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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03. 2022

어느 행정실의 초코과자 모음 활동

후원받는 생의 한가운데


22. 11. 2. 행정실 직원의 온정의 손길

< 사진 임자 = 글임자 >


"우리가 이제 외벌이라서 다들 어렵게 산다고 생각하나 봐. 뭐만 생기면 나한테 다 챙겨주네."

그냥 잘 챙겨준다고 하지 않고 '외벌이라서'라고 꼭 강조를 하는 동거인이 이 집에 한 명 계신다.

보통의 남자들은 직장에서 무슨 물건이나 음식이 생겨도 귀찮아서, 챙겨가기 좀 그래서 두 손 가볍게 귀가한다는데 우리 집 양반은 그 반대다.

"내가 자기 주려고 가져왔어."

점심 급식에 나온 사과 주스 하나에도 뚜껑에 지문 자국 하나 묻히지 않고 잘 보전하여 안전하게 집까지 모셔오는 분이 그 양반이다.

저런 그의 성향은 결혼초부터였으니 새삼 놀라울 것도 없다.


그의 퇴근길 이바지 역사는 다음과 같다.

처음엔 나도 이게 웬일이니? 싶었다.

"이런 걸 뭐하러 가져왔어? "

"아니 회식하는데 이 간장 게장을 아무도 안 먹어서, 아깝다고 직원이 싸 가라는 거야. 손도 안대서 깨끗한 거니까 괜찮다고 포장해 달라고 하더니 나를 주더라고. 가져가라고."

"아이고, 이 사람아, 그거 그냥 해 본 소린데 속없이 날름 받아왔어?

"그런가? 난 진짜 나 생각해서 주는 건 줄 알았지."

"보통은 그런 거 챙겨주면 한두 번은 거절하잖아. 몇 번 물어보고 거절하면 그 직원이 못 이기는 척하고 챙겨갔을 텐데. 어쩜 그렇게 눈치가 없누?"

"진짜? 정말 그런가? 자기 말 듣고 보니 또 그런 것도 같네. 괜히 가져왔다."

"그리고 그런 게 있으면 실장님부터 먼저 챙겨 드려야지. 제일 나이도 어리고 최하위직인 9급이 그걸 날름 받아 챙기면 쓰겠어?"

"아, 그 말도 맞는 것 같기도 하네. 어떡하지? 나보고 다들 욕했겠다."

이렇게 사회생활을 잘하신다.

"한 번 권한다고 얼씨구나 하고 받아 챙기면 어떡해?"

"난 자기가 간장게장 좋아하니까 자기 주려고 그 생각만 했지. 자기 좋아하잖아 이거."


내가 아니라 전 여자 친구가 좋아했겠지.

헤어진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헷갈리는 거야?

나는 간장 게장이 아니라 양념 게장이라고 그렇게 주야장천 말해 왔는데, 난데없이 한순간 나를 간장게장 변절자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는 까맣고 하나는 빨갛다.

그런데 그걸 그렇게도 구분 못하다니, 무심한 사람 같으니라고.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나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굉장히 중요하고도, 그리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그저 내게 먹일 생각에 그 간장게장을 챙겨 왔다는 데에 나는 그가 나에 대한 애정이란 게 있기는 한가보다 하고 생각했으나, 이내 간장이냐 양념이냐 하는 싱겁고도 아무 의미도 없을 '게파' 분류에 그 마음이 또 깊지는 않은 것 같다고도 가늠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게장' 그 자체였다.


굳이 따지자면 간장게장보다야 양념게장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고 해야 맞겠다.

과연 그것들이 밥도둑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한지 검증하고 확인하는 절차가 급히 필요했으므로 저녁밥을 이미 먹은 후였지만 나는 서둘러 상을 차렸다.

눈치도 없이 냅다 받아온 그 성의를 생각해서다.

도둑이 들더라도 금붙이라고는 달랑 둘이 합쳐 자그마치 거금 50만 원이 넘는 18k 도금 결혼반지가 다였으므로 무서울 게 없었지만, 저 밥도둑의 잠재력은 대단했다.

평소 그리 식탐이 있는 편이 아닌 나는 적당량의 식사를 한다.

그러나 남들은 나보고 적게 먹는다고 한다.

나는

"사람이 먹을 만큼만 먹는 거지. 무식하게 많이 먹으면 그게 짐승이지 사람이야?"

라고 대꾸하기 일쑤였지만 그날 밤 나는 그 도둑과 함께 한 마리의 무식한 짐승이 되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남편은 건수가 생겼다 하면 내게 먹이를 날라다 주었다.

하다못해 가래떡 데이에 전 직원에게 돌린 막대과자 한 봉지라도, 행정실에 들른 떠돌이 상인에게서 얻은 질이 한참이나 떨어진 양말 한 짝이라도, 뜨내기 약장수가 찔러준 정체 모를 각종 즙 같은 것도 아낌없이 내게 쏟아부었다.

매달 급여명세서를 보내주는 월급날보다도 저럴 때의 얼굴이 더 당당하고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귀가하는 그의 얼굴보다  두 손을 더 반기게 되었다.

학습된 기대감, 일종의 그런 것이다.

그에게서 뭔가 받으려고 두 손부터 내민다.

그가 받는 월급보다  두 손에 들린 오만가지가 보람찬 그의 하루 일당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의 기쁨, 나의 고통은 어제저녁 퇴근 때 초코 과자 4 봉지를 두 손 가득 들고 오셨다.

누군가가 행정실 전 직원에게 한 봉지씩 다 돌렸는데 직원들이

"애들 갖다 줘."

그러면서 다 남편에게 자진 반납하더라는 것이다.

요사이 흔한 풍경이다.

과자, 음료수 같은 것들이 생기면 어려운 이웃 돕듯 직원들은 온정의 손길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외벌이 가장의 두 속에 살포시 쥐어준다.

다들 자녀가 장성해서 엄마, 아빠가 가져오는 초코 과자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을 안 둘 나이라서 그러려니 했다.

몇 년 전에 우리 가족도 전주에 가서 들른 가게에서 사 먹었던 것이다.


가장 큰 수혜자는 아이들이 아니라 나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남편에게 보답의 의미로 두 손 무겁게 또 무언가를 들려 보낸다.

지난번에는 청귤청을 만들어 하나씩 포장해서 보냈더니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도 집에 있으니까 이런 것도 다 만들어 주고 좋네."

이런 말도 덧붙였다고들 한다.

그런 건 직장 생활할 때도 종종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곤 했다.

행정실 직원의 열화와 같은 반응은 조만간 이 전업주부로 하여금 정성껏 고구마를 굽게 만들 것이다.

아무리 정이 없네, 각박하네 어쩌네 해도, 아직 우리 사회는 살만하다.

정이 넘쳐 나고 외벌이 가정에 대한 구호물품도 덩달아 넘쳐 난다.


이렇게 정 많은 행정실의 직원들이 어젯밤 간단히 회식을 했다.

남편은 술잔에 입만 대고 왔다고 했으나 나는 해장국을 끓였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거운 해장국 앞에 그가 나를 향해 한마디 던졌다.

"사랑해."

에구머니나,

망측해라!

별소릴 다 듣겠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저러시나.

만취한 다음날 할 법한 소리긴 하다마는.


아마 술이 덜 깬 모양이다.

한 그릇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오늘만큼은 해장국 원 플러스 원이다.

그에 대한 나의 조건 없는 원 플러스 원, 굳이 어젯밤 초코과자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오늘 아침밥상에 미친 영향은 지극히 미미하다고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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