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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2. 2022

누가 남편에게  장미꽃을 주었나?

수능의 반사적 이익.더도 말고 덜도 말고 수능 때만 같아라.


22. 11. 11. 내가 사랑하는 너

< 사진 임자 = 글임자 >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

"농업인의 날이지."

"그거 말고."

"아, 맞다. 큰오빠네 부부 결혼기념일이다!"

"이렇게 사람이 무심해. 자, 받아."

"웬 꽃이야?"

"내가 자기 주려고 사 왔지."

"잘 생각해 봐. 진짜 나 주려고 그런 거야? 다른 여자한테 가야 될 거 잘 못 온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누가 줬어? 솔직히 말해 봐."


사실 장미꽃보다 더 빛을 발하는 이바지에 눈이 갔다.

아울러, 작년 이맘때쯤에도 이런 비슷한 수법에 처음에는 내가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던 일이 있었던 것을 생생히 떠올렸다.

다만 작년엔 찹쌀떡과 장미 한 송이뿐이었는데, 올핸 안개꽃이 수줍게 동행했다.


일단은 하루 전에 '전자문서 지갑'을 운운하며 앙심을 품었던 마음의 유효기간이 하루밖에 가지 않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변덕이 심해서가 아니다.

뇌물에 넘어가서는 더더욱 아니다.

어차피 부부인데 앙심 품고 살아 좋을 일이 뭐 있겠는가.

'OO를 사랑하라.'

사랑해야지, 아무렴.

나는 실천할 것이야.

자고로 아내의 앙심품은 마음은 장미꽃으로 물 베기라 하지 않았던가.


"다음 주 수능 있는데 수능날까지 다 등교 안 하거든.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급식 때 다 돌렸어."

"고 3만 안 나오는 거야?"

"아니, 전교생 다. 그리고 원격 수업한대."

"수능은 며칠 남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인가 보군.


"오늘도 다 수거해 온 거야? 수거율이 좋네?"

"안 받으려고 했는데 다들 애들 주라고 주잖아 또."

"그러게. 자꾸 주면 그것도 부담스러운데 말이야."

"맨날 받기만 하면 좀 그런데."

"자몽청이나 만들어 주지 뭐."

남편은 지시의 말 한마디 언급하지 않았건만 아내는 찰떡같이 알아듣는 재주가 용케도 있었다.

다행히 답례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 전 주문한 자몽이 있었다.

나의 선견지명에 조용히 감탄했다.

가내수공업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남편이나 나나 평소 안 받고 안 주기를 (잠정적) 가훈으로 여길 만큼 다른 이의 호의도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뭔가 생기면(대개는 친정에서 나는 농산물이 9할이다.) 주위에 나눠주지 못해 안달 나 한다.

나눠 주고 싶고 먹이고 싶다.

그런데 언젠가 그런 말을 들었다.

'주고자 하는 그 마음도 내 욕심일 수 있다.'

나는 주는 입장이니까 오만하게도 언제나 '베푸는 입장'이라고만 착각하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저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 알전구에 불이 탁 켜지는 것이었다.

내 욕심에, 나 좋자고 벌인 일이다.

그래서 이젠 너무 내 욕심만 내세우지 않기로 했다.

상대는 원하지 않는 호의, 그건 전혀 반갑지 않은 손님일 뿐이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은 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짐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더 줄게 없으므로 어제 남편이 받아 온 이바지들을 고스란히 되돌려 보내는 그런 깍쟁이 같은 행동은 절대 하지 않겠다.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네 식구의 피와 살로 엉겨가고 있을 터였으므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직원들의 성의를 생각해서이다.

성의를 무시해서는 안되리라.

생각만으로도 야박하다.

성의는 고맙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크림치즈, 초코.

어쩜,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맛들이다.

한 두 개도 아니고 이 정도면 나도 새벽같이 일어나 수능을 치러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서를 내지 않았으므로 시험을 보러 갈 수가 없다.


아마도 아들의 주말 일기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자몽청을 만드는 장면이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아들의 엄마 아빠는 장미꽃의 출처에 대하여 2차 진실 공방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순순히 자백하게 들 수 있을까?


* 수험생 모두 건강히 지내고 수능날 제 실력 마음껏 발휘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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