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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30. 2024

야심한 밤에, 친자 확인하는 밤에

틀림없는 내 아들

2024. 3. 27.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아직도 출출한데 비빔밥이나 먹을까? 콩나물 있지? 시금치 나물하고 풋마늘 무침이랑 달걀 두 개 프라이해서 참기름이랑 깨 팍팍 넣고 먹으면 맛있겠다."

아무렴, 맛있겠지, 맛있고 말고.

맛있을 예정이지, 확실히.

게다가 그때는 비빔밥을 해 먹기 딱인 황금시간대, 밤 9시 반이었으니까...


"우리 아들은 엄마랑 똑같아.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다고 그러고, 살도 안 찌고. 완전 엄마 체질이야."

그 양반은 종종 그런 말씀을 하신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 딱히 반박할 말이 없다.

오래간만에 맞는 말씀 하셨다.

"우리 아들은 커야 하니까 많이 먹어야 할 텐데. 엄마는 이미 다 커버렸으니까 별로 상관없지만 우리 아들은 앞으로 많이 클 예정이야. 그러니까 더 많이 골고루 잘 먹자. 응?"

결코 입이 짧은 것은 아니지만 평소엔 그리 많이 먹는 편이 아닌 아들은 정말 내가 보기에도 먹는 걸 보면 나를 쏙 닮았다. 어쩔 땐 밥을 한 두 숟갈만 먹고도 배부르다고 한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겨우 한 두 숟갈만 먹었는데 배가 부를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도 그런 경험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뭐라고 할 입장도 못된다.

"우리 아들 그거밖에 안 먹고 괜찮겠어? 조금 더 먹지."

"엄마, 엄마도 한두 번 먹고 배부르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그렇게 강요하면 안 되지. 엄마도 얼마 안 먹으면서 나한테만 많이 먹으라고 하면 그게 말이 돼? 그러면 되겠어, 안 되겠어?"

"안 되겠다."

"그래. 난 배가 부르다고. 배 부른데 억지로 먹으라고 하면 되겠어, 안 되겠어?"

"안 되겠다."

"그렇지? 엄마도 억지로 먹으라고 하면 좋겠어, 싫겠어?"

"싫겠다."

"그러니까 강요하지 말라고요."

"알았다."


솔직히 나도 아들에게 훈계할 입장은 못된다.

입이 짧은 것은 아니지만 평소 그다지 식탐이 있는 편이 아닌 나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더 먹으라고, 조금만 더 먹으라고, 그렇게 조금 먹어서 어쩌냐고 강요하다시피 억지로 먹이려고 할 때가 있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늘 그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이지 동물이 아니야. 사람이 먹을 만큼 먹으면 되지 무조건 많이만 먹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니까."

이쯤에서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에겐 유감없음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하지만 경험상 집에서 기르던 어떤 짐승들 중에는 분명히 배가 부를 것 같은데도 꾸역꾸역 계속 먹기만 했던 부류가 있긴 했었다.


홀쭉이 아들도 아주 가끔 식욕이 폭발할 때가 있으시다.

축구 경기를 보던 밤이었다.

기원전 3,000년 경에 이미 저녁을 먹고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고 안도하려던 찰나였다.

"엄마, 우리 저녁밥 먹었나?"

가끔, 아주 가끔 정말 아들은 뜬금없고 난데없고 느닷없이 뒷북치는 말씀을 하신다.

"우리 아들,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분명히 먹었잖아? 생각 안 나?"

졸지에 나를 밤 9시가 다 넘도록 저녁도 안 차려 준 엄마로 전락시켜 버리려 하다니!

"그랬나?"

"그랬나가 아니라 그랬어. 분명히 먹었다고."

"그런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야. 뭐가 좋을까? 축구를 보면서 먹을 만한 게?"

"뭐가 먹고 싶은데?"

그리하여 한밤중에 야참을 다 대령했다. 우리 집은 야참이 뭔지 모르는 집이다. 야식도 우리 집 사전에 없다. 야참이나 야식이나 어쨌거나 밤에 굳이 음식을 찾아 먹는 집은 아니었다, 그 양반과 내가 가정을 꾸린 이래로.


평소에 저렇게 잘 먹어 주면 좋으련만 간헐적 식욕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때에 과식을 하게 된다.

축구 경기에 과몰입하면서, 흥분하면서 연신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서, 사방팔방에 야참의 흔적을 남기면서 그 어린이는 오래간만에 포만감으로 아주 흡족해했다.

"엄마,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어떡하지?"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은 게 아니라 너무 많이 먹었어. 적당히 먹었어야지. 한밤 중에 이렇게 많이 먹으면 소화도 안되는데."


평소에는 먹는 일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으니 기회만 왔다 하면 대목 잡은 셈 치고 과하게 먹인 과보는 소화 불량을 낳았다. 자고로 식욕 있을 때 먹여 두는 거다. 언제 입맛을 잃을지 모르니 기회를 잡아야지, 기필코.

어쩜, 이것도 나를 똑 닮았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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