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3년 정도 하다 보면 고비가 오고 몇 년 지나면 또 매너리즘에 빠지고 그래. 나는 그렇더라. 너는 이제 신규자 발령받아서 잘 못 느끼겠지만 결혼 생활도 그렇고 직장생활이 그렇더라."
신규자 발령을 받고 일주일도 채 안 되었을 때였다.
다른 계 소속인 선배 직원의 말씀이었다.
그가 언니라고 부르라고 해서 언니라고 불렀다.
그 언니는 나보다 훨씬 전에 공무원 합격을 해서 근무하고 있었고 결혼도 일찍 한 편이라 서른 초반의 나이였는데 벌써 유치원엔가 다니는 딸을 두고 있었다.
"나도 처음엔 별로 공무원 할 생각은 없었어. 그냥 세무직 시험 봤는데 잘 본 것도 아니어서 합격 포기하고 다른 지역에서 친구랑 놀고 있었는데 합격한 거야."
아마 세무직 관련 학과나 그 비슷한 학과를 졸업했던 것 같다.
여직원 중에서는 그 언니가 바로 내 위의 연령대였다.
먼저 근무해 본 사람으로서, 게다가 이미 결혼하고 자녀까지 둔 워킹맘으로서 간간이 내게 이런저런조언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언니도 없고 여동생도 없었던 내게는 남이면서도 정말 언니처럼도 느껴졌다.
비록 남들은 이역만리 머나먼 곳이라고 유배지라고 했지만 첫 발령지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모든 게 처음인 내게 선배로서 생생히 들려주는 경험담은 어디서 돈 주고도 못 살 귀한 재산이었다.
물론 모든 직원들이 다 좋은 기억만을 준 것은 아니다.
세상살이가, 사람 사는 게 어디 전부 다 좋을 수만 있던가, 나도 좋은 사람이 있고, 맘에 안 드는 사람도 있거늘, 모든 이가 내게 친절할 필요도 없었고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첫 발령지, 첫 근무지, 처음 만나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좋은 기억이 더 많고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뒤로 근무지를 옮겨갈 때도 직원들과의 사이는 그런대로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사달은 민원인과의 사이에서 나는 법이었으니까.
물론 좋은 민원인들도 많았는데, 아마도 거북스러웠던 민원인보다는 대개 상식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분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간혹 너무 상식 이하의 돌발행동으로 내 기억에 너무 선명히 각인되어 부풀려져 보였을 뿐인 것이지 소수의 악성 민원인이 선량한 다수의 민원인을 이길 수 없듯(누가 누굴 이긴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말하자면 말이다.) 안 좋은 기억이 좋은 기억을 다 덮어버리기엔 그 힘이 모자라다.
사람을 안 좋게 보려고 하면 한없이 안 좋게만 보이고, 단점을 들추자면 끝도 없이 더 악착같이 꼬투리를 잡게 되는 것 아니던가.
어쨌거나 낯선 근무환경에 나이만 많이 먹고(나는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내 나이를 들은 이들은 다들 하나같이 나이가 많다고 직접 말했으므로 나는 서른 나이에 마흔 살이라도 된 기분을 종종 느끼곤 했었다.) 세상 물정 어두운 내게 그곳의 직원들이 베풀어준 친절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다.
앞서 언급한 그 언니는 시원시원한 성격에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 모두와(내가 느끼기에는 전부 다였다.) 사이도 원만하게 지냈으며 결혼 생활도 직장 생활도 잘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복지계였고, 세무직렬이었던 그 언니는 산업계에서 근무했는데 같이 어울릴 일은 항상 있었다.
그나마 나이 차이가 나와 가장 적게 나는 동성이었으니까 그런 것도 있었으리라.
동성이면서도 그 언니 다음으로 연장자인 다른 분은 지금도 나이는 정확히 모르지만(아마도 5살에서 10살 안팎의 차이가 났을 거라 예상했다.) 너무 어려웠다.
"언니, 언니는 세무직인데 왜 산업계에 있어요?"
"네가 아직 뭘 모르는구나?"
어쭈?
얘 봐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 그런 표정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런 바보 같은 질문 따위 결코 하지 않았을 텐데.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으니까 질문한 거다.
그러는 나는?
일반 행정직인데 왜 복지계에 있나?
공직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수험 공부만 했을 때야 무조건 직렬에 맞게 인사 발령이 나는 줄로만 알았지, 현실에서는 아주 융통성 있게 인사 배치가 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건 아주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복지계에 자리 하나가 비는데 이를 채울 사회 복지직이 없으면 신규자든 일반 행정직이든 일단은 채워서 앉혀야 한다.
안타깝게도 저 두 가지 조건을 다 갖춘 어리바리한 내가 당첨된 것이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인 것을.
아마도 나는 신규자 시절에는 각종 직렬들이 거기에 맞는 특별한 자격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회복지직' 이러면 무조건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해야 하고, 그 방면에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만 그곳에 앉을 자격이 주어진다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요즘은 복수 전공들을 많이 해서 부전공으로 더 다양한 직렬의 공무원 시험 응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다.
살면서 마음 맞는 친구,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한두 명만 있어도 큰 복이라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런 동료가 있다는 것 또한 크나큰 축복임을 알았다.
적당한 거리에 서서 간섭이 아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대하는 사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나이야 한두 살 더 많으면 어떻고 더 적으면 어떠랴.
집에 돌아와서는 잠만 자고 다니는 생활이 전부일지도 모르는 (일부) 직장인에게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동료들이 가족같이 느껴진다는 말도 아주 억지는 아니다.
가족이 아니라서 더 가족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모순의 관계, 그 관계의 모순성을 뒤로하고라도 내게 괜찮은 동료는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많은 힘을 전달해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