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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pr 02. 2024

오늘이 그날이잖아

거짓말하는 세 가지 방식

2024. 4. 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얘들아, 오늘 학교 안 와도 된대."

그 말을 해버렸다.

"정말? 와, 신난다!!!"

"앗싸라비아 콜롬비아!"

철없는 어린  두 것들이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날이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했다.


"엄마, 진짜 학교 안 가도 되는 거야?"

"아니, 가짜로 안 가도 돼."

"그게 무슨 말이야?"

"얘들아, 오늘이 무슨 날이지?"

"어?"

"오늘은 만우절이지."

"어휴, 엄마, 진짜..."

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고, 아들은 내게 원망의 말을 했다.

"엄마, 그런 거짓말을 하면 어떡해? 진짜인 줄 알고 좋아했잖아."

"그냥 엄마가 거짓말 좀 해 봤어. 근데 둘 다 속았네."

"왜 하필이면 그런 거짓말을 해?"

성난 민심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난 정말 별 뜻 없이 한 거짓말이었는데 그 소재가 좀 적당하지 않았나?

"작년에도 속더니 올해도 속네."

나 혼자만 고소해하고 나 혼자만 신났다.

남매는 나의 거짓말에 시위라도 하듯 학교 갈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8시 20분이 넘도록.


'입이 트이는 영어'에서도 말하고 'Start English'에서도 말하고 Easy English'에서까지 말하니까 아이들이 그것을 눈치라도 챌까 봐 조마조마해하면서 냉큼 한다는 거짓말이 저거였다. 하지만 반응은 냉랭했다.

"엄마가 핸드폰까지 보면서 자연스럽게 말하니까 진짜인 줄 알았잖아. 한두 번 거짓말해 본 솜씨가 아닌데? 거짓말을 10년은 한 사람 같은데?"

아들이 얼토당토않은 추측을 하고 말도 안 되는 억측까지 했다.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했으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진짜 자연스러웠어."

그 와중에도 나의 천연덕스러운 태도에 감탄까지 하면서 말이다.

"맞아. 엄마는 그동안 거짓말을 많이 해 봤나 봐. 어쩜 그렇게 잘해?"

과연 이것은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아니면 칭찬을 가장한 비난의 말로 여겨야 하는 건가. 안타깝게도 후자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 아마도 내가 남매에게 거짓말을 한 과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양반이 퇴근하자 아들도 뭔가를 시도했다.

"아빠, 엄마가 돈 벌어 왔대. 얼마였더라?"

아들이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진짜? 엄마가? 어디서?"

그 양반이 솔깃해했다.

음, 걸려들었군.

역시 만만한 상대야.

"진짜지, 엄마? 그치?"

아들의 의도를 알아채고 나는 아들에게 눈을 찡끗하면서 맞장구를 쳐주기까지 했다.

"우리 아들, 그걸 말하면 어떡해. 비밀이라니깐. 아빠한텐 말하지 말라니까."

순진한 아드님은 내 맞장구에 다소 과장된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나친 몸짓과 어색한 말투에 꼬투리가 잡히고 말았다.

둔하기로 둘째라면 서러운 그 양반도 눈치를 채기에 이르렀다.

"에이, 뭐야. 오늘이 만우절이라고 우리 아들이 그러는 거야?"

"아빠가 어떻게 알았어?"

나름 하노라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색해지는 아드님의 연기에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을 리는 없었다.

"우리 아들, 그렇게 어색하게 말하면 어떡해? 초반엔 괜찮았는데 아쉽게도 아빠가 알아버렸네. 솔직히 너무 어색했어."

딴에는 노력한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다 들킨 마당에 더 애쓸 필요는 없으니까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짓고 끝냈다.(고 생각했다, 생각했는데...)


저녁도 멀쩡히 잘 드시고 그 양반이 느닷없이 툭 뱉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동작으로 핸드폰을 귀에 대면서

"네? 복권이 당첨됐다고요?"

아서라, 아서. 내 눈에는 뻔히 보인다.

아들이 무리수 두고 다 들통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지금 저러는 거지?

느닷없이 웬 복권 타령이람.

물론 어린 두 멤버도 전혀 그 양반의 발연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딸이 한마디 했다.

"아빠, 너무 어색해."

"그래, 아빠. 거짓말 티 나는데?"

나도 빠질 수 없었다.

"그만하고 끝내. 어색해서 봐줄 수가 없네."

그 양반, 연기자 하기는 글렀다.


선착순이라고, 선착순.

거짓말도 선착순이야. 먼저 거짓말 한 사람이 임자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고, 아침 일찍 만우절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그나마 약발이 있다고.

새도 사람도 역시 부지런해야 하는구나, 벌레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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