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담배를 태워 물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유유자적하고 있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걸려 온 전화에 저만치 떨어져 호탕하게 웃으며 요란하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다소 산만한 근무 환경에 처해진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서로 기분 상하지 않고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Would you please~?'
완곡어법을 써야겠지?
'Please~'
이렇게 먼저 시작해야 하나?
정작 국적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세계 공용어만 믿고 주어와 동사와 목적어를 어지럽게 머릿속에서 조합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 진짜 못쓰겄다. 일은 얼마 하지도 않고 다 해찰만 하고 있다야. 다음에는 저 사람들 부르지 말아라."
일일 작업 반장이 된 엄마는 아들에게 일정한 간격으로 중간보고를 성실하게 하고 계셨다.
지난주, 엄마와 나는 원정 날품팔이를 갔다.
메뚜기도 한철이고 나의 노동력 제공도 지금이 대목이다.
내년 봄에 수확할 양파를 심을 날이 며칠 앞으로 닥쳐와 모종을 뽑아야 하는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오빠네가 구원 요청을 해 온 것이다.
어스름한 새벽부터 부산을 떨어 부연 안개를 헤치고 아침 8시가 채 되기도 전에 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서 너 명의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진한 갈색 피부와 새하얀 눈동자와 그보다 더 하얗다 못해 인위적으로까지 보이는 희고 가지런한 치아를 한 사람들이 '정답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우리가 도착하자 그들은 일제히 흩어졌고 시끌벅적하던 공기가 일순간 사그라져 오히려 침체된 듯 보였다.
대신 한쪽에서는 가만가만 주거니 받거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화가 이어졌고, 다른 쪽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이 이내 흘러나왔다.
엄마는 처음부터 못마땅해하셨다.
"아무리 주인이 없어도 그렇지 저렇게 대충 일하면 못쓰지."
그날의 일일 고용주인 셈인 오빠는 다른 일로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안돼! 안돼! 그렇게 하면 못써! 이렇게 해야지 살살."
상대가 외국인이라는 점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엄마는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훈수를 두셨다.
과연 그들은 시시때때로 한국인 할머니가 정정하고 지시하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게 되고 말 것 같은 행동들을 일삼고 있었다.
"처음 온 사람들인갑다. 아이고. 저렇게 하나씩 일일이 뽑고 있으면 어느 세월에 다 뽑을 까나. 뭔 일을 저렇게 못한다냐."
그들이 알아들을 법하지 않은(어디까지나 엄마와 나의 생각일 뿐) 한탄과 비난의 말 끝에 또다시 엄마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못쓰겄다. 일을 하나도 못하는구만. 순전히 이야기만 하고 놀고 있다."
이쯤 되면 나도 과연 엄마의 그 주장이 너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가 하고 확인을 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엄마가 그렇게 말할 법도 했다.
그들이 고용주이고 우리가 고용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엄마와 나는 심하게 열심히 일을 했다.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는 쉴 틈 없이 일을 했으나 아무런 연고도 없고 단지 하루 고용된 신분일 뿐인 그들은,게다가 귀찮게 감시하고 간섭하는 사람도 없으니 느긋했다.
그러나 고용주의 엄마가 그날 하루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급파되어 그 사건 현장에 계셨다는 것을 그들이 알 리가 없었다.
나는 도대체 그 가사의 내용은 무엇일까 궁금하지도 않은 외국 가요에 질 세라 '모닝스페셜'을 크게 틀어 나의 근무 환경의 질을 높였다.
어느 순간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들이 밭 귀퉁이 한쪽으로 모였다.
"외국 사람들은 밥 먹을 때가 되면 말도 않고 알아서 밥 먹는다고 하더만 진짜 그런다잉."
그 생경한 풍경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소문으로만 듣던 일이 사실로 드러난 현장에 우리는 함께 있었다.
"아침밥은 8시에 먹는다고 하더만 오늘은 어째 늦었네."
엄마는 그 와중에도 그들의 때늦은 아침 식사에 관심을 보이셨다.
"엄마, 밥 먹어."
갑자기 그들 중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응. 먹어, 먹어. 나는 진작 많이 먹고 왔어."
엄마가 숟가락으로 밥 뜨는 시늉까지 해 보이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엄마, 자기들 밥 먹는다는 소리지 엄마 보고 밥 먹으라고 한 소리 아닌 거 같은데?"
"아니여. 나보고 밥 먹으란 소리여."
"아닌 거 같은데. 나 밥 먹을라요, 그 말 같은데?"
"아니여. 나 밥 먹으라고 안 하냐. 엄마 밥 먹어, 이렇게 말하는 거 못 들었냐?"
나는 그 말이 결코 엄마의 아침밥을 챙겨주려는 의도에서 한 말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에게 난생처음 본 할머니의 아침밥은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라고.
아울러 먹을 땐 같이 먹고, 행여라도 빠진 사람은 살뜰히 챙겨주는 우리네 정서와는 너무 판이한 그들의 태도에 문화충격까지도 느낄 뻔했다.
한국의 '우리'를 중요시하는 집단 문화가 낯설게까지 다가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다시 복귀했다.
배가 든든해진 탓일까, 식사 전 보다도 더 느슨해졌다.
힐끔힐끔 그들의 움직임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던 내게도 눈에 띄게 그것은 확실했다.
엄마가 그들의 근무태만을 아들에게 고스란히 보고하면 나도 옆에서 한 소리를 보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니여 아니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 이렇게, 응? 이렇게!"
엄마의 참을성은 한계에 도달한 게 분명했다.
그러나 상대는 히죽히죽 웃으며 보란 듯이 엄마의 말을 무시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나같이 이렇게 해야 된다니까! 요러고 요러고."
엄마는 화가 치민 것 같았다.
"응. 엄마, 알았어. 알았어."
그들 중 한 명이 대꾸했다.
너무도 정확하고 또렷한 한국어 발음에 엄마와 나는 뜨악해졌다.
동시에 벌써 기초노령연금을 4년째 받고 있는 어르신에 대한 예의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외국인의 생각지도 못했던 반말에 잠시 멍해졌다.
하긴 그 상황에서 높임말을 운운할 것은 못됐다.
"외국까지 와서 고생하고 일한다고 느이 오빠는 저 사람들한테 만원씩 더 준단다. 그 돈은 다 그 사람들 것이제. 그런께 그 돈 주면 외국 사람들이 '사장님, 최고' 이런다고 안 하냐."
엄마는 비밀스러운 고백을 털어놓듯 언젠가 밭에서 비닐을 씌우고 있는 그들을 등지고 내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요새는 하루 일당이 16만 원까지도 올랐다고 하더라. 농사일이 바쁜께. 그래도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한단다. 순전히 외국인들이여. 한국 사람은 있도 없어."
경악스러운 일당 얘기에 나는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그래도 그 돈 받아봤자 중간에서 소개해 주는 사람들이 다 받아 챙기고 저 사람들한테는 얼마 떨어지지도 않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느이 오빠가 한 번씩 돈을 더 챙겨주는 거여. 그것은 그 사람들이 다 가져갈 수 있은께. 나는 자꾸 그러믄 못쓴다고 그랬는디 말을 안듣는다. 주다가 안 주면 또 서운해 하제. 안 그러겄냐?"
인정 있기로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오빠는 타국살이의 고단함에 충분히 지친 그들을 위해 한 번씩 웃돈을 쥐어주고 있단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빠네 일을 서로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오빠네 일터는 그들에게 언제나 핫플레이스다.
농촌의 인력 부족과 상상을 초월한 임금과 다문화 근로자들을 만난 그날 외국인 근로자의 '조용한 퇴사'를 보았다,고 나는 느꼈다.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힘들게 일해봐야 고작 그들에게 쥐어지는 돈은 몇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 10만 원이 훨씬 넘는 일당 소리를 들었을 때,
'저렇게 몇 년만 한국에서 일하고 가면 목돈 금방 만들 수 있겠다.'
싶었던 세상 물정 모르는 내 생각이 어디까지나 얼토당토않은 오해였음이 드러났다.
그 말을 들으니 손놀림이 민첩하지 못했던 그들의 태도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어차피 그들은 일당으로 품삯을 받는다.
그 품삯의 8할은 탐욕스럽고 인정머리도 없는 남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을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몰랐다.
세상 어느 곳, 어디에서나 곰에게 실컷 재주를 부리게 하고 따로 재미를 보는 왕서방들은 득시글득시글한 법이니까.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부 사람들의 얘기다.
일한 만큼의 대가가 주어지기는커녕 터무니없는 일당은 성실히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꺾어버리는데 크게 한몫을 하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조용한 퇴사'란 것은 개인의 태도의 문제이지 국적의 문제가 아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이는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박범신 소설가의 '나마스테'를 기억해 내고 '카밀'을 떠올렸다.
처음 대면했을 때 반짝이던 것은 미소가 아니라, 불합리한 처우만큼이나 짜디짠 눈물을 잘못 본 건지도 모르겠다고 불현듯 나는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