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딸의 취학 통지서를 욕심냈다.

(취학 통지서에) 학습된 무기력

by 글임자


22. 12. 14. 겨울에 눈이 오듯, 때가 되면 다들 입학하는 걸 뭐...


< 사진 임자 = 글임자 >


"올케는 합격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긴장도 안돼?"

"제가 학교 가나요? 애가 가는 거지."

"그래도 나는 우리 아들 입학할 때 엄청 신경 쓰이고 그러던데, 올케는 애들 서넛은 키워 본 사람 같아, 가만 보면?"

"초등학교 뭐 있나요? 그냥 입학하면 되는 거죠. 남들도 다 보내는 거."

"난 취학 통지서 받고 정말 기분이 이상하더라. 올케는 어때?"

"아유, 형님. 취학 통지서가 취학 통지서지 뭐 별 건가요? 제가 일하면서 질리게 만들고 본 게 취학 통지서예요."


2018년도에 나는 취학 아동 담당자였다.


2018년 하반기 인사이동이 있었고 나는 민원실로 배치됐다.

가자마자 사무 분장표를 보고 '취학 아동 업무'를 내가 맡겠다고 욕심을 냈다.

나의 근무지가 집 근처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은 전임자가 하던 업무를 그대로 물려받아 후임자가 이어가는 편이지만 나는 이듬해에 첫째인 딸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내 자식의 취학 통지서는 엄마인 내가 만들겠다.'라고 굳게 결심했다.

그러면 적어도 하반기에 특히, 10월부터 12월 말까지는 바짝 취학아동 업무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덤으로 생기는 것이다.

명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은 익히 들어왔던 터라 그러려니 했지만 취학통지서가 탐나서 제일 먼저 그것을 쟁취하고자 사무 분장표까지 정정해 가며

일거리를 늘리는 엄마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로.


솔직히 취학 아동 업무는 눈에 띄게 무슨 일을 한 것 같은 티도 전혀 안 나고 자질구레한 일거리만 많은 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취학 아동 업무를 하나 더 받고 내 사무 분장표에 있던 업무 하나를 다른 직원에게 넘겼었던가. 그냥 내 일거리를 하나 더 추가한 셈이었던가?

그곳에서의 (다음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될) 취학 아동은 450명가량이었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취학 통지서를 만들어 발송하는 것은 별개로 하고 추가적으로 안내문이며 예방접종 관련 문서까지 곁들여 작업을 해야 하므로 넉넉잡고 한 달 전부터 대비를 해야만 한다. 내가 맡은 업무가 그것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여 틈틈이 준비를 해 놓지 않으면 제때에 취학 통지서가 발송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10월 31일 기준으로 취학 아동 명부를 작성해야 하고 취학 통지서는 12월 15일까지 각 대상 가정에 전달돼야만 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전, 출입이 널뛰듯이 있고, 조기 입학자와 취학 유예자도 따로 관리해야 하며, 그전에 입학 유예를 했던 아동이 있으면 확인을 하고 다시 새로운 취학아동 명부에 등재해서 새로 명부도 만들어야 한다. 아동의 모든 보호자의 연락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있더라도 엉뚱한 번호가 남아 있어 연락할 길이 없으면 정말 난감하기도 하다.

유예자의 경우에는 다들 나름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에 최초에 유예를 시켰던 해의 자료부터 샅샅이 뒤져 그 사유를 파악하고 다시 조심스레 연락을 해야만 한다.

몇 차례의 취학 아동 업무를 해 본 경험이 바탕이 돼 일하는 동안 점점 실수를 줄여 나갈 수가 있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 백 명의 아이들을 관리하는 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특히나 내가 근무했던 곳은 자꾸 인구가 늘어나는 곳이어서 다른 읍, 면에서는 취학 아동이 자랑스럽게도 딱 한 명. 혹은 서 너 명, 많아야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였지만 숫자로만 따져도 결코 허술히 할 수 없는 업무이다. 게다가 태어나서 아이들이 최초로 의무 교육을 받게 되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자꾸 인구는 늘어나는데 학교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고 해마다 취학아동 명부를 작성할 때면 그곳은 몸살을 앓는다.

처음엔 한두 군데만 공동 학군을 만들었었다.

그때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내가 근무하던 당시(2016년도인지 2018년도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나는 2016년도에도 같은 곳에서 취학아동 업무를 맡았었다.)에는 한 아동당 공동학군이 최대 7개 학교까지 늘어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일단은 기본적으로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정해진 학군에 일차적으로 배정이 되지만 워낙에 인구 밀집 지역이다 보니 학부모의 선택에 따라 최대 7군데 학교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처사였지만 교육청도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물론 요즘에는 거리가 좀 멀더라도 부모의 마음에 드는 그런 학교를 골라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그건 아니었다.

몇 차례 교육청 담당자와도 전화 통화를 하고 어떻게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인지 물었지만 언제나 대답은 같았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이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엉뚱한 남편을 걸고넘어졌다.

"아니,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돼? 어떻게 공동학군을 7군데까지 늘릴 수가 있어?"

"왜 나보고 그래?"

"여기 인구가 계속 늘어날 거란 걸 예상 못 했을까? 앞일을 미리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고 학교도 짓고 해야 할 거 아냐?! 교육청에서 그런 걸 신경 안 쓰면 어디서 신경 써?"

"내가 뭘 어쨌다고 나한테 그래?"

"생각을 해 봐. 취학 통지서를 7 장이나 나눠 주고 거기서 고르란 게 말이 되냐고 지금!"

"취학 통지서? 그게 뭔데?"

말을 말자.

취학 통지서의 '취'자도 모르는 양반한테 내가 언감생심 공동학군의 부당함을 토로하다니.

그래, 당신은 뭘 아무것도 안 했지.

단지 그가 교육행정직 공무원이고 한때 지역 교육지원청에서도 일했고, 당시 학교에 근무 중이었으므로,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엉뚱한 남편에게 넋두리를 했다.


학부모들은 오죽 어이없겠는가.

그렇게 공동 학군을 늘려놔도 다들 제 집 앞으로 학교를 다니려고 하지 돌고 돌아 멀고 먼 학교로 등교하고 싶은 아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이건 단순히 취학아동과 그의 학부모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차적으로 취학 통지서를 작성해서 배부해야 하는 담당자가 가장 골치 아프다.

주민전산 시스템상에 통, 반별로(새 주소를 쓰지만 당시까지 통, 반별로 학군을 나누었다. 현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학군을 정하고 그에 맞는 학교를 입력하고 그 주소지의 취학 아동 대상자를 뽑아내서 취학 통지서를 작성한다.

보통은 그 취학 통지서가 한 장이지만, 그래야 맞지만 당시는 한 아동당 취학 통지서가 7장까지 나가기도 했다.


전산팀에 문의해 봤지만 달리 어떻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공동학군이 7군데까지 있는 데도 있다고 했더니 그 전산 담당자도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전국에서 그런 곳은 거기뿐이었을 것이다.

"공동학군이 많아봐야 서 너 군덴데 거긴 정말 많네요."

라며 나를 동정하는 듯도 했다.


차라리 원시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배정학교를 빈칸으로 비워두고 원하는 학교를 써서 예비 소집일에 학교에 제출하는 게 더 낫겠다 싶었다.

(최근에는 배정 학교란에 공동학군의 학교를 모두 입력해서 취학통지서를 작성하는 것도 같았는데 가물가물하다. 어쨌거나 내가 했던 것처럼 학교별로 일일이 다 출력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런 경우가 거의 없겠지만 어딘가에는 있을 거란 생각에 인근의 인구 밀집 지역의 동사무소에 문의까지 했다.

"주사님, 거기도 혹시 공동 학군 있어요?"

"예, 여기도 좀 있어요, 많아요. 세 군데나 돼요."

"아유, 얼마 안 되시네요. 우린 최대 7군데예요."

"네에?!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게요. 근데 혹시 전산상 이거 한꺼번에 입력하는 그런 방법 같은 거 아세요? 전산팀에 물어봤는데 그런 거 없다네요. 그쪽 교육청에서는 별 말 없었어요?"

"네. 저도 답답한데 그런 거 없대요. 교육청에서도 별로 신경 안 쓰고 우리 보고 다 알아서 하라고 하죠 뭐. 일일이 다 출력해야 돼요. 그나저나 일 많아서 힘드시겠어요."

"어쩔 수 없죠. 뭐."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던 담당자는 나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살짝 여유로운 웃음까지도 흘렸던 것 같다.

평소에는 하도 민원인들이 우리와 (바로 인근 지역이라는 이유로) 그곳을 비교해가며 여기가 더 친절하네, 저기가 더 잘해주네 어쩌네 저쩌네 해서 가끔은 라이벌 의식(?) 같은 것도 느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같은 업무를 하는 담당자로서의 비애가 전화기를 타고 서로 전해진 듯(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지만)했다.


마침 가을철 산불 비상근무가 시작됐으므로 주말마다 사무실에 출근을 해서 작업을 해도 전혀 외롭지 않았다.

외로울 틈도 없긴 했다.

"우리 합격이 취학 통지서는 내가 직접 작성해서 내가 제일 먼저 수령하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당최 무슨 소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남편이 의아해했고 나는 취학 통지서를 출력하고 보호자 확인란에 가장 먼저 수령했다는 서명을 한 후 딸의 취학 통지서를 집으로 가져왔다.

이장님께는 내가 한 건 해치웠다는 말 한마디를 전했음을 물론이다.


취학 아동 업무를 맡아할 때면 지긋지긋하게 보아 오던 그것, 그래서 아무리 내 첫째 자식이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해도 나에겐 별일도 아니었고 가슴 설렐 일도 아니었다.

보통의 엄마들은 첫째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기념으로 취학 통지서 사진도 찍고 그걸 보고 가슴도 뭉클하고 그렇다던데, 나는 어찌 된 사람인가.

별 감흥도 없었고, 그저 나머지 취학 통지서를 무사히 각 가정에 전달할 일만이 심란하기만 했다.

솔직히 그 업무는 단순하게 보여도 결코 단순하지 않고(세상에 그런 일들 투성이이긴 하지만)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게 많은 업무다.

그나마 내 아이에게 내 손으로 작성한 취학 통지서를 보여 주며 들뜬 아이의 마음을 함께 나누는 일, 그것 하나만은 힘든 업무 속에서도 무척이나 보람 있었다고 지금도 자신 있게 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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