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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15. 2024

무식자가 기술자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

단 10초

2024. 7. 14.

<사진 임자 = 글임자 >


"기술의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이 뭐라고 그러는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양반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보고 뭐라고?

넌, 나에게 목욕값을 줬어, 또!


"설거지 벌써 끝났어?"

내가 20분도 채 걸리지 않은 장 보는 시간에 그 일이 다 끝났을 리가 없어서 물어본 말이다, 그 양반에게.

"아, 맞다. 전원을 안 켰다."

식기 세척기 '돌려 주겠다'고 큰소리 뻥뻥 쳐 놓고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나는 그 꿍꿍이를 아주 잘 안다, 물론) 일요일 아침부터 호들갑을 떨더니, 전원도 안 켰단다.

"내가 스위치는 올려놨어.(=댁은 단지 전원 버튼만 누르시면 된답니다.)"

이 한 마디 하고 나는 집을 나섰다.

그런데 잠깐 장을 보고 온 사이 식기 세척기가 떡 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나는 한 번도 그 식기세척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전자 제품 무식자에 가깝지만, 그동안 그 양반 몰래 축적한 나만의 신빙성도 없는 스몰 데이터에 의하면 그 식기 세척기가 본연의 임무를 다 마치기 위해서는 최소한 1시간 정도는 걸린다는 사실 쯤은 안다.

그런데 고작 20분 남짓한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설거지가 다 끝났을 리가 없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이상하다? 설거지 끝나려면 시간 좀 걸리잖아. 설마 전원 안 켰어?"

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그 양반은 자수하여 광명을 찾았다.

"깜빡했다. 전원을 안 켰네."

그러더니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가 벌떡 일어나셨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무사히 설거지가 끝날 줄 알았다.

시장 봐 온 것을 냉장고에 정리하고 있는데 평소와는 다른 그 양반의 다른 움직임이 내게 포착됐다.

"뭐 해? 안 돌려?"

오늘따라 저 양반이(물론 평소에도 자주 그렇다고, 많이 허술하다고 느껴왔다는 점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지만) 왜 저렇게 허술한가 싶었다.

"아니, 문이 안 닫혀."

이러면서 자꾸 식기 세척기 앞에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문을 밀어 보고 당겨보고 야단법석이었다.

"뭐가 문젠지 모르겠네. 왜 이러지?"

혼자 저렇게 구시렁거리며 쩔쩔매고(내 눈에 쩔쩔매는 걸로 보였다. 아니어도 쩔쩔맸다고 내 마음대로 믿는다) 있는 걸 보니 답답해서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출동'했다.

"뭐가 걸렸나 보지. 다시 잘 봐봐."

"아니야, 걸린 건 없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숟가락 위치를 좀 바꿔 봐. 넣어다가 다시 빼 보고."

"그래도 안돼."

"옛날에도 그랬잖아. 억지로 닫으려고 하지 말고 다시 잘 봐봐. 뭔가 이상이 있으니까 안 닫히겠지."

"진짜 이상하네. 또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안 되겠다.

나만의 고급 영업비밀을 방출해야겠다.

"그럼 스위치를 껐다가 다시 켜 봐."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내가' 저렇게 해서 바로 문이 닫힌 기억이 났다.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단순히 전기랑 관련된 게 아닌데. 이건 문이 안 닫히는 거라고."

이 양반이 또 이상한 데서 고집을 피운다.

"그거야 모르지. 전에도 그런 적 있잖아. 한 번 해 보라니까?"

"그거랑은 상관없다니까?!"

"해 보고나 말해."

"이 사람이! 기술의 '기역'자도 모르면서 그러네. 전기랑 문 안 닫히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뭣이라?

이 양반이 또 기어이 선을 넘으시네?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가만히 못 있어!

아무렴, 못 있고 말고!

스위치를 한 번 꺼버릴 다.

그리하여 나는 애먼 스위치를 껐다가 다시 켰다.

"다시 한번 전원 켜고 뚜껑 닫아봐."

나는 자신감에 넘쳐 그 양반에게 '명령'(은 아니지만 권유의 탈을 쓴 강요)를 했다.

"그거랑은 상관없다니까 그러네."

그 양반은 끝끝내 내 말은 흘려 들었다.

"한번 해 보면 되잖아. 해 봐, 그냥."

아니나 다를까.

입을 활짝 벌리고 있던 식기세척기는 조신한 새색시마냥 얌전하게도 입을 다물었다.

드디어 문이 닫혔다.

"거봐. 닫히잖아. 내가 스위치 한번 껐다가 켰어."

나는 짐짓 의기양양해져서 한마디 했다.

"우와, 당신 기술자다. 완전 기술자네. 얘들아, 너희 엄마 완전 기술자야!"

하여튼, 이 인간이 정말!

기술자의 뭣도 모른다고 타박할 땐 언제고 그새 호들갑이람?

도대체 내 말만 죽어라 하고 안 듣는 건 또 무슨 심보람?

"아까는 '기역'도 모른다며?!"

뒤끝은 없지만 그럴 때만 기억력이 좋은 나는 따졌다.

이런 건 좀 따져줘야 한다.


단순히 스위치를 껐다가 켜는 것 말고는 달리 뾰족한 수도, 특출 난 비법도 모르는 나는, 진정한 기술이 과연 무엇인지나 알고 '기술'씩이나 들먹이며 나를 순식간에 기술자로 만들어버린 그 양반은, 우리는, 우리는 기술자인가 '덤 앤 더머'인가? 저게 기술자라고 찬사까지 받을 일인가, 과연?그 와중에 내가 '덤'이고 그 양반이 '더머'에 해당할 것이라고 우기고 싶은 나는 단 10초 만에 전기 무식자에서 (나이롱) 기술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약 한 시간 후 열일한 식기 세척기는 할 일을 끝내고 다시 입을 활짝 벌릴 수 있었다,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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