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 전부 다 말해 주라고 했어? 아무리 혼자만 돈 번다고 수입이 들어왔는지, 지출을 어디에 했는지 나한테는 알릴 필요도 없다는 거야 뭐야? 물론 본인이 번 돈이니까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상관하고 싶지 않다, 괜히 상관했다가 요단강을 건너버린 적이 많았으므로. 결혼 생활 10년이 넘어가니 최대한 부딪치지 않게 살아가는 법만 터득해 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전에도 물어봤었잖아? 그거 물어보는 게 그렇게 잘못이야? 들어왔으면 들어왔다, 아직 안 들어왔으면 안 들어왔다. 대답만 하면 되잖아. 혹시 어디 엉뚱한 데라도 다 써 버린 거야? 그런 거야? 왜 사실대로 말을 못 해? 내가 언제 그 연가보상비를 나한테 달라고 하길 했어? 아니면 정확히 얼마가 들어왔고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꼬치꼬치 따져 묻기를 했어? 그냥 난 단순히 들어왔는지 그것만 궁금해서 물어본 거잖아. 그걸 보고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보고하는 거랑 알려 주는 거랑은 엄연히 다르지. 난 보고받기를 원하는 게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라고! 나도 같이 얘기하기 싫어. 뭘 물어보기만 하면 이렇게 삐딱하게 나오니 나라고 말하고 싶겠어? 이래서 정말 말도 하기 싫다니까. 이런 식으로 뭐 물어볼 때마다 발끈하면 나도 진짜 가만히 안 있어!"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가만히 안 있고 그냥 그 자리를 벗어날 테다.
그러면서 생각하겠지.
'내가 못 물어볼 걸 물어본 건가? 남들은 전혀 그런 말도 안 하고 사나?'
연가보상비의 안부가 궁금했을 뿐이다 나는.
2주 전엔가도 내가 물었었다.
과거 이맘때쯤 연가보상비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젠 연가보상비 줄 때가 됐는데 여태 안 받았어?"
"아직 시간 있잖아."
"우린 전에 보면 못해도 최소한 12월 중순에 나머지 연가 쓸 거 생각하고 못 쓴 부분에 대해서는 연가보상비 다 산정해서 계좌랑 남은 연가일수랑 금액 확인하라고 미리 다 메일 보내주던데?"
"여긴 아직이야."
나는 일반행정 지방직이었고, 남편은 교육행정 지방직이니까 체계가 좀 다를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줄 거니까 주기야 하겠지만, 게다가 나한테 줄 것도 아니지만, 이젠 올해가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내 짧은 생각으로는 진작에 작업해서 입금을 해줬어야 하는데 그 시기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내가 그 연가보상비를 노리고(어차피 남편 것이다. 내 것은 아니다. 나한테 떨어질 콩고물 같은 것도 없는 마당에 그걸 욕심내서가 아니다. 정말 단순히 입금이 아직도 안 됐나 궁금했던 것뿐이다.) 남편에게 치근덕거리며 집착하는 것도 아니었다.
연가 보상비,
남의 것이야.
남의 것은 보기만 하는 거야.
입금 됐는지 안 됐는지 함부로 물어보는 거 아니야...
"어차피 연가보상비도 얼마 안돼. 반년 휴직했으니까 열흘 정도밖에 없는데 그때 며칠 연가 썼으니까 나머지 받아 봐야 얼마나 되겠어?"
"그래. 그렇긴 하겠다. 가뜩이나 연가 일수도 반으로 줄었는데 야금야금 몇 번 찾아 썼으니까."
"알아서 입금해 주겠지."
"그러겠지. 근데 좀 늦는 것 같네.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급여 업무를 담당해 본 적은 없지만 벌써 올해가 다 끝나가고 있었다.
매달 마감 업무를 하던 때를 떠올리면 그 달이 다 가기 전에 그 해가 다 가기 전에 미리미리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연가보상비'같은 금전적인 부분과 연관된 것이라면 직장인 누구라도 민감할 수밖에 없고(나만 그런가? 남들은 안 그럴까?) 소중한 그것이 마냥 기다려지는 것이다.
주문한 택배를 하루빨리 받아보길 원하는 간절한 마음보다도 더 그 해에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특별 보너스 같은 선물, 연가보상비가 다름 아닌 그것 아니던가.
"근데 왜 내 연가 보상비를 자기가 기다려?"
"나 기다린다고 한 적 없는데?"
"아닌 것 같은데? 무지하게 기다리는 것 같은데?"
"나한테 주는 것도 아니고 남(정말 진심으로 남의 것이다.)의 것인데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근데 왜 자꾸 물어봐?"
"저번에 한 번, 오늘 한 번, 이렇게 딱 두 번 밖에 안 물어봤어."
"어째 나보다 더 기다리는 것 같다."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나는 구경도 못해 봐도 들어오면 좋잖아."
물론 남편이 입금된 그 연가 보상비를 어디 엉뚱한 곳에 흥청망청 하며 탕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렇게 믿는다. 믿어야만 한다. 그런 믿음이라도 없으면 이 관계는 유지되기 힘들다.)
"근데 이젠 내가 먼저 물어보기 전에는 절대 말 안 해주네?"
"뭘?"
"연가보상비도 그렇고. 초과근무 수당, 출장비 이런 것들 말이야."
"내가 그걸 다 보고해야 돼?"
저 사람은 왜 그렇게 '보고'한다는 말을 좋아할까?
나는 그에게 보고 받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는데 말이다.
하긴 생활비 카드비용이 20만 원이 가까워질라 치면 카드 내역서를 보자고 하면서 내게 보고받길 원하는 사람이었지 참.
"내가 보고하라는 게 아니잖아."
"내가 다 말해줄 의무는 없잖아."
"물론 그럴 의무는 없지. 본인이 번 건데 내가 뭐라 하겠어. 그래도 가정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나도 알아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지.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뭐 별 거 없어. 맨날 똑같지."
아니다.
그 말은 틀린 말이다.
한창 일이 많아 평일 저녁 늦게까지는 물론 주말에도 이틀 내내 나가서 일을 여러 번 한 적이 좀 있었으니까 수입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으리라.
내가 그거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민감하게 반응하지?
수입이 좀 는 달은 당장 급한 데부터 지출을 더 하고 그동안 필요했던 부분에 지출을 하는 식으로 조정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 뜻으로 나는 물었던 것이다.
"근데, 내가 전과(?)가 있어서 그나마 좀 아는 거지. 그쪽 일 안 해봤으면, 먼저 말 안 해주면 아무것도 몰랐겠어? 배우자가 받는 돈이 언제 어떤 식으로 지급되는지, 정근수당이 몇 월에 얼마나 나오는지, 수당 명목이 뭐가 있는지, 급수에 따라 어떻게 금액이 달라지는지, 호봉하고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런 것들 말이야. 부부끼리도 말 안 하면 상대방이 모르는 그런 추가 수입 모르고 살기도 하더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저번에도 나한테 그런 말 했었잖아? 직원 중에도 월급 외 수당 같은 것만 따로 받는 통장 가지고 있으면서 부인 모르게 그쪽으로 다 받는다고 그랬다며? 한 번은 수당 통장에 들어갈 돈을 월급 통장으로 잘못 입금해 버려 가지고 그 직원이 엄청 뭐라고 그랬다며? 부인이 다 알아 버렸다고."
"응, 그건 부인 모르게 챙겨서 쓴다더라. 그때 나보고 얼마나 뭐라고 했는지 몰라. 진짜 무안하더라."
"그런 걸 확실히 잘해줘야지. 괜히 직원한테 원성만 샀잖아."
"그러게."
"나야 대충은 아니까 그렇지만. 근데 정말 그런 거 모르는 배우자가 있을까? 하긴 누가 말 안 해주고 알아보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어."
"그렇지. 근데 그런 직원들 은근히 많더라? 특히 나이 많은 분들은."
한때나마 내가 공직생활을 했던 게 이럴 때 요긴했다.
전에 부부 공무원인 직원들 말을 들어보면 서로 뻔히 아는 월급체계나 수당 이런 것들은 따로 챙길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 하기도 했었다.
부부가 상대방 몰래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금전, 상대에게는 결코 발각되지 말아야 할 그것,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딴 주머니 찬다.'라고 한다지 아마?
딴 주머니는커녕 내 주머니도 없는 내게는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일 뿐이지만...
굳이 속일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사람인지라 나만 알고 싶고 배우자 모르게 단 돈 몇 푼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강한 욕구, 나도 느낀 적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같은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그런 딴 주머니는 불가능했다, 고 나는 생각해 왔다.
서로 비슷한 시기에 월급 받고 명절 휴가비며 정근수당을 받다 보니,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승진을 하고 직급도 같아 그 금액까지도 어림짐작이 가능한 찬란하도록 영롱한 그 크리스털 지갑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꼭 그걸 남편 몰래 따로 챙겨서 혼자만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사람 모르게 비밀스럽게 소유한 내 것, 왠지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단지 딱 그만큼인 그런 유치하고도 엉뚱한 소유욕, 그게 전부였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한 집에서 사는 부부라도 각자 상대방에게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나만 간직하고 싶은 무언가를 다들 하나쯤은 품고 사는 건 아닐까.
내겐 그런 종류의 것이 여러 가지 있다.
나 혼자만의 비밀이라 더 소중한 그것, 일종의 사는 낙이라고나 할까.
부부사이에도 굳이 서로 다 알릴 필요가 없는 것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남편에게는 그런 게 뭐가 있을까, 잠깐 궁금해하다 이내 시들해진다.
지금껏 한 집에서 살아오며 내가 느낀 게 있다면,
남편에 대해 다 알려고 하지 말자.
그것만큼 무모한 건 없다.
힘 빼지 말자.
어차피 그 속을 내가 다 알 수 없으리니.
나도 그 사람에게 내 전부를 다 보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세계 평화를 깨뜨리는 일이 아니라면,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그래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