,
오늘도 나는 되뇌인다.
나는 이 가정을 지켜야 한다,
비록 직장은 없으나 내 아이들을 책임져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다.
그리하여 또 '사리' 포인트를 적립한다.
"여기 사리 하나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