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앉아 계시던 아버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어머님을 따라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셨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웃음꽃이 피어나 웃음바다가 되었다.
자식, 며느리, 사위, 손주들 모두 모두 흐뭇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보았다.
어머님 생신을 맞아 백만 년 만에 외식을 했다.
아버님이 바깥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셔서 그동안 거의 시가에서 함께 밥을 먹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둘째 시누이가 밖에서 외식을 하자고 제안했고, 그 양반도 그 기회를 덥석 물었다.
아버님은 아무리 반찬이 없더라도 그냥 집에서 먹는 걸 더 선호하시는 분인데 과연 아버님이 찬성하실까 하면서도 이번은 아버님 생신이 아니라 어머님 생신이니까 어머님만 좋다고 하시면 그대로 밀고 나갈 작정이었다.(그럴 작정이었지만 시가에서 별 영양가 없는 며느리는 그냥 속으로만 단단히 마음먹었을 뿐이다 물론. 시가 식구들 하는 일에는 그냥 잠자코 보는 편이다. 1차적으로는 시부모님의 자식들에게 맡기고 대개는 그들의 의견을 따른다)
"아버님이 같이 나가실까?"
조금은 불안해하면서 나는 그 양반에게 슬쩍 물었다.
"가시겠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 양반은 거창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번 엄마 생신 때는 우리가 밥 사든지 하자."
라면서 말이다.
"그래. 그러든지."
다른 일도 아니고 부모님 생신에 자식이 한 끼 정도 대접하는 일은 할 법한 일이니까.
둘째 시누이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먼저 식당에 도착했다.
시누이가 예약한 곳이었는데 음식 맛도 괜찮았고(나는 음식 맛을 잘은 모른다) 그날의 주인공인 시어머니도 맛있다며 잘 드셨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손주들을 챙기는 일도 잊지 않으셨다.
가족들 모두 거의 식사가 끝날 무렵 잠깐 나갔다 오시겠다던 아버님이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안 돌아오셨다.
"한번 나가 봐. 아버님 아까 나가셨는데 아직도 안 오셨어."
아이들 챙기랴 내 앞에 음식 덜어주랴 정신없던 그 양반은 아버님이 안계신지도 모르는 눈치다.
"아, 그랬어? 알았어."
아버님을 모시고 온 그 양반이 이내 말했다.
"아빠가 계산하셔 버렸어. 우리가 사려고 했는데."
어쩐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싶더라니.
그래도 어머님 생신이니까 아들이 대접해 드리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한 발 늦었다.
그때였다.
어머님이 큰 소리로 거기 모인 대중을 향해 말씀하셨다.
"그랬어? 잘했네. 사랑해."
느닷없는 어머님의 사랑 고백에 우리는 당황스러울 시간도 없이 웃음이 나왔다.
몇 번이고 어머님은 고백하셨다.
그리고 또 몇 번이고 아버님을 향해 크게 크게 하트를 만드셨다.
아버님도 연신 얼굴에 웃음이 만발한 채 어머님께 하트로 답하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트 만드시네."
팔순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와 내일모레 팔순이 되어가는 할머니가 아이들은 신기한 듯 바라보며 웃었다.
인원 수도 많아서 금액이 꽤 나왔을 텐데 아버님이 한 턱 크게 내셨다.
"우리 손주들이랑 다 이렇게 모여서 밥 먹으니까 좋다. 고맙다."
어머님이 생신 기념 한 마디를 하셨고 내게는 갈 때까지 같은 말을 하셨다.
"며늘아, 와 줘서 고맙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어머님 생신인데 당연히 와야죠."
어머님 품에 안긴 채 나는 그 순간만큼은 그 양반과 별개로 어머님께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어머님, 합격이 아범이 이번에 대접해 드리려고 했는데 못했네요."
"무슨 소리, 와 준 것만도 고맙지. 네가 고생하고 사는 거 다 안다."
어머님은 그런 분이시다.
나는 저런 말 한마디에 그동안 어머님의 아들에게 쌓인 응어리 같은 게 스르르 녹는 기분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배고 낭비 같은 건 절대 하시지 않는 아버님인데(하지만 우리에겐 언제나 인심이 후하신 분이다) 어머님 생신에 그런 거금을 쓰셨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움과 동시에 민망하기도 했다. 우리가 대접하려고 마음먹었으니 더 서둘러서 계산을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시골에서 농사 지으시면서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 때문에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 친정에서도 그런 일은 종종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생신이면 번갈아 가며 두분이 크게 한턱 내시곤 한다)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