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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파업 덕분에 주먹밥 먹겠네
떡 본 김에 제사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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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임자
Dec 6. 2024
2024. 12. 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금요일에 우리 급식 안 준대."
"그래?"
"응."
"학교에서 뭐 보냈다는데?"
"아, 그게 그거였나 보네. 엄마가 깜빡했다."
며칠 전에 학교 급식 변경 알림이 온 적이 있었다.
내용은 보지 않고 제목만 보고 그냥 단순히 급히 급식 내용이 바뀌는 것인가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금요일에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하지 않으니 그와 관련해서 알림을 보내 준 것이었다.
총파업을 한다던가?
최근 몇 년 간 일 년에 한 번씩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급식을 안 주면 다른 걸로 대체해서 주나? 안 주면 도시락 싸야겠다."
그 말을 하며 급히 학교에서 온 알림을 살펴봤다.
"근데 엄마, 혹시 그 대체식이 모자라거나 알레르기가 있으면 집에서 따로 도시락 싸 와도 된대."
여태 가만히 잠자코 있던 아들이 내게 속보를 전했다.
"아, 그랬어?"
아닌 게 아니라 맨 아랫 줄을 읽어보니 그런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항상 그 정도 먹으면 배 부르지 않아? 모자라진 않지?"
"응. 그 정도면 괜찮지. 근데 내 친구들은 이것저것 싸 올 거래."
"그래? 그 대체식이 좀 모자라거나 알레르기가 있으면 따로 챙겨 와도 된다고 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아들은 잠시 침묵했다.
나는 살짝 불안해졌다.
"어머니, 평소엔 도시락도 안 싸고 편히 살았는데 이참에 도시락 한 번 싸 주시지요?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그 정도도 못하시겠습니까?"
라는 말이 아들 입에서 나올까 봐 은근히 긴장했다.
그런데 복병은 느닷없는 곳에서 튀어나왔다.
갑자기 딸이 말했다.
"엄마, 나 금요일에 준비물 있어. 급식을 안 먹으니까 혹시 모자랄지 몰라서 주먹밥 만들기로 했어."
"어? 갑자기 무슨 주먹밥이야?"
"실과 시간에 주먹밥 만들기 한대. 대체식만 먹으면 모자랄 수 있으니까."
"아, 그래?"
"넌 뭐 가져가면 돼?"
"난 밥이랑 양푼이랑 비닐장갑이랑 숟가락."
"밥은 얼마나 가져가야 되지?"
"햇반 두 개 반 정도면 될 거라는데?"
"그럼 양이 어느 정도일까?"
감이 오지 않았다.
100년에 한 번 햇반을 먹을까 말까 한 나는 두 개 반 정도면 어느 정도 밥을 챙겨야 할지 고민까지 됐다.
내가 보기에는 그 정도 대체식이면 괜찮아 보이던데, 하긴 한창 크는 아이들이니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실과 실습 시간이 있으니까 마침 급식도 안 하고 해서 주먹밥을 만들기로 했나 보다.
"뭐야? 누나는 왜 주먹밥 먹어?"
아들이 갑자기 관심을 보이며 끼어들었다.
"엄마, 나도 그럼 주먹밥 싸 줄 거야?"
"아니, 누나는 집에서 주먹밥을 싸 가는 게 아니고 실과 수업 시간에 만들어 먹을 거래. 친구들이랑 각자 재료 맡아서 챙겨 온대."
"누나는 좋겠다."
아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제 누나를 부러워하던지 하마터면 나는 아들에게 백지 수표를 날릴 뻔했다.
"아들아, 걱정하지 말거라. 누나만 주먹밥 먹으란 법 있다니? 이 엄마가 너 섭섭하지 않게 집에서 실컷 주먹밥을 만들어 주마!"
라고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물론.
게다가 아들이 행여라도
"엄마, 누나는 주먹밥 먹는데 나만 안 먹으면 안 되지. 나도 주먹밥 만들어 줘!"
라고 다짜고짜 주먹밥을 주문할까 봐 또 한 번 긴장했다.
"우리 아들, 설마 엄마한테 주먹밥을 만들어 달라고 하지는 않겠지?(=주먹밥 정도는 이제 스스로 만들어 먹을 나이야.)"
"걱정하지 마. 안 그래. 나는 대체식 먹으면 그 정도면 돼. 배 부를 거야."
"그래. 일단 그거 먹고 와. 먹고도 배고프면 집에 와서 밥 먹으면 되지."
학교에서 급식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철없는 어린것들, 그저 단순히 색다른 메뉴를 맛본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덤으로 주먹밥까지 먹을 수 있다며 기대에 들뜬 어린것들.
딸은 주먹밥에 넣을 가장 중요한 재료인 '밥'을 맡았다.
항상 하는 밥이지만 친구들과 같이 먹게 될 밥이니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햇반 두 개 반이면 도대체 얼마나 담아 줘야 하는 거지?
모를 때는 그저 일단 넉넉하게 싸는 게 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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