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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01. 2022

남편 왈, "자기는 동네 C급이야, 그것도 변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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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0. 31. 어젯밤에 실습 잘 했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내가 자기를 믿어서가 절대 아니야. 밖에 나가기 그러니까 그냥 자기한테 맡기는 것뿐이야. 진짜 잘할 수 있겠어? 나 사회생활해야 되는 사람인 거 알지? 자긴 출근도 안 하니까 상관없지만 난 출근해야 돼."

"잘할 수 있을지는 나도 몰라. 한 번 해 볼게."


사회생활 잠시 접은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이거?

속세의 타락한 생활을 하는 누군가가 잠시 속세와 연을 끊고 살던 내게 갑질을 했다.

말로는 못 믿는다, 불안하다 하면서도 나가면 100 걸음도 안 되는 곳에 미용실이 널려 있는데도 귀차니즘이 못 미더움을 이긴 순간이었다.

'나한테는 절대 머리 안 맡긴다고 맹세하던 때는 언제고 당장 아쉬우니까 부탁하는 것 좀 보라지?'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내 올가미에 걸려 들었던 때는, 때는 바야흐로 2020년 3월이었다.

'덕분에', 코로나가 크게 한몫했다.


2019년 육아휴직을 했을 때 내 숙원 사업 중 하나가 해결됐다.

이, 미용을 배우는 것이다.

정확히는 커트와 빠마까지만이다.

2달 정도 과정으로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나는 우리 집 최고의 헤어드레서로 거듭났다.(고 나만 혼자 자신했다.)

2019년 9월에 처음 배우기 시작했는데 마네킹 머리만으로는 뭔가가 좀 아쉬웠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유치원생 6살 아들을 대상으로 실습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그마치 그 아이는 유치원 생활을 하는 아이다.

내 마음속에 언제나 소중한 사람, 항상 간직하고 있는 한 사람만을 나는 원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완강히 거부했다.


"내가 왜 자기한테 내 머릴 맡겨? 절대 안 해! 자길 어떻게 믿고? 배운 지 얼마나 됐다고."

"날 사랑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러기야?"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난 직장 생활해야 되는 사람인데. 다른 건 몰라도 이발은 절대 자기한테 안 맡길 거야!"

"절대 안 하는 게 어딨어? 그럴 상황이 되면 할 수도 있는 거지."

"아니, 절대 그럴 일은 없어. 난 그냥 미용실 갈래."

사람이 함부로 확신하는 못된 버릇, 그거 정말 안 좋은 건데...


"내가 싸게 해 줄게. 요즘 이발비가 얼마지? 애들도 15,000원은 하던데? 난 만 원만 받을게."

"이거 완전 날강도네. 무면허에 완전 초보가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받아?"

"가족이니까 그나마 싸게 해주는 거야. 밖에 나가 봐. 만원에 이발할 수 있는 데가 어디 있는지. 시골 동네 미용실도 만원은 넘더라."

"자기가 돈 받을 실력이나 돼?"

날카롭고도 예리한 질문이다.

그러나 새겨듣지 않는다.


"그래, 인심 썼다. 5천 원, 단돈 5천 원! 어때? 할만하지?"

"아니. 그것도 비싸지. 자기 실력을 어떻게 믿고?"

"나도 5천 원 받고 남는 거 하나도 없어. 들인 자본금이 얼만데? 내 수고비, 그리고 뒤처리 청소하는 거랑 그런 거 빼면. 와! 진짜 싸다, 싸! 완전 거저잖아. 나나 되니까 이렇게 싸게 해 주는 줄이나 아셔."


학연, 혈연, 지연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 공정한 이미용 사회를 꿈꾸었으나, 수업도 다 끝나버린 마당에 가지고 있는 마네킹으로는 이미 실습(이라기보다는 실험)은 할 만큼 해버려서 새 마네킹이 필요했다.

아니지, 진짜 사람 머리가 필요했다.

가족 좋다는 게 뭔가?

남편 좋다는 게 다 무어냐고?

"마네킹으로 연습하는 거랑 진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거랑은 아주 달라요. 지금은 배우는 거니까 마네킹으로 연습 많이 하시고 어느 정도 실력이 된 것 같으면 진짜로 도전해 보세요. 자꾸 해봐야 늘어요."

나는 항상 교수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나는 가슴 깊이 새기고 사는 착실한 제자였다.


자꾸 잘라봐야 감이 온다.

자세히 다듬어 봐야 기술이 는다.

나도 그렇다.

(그럴까 과연? 스스로도 의심스럽긴 했다, 하지만 내색은 금물이다. 특히 누구 앞에서는.)

엄마가 불안하면 아이까지 그 마음이 전이된다고 하지 않던가?

불안한 모습을 그에게 보이지 말자.


절대 나한테는 신체발부 수지부모의 어떤 것을 맡기지 않겠다고 얼마나 반항했는지 모른다.

그 반항은, 음, 말하자면 20여 년 전에 시부모님께 했어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질풍노도의 늦둥이'다.

늦되다 늦되다 해도 이렇게까지 늦을 줄이야.

애먼 아내만 곤혹스럽다.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사춘기를 안 겪었다고 무조건 좋아할 일만은 아니란 얘기를 들었다.

나중에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폭발할 수 있다고도 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미용실 가게 그냥 두진 않을 테야. 내 손님 1호로 만들고야 말겠어.'

'미용실에 지불하는 그 만 오천 원 그 금액은  내 수입이어야만 해!'

비록 처음 며칠 동안의 협상은 결렬됐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경험상 안다.

언젠가는 내게 포섭되고 말리라는 것을.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니까?"

"당연히 걱정되지. 내 귀라도 자르면 어떡해? 생각만 해도 무섭다."

오호라, 재협상의 가능성이 열렸다.

그는 이발 중 예상치 못한 신체 손상에 대해 겁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건 걱정하지도 마. 아예 귀를 한 손으로 눌러 버리면 돼. 아니면 무슨 캡이라도 씌워 줄까?"

"그럴 것까진 없고. 조심히 자르면 되지 뭐."

생각보다 빨리 반이 넘어왔다.

박차를 가해야만 한다.

자고로 남편의 마음이 동요할 때 가위를 집어 들라고 했다.

"그래. 조심히 자를게.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공짜로 해 줄게! 특별히 (실험용) 손님 1호 기념으로."

"그럼 진짜 나한테 돈 받으려고 했어?"

90 퍼센트까지 넘어왔다 싶었는데 금전상의 문제로 잠시 마찰을 빚었다.

"특별히 공짜로 해 준다니까. 이번에는."

남편이 변심하기 전에 이발 도구를 펼쳤다.

어차피 이발비에 대한 내 요구 사항은 그냥,

'아무 말 대잔치'였다.

한번 해본 소리였다.


"우와. 이러니까 자기 진짜 미용사 같다."

예로부터 장비에 마음 약한 남편은 금세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왔다.

기회는 이때다.

이발기를 작동했다.

가위를 동원했다.

남편은 이발당하는 내내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


최소 40분에서 한 시간을 걸렸다고 기억한다.

내 실력 탓이 아니라 남편은 '이발하기 참 힘든 모발'이라고 가는 미용실마다 한결같이 얘기한다는 그 말을 적극 인용하고 싶을 뿐이다.

나도

"어때? 괜찮지?"

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기엔 뒤통수의 어느 한 지점이 너무 핫했다.

그야말로 뒤통수의 핫스폿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남편은 (남들은 다들 할 줄 아는) 거울 두 개를 이용해서 뒤통수를 보는 그런 행위를 할 줄 몰랐다.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된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지만 '나의 기쁨, 나의 고통'은 모르는 일이다.

자꾸 고개를 갸우뚱 하기는 했다.


"그래도 아주 못하는 건 아니네?"

아직도 설마 결혼 전의 그 호르몬이 나오는 건가?

예상 밖의 반응이다.

이에 나는 양심도 없이 치고 들어갔다.

"내가 뭐랬어? 어때? 미용실에서 한 것 같지?"

"어, 그게... 미용실은 미용실인데 그냥 시골 동네 변두리 미용실 같아. C급 미용사 정도?"

C급이면 어떻고 동네 변두리면 어떠랴.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첫 이발을 성공리에 마쳤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람 있는 날이었다.

나의 기쁨, 나의 고통, 나의 사람 실습 1호...

나는 남편이 앞으로 '무면허 아내 미용실'의 늪에 빠지고야 말리라는 확실한 예감을 함과 동시에 자신감이 한껏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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