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1. 13. 너의 의미,보고 있기만 해도 좋은< 사진 임자 = 글임자>
"엄마, 나 그 떡 먹고 싶어. 그거 있잖아, 속은 치즈같이 늘어지고 겉은 노란색 콩고물 묻어있고 그거 말이야."
"응? 무슨 떡 말이야?"
시도 때도 없이 떡타령을 하는 나의 두 번째 번뇌.
"그거 있잖아. 말랑말랑한 떡!"
"떡이 다 말랑말랑하지 딱딱한 떡도 있다니?
"에휴, 엄만 그것도 몰라? 말미잘떡 말이야. 말미잘!"
"어? 말미잘떡? 그런 떡이 있었나?"
차마 못 듣겠던지 옆에서 한숨을 쉬며 나의 첫 번째 번뇌가 출동한다.
"에휴, 말미잘이 아니라 인절미겠지!"
"아, 맞다. 인절미!"
아들아, 넌 언제나 대단하다.
거의 항상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언행을 일삼는 나의 두 번째 번뇌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인절미를 순식간에 말미잘로 둔갑시켜 버리는 너는 희대의 사기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엄마'와 '떡'이라고 언제나 자신 있게 말하는 아들은 정말 자다가도 떡 얘기를 하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떡을 좋아한다.
아들을 임신했을 때 내가 떡 좀 씹었었나?
전혀 기억이 없다.
자칭, 타칭 떡보인 아들을 위해 사방에서 떡 세례를 받곤 한다.
시가에서도 손자를 위하여 언젠가 20KG 가까이 되는 인절미를 해서 보내주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들 입맛에는 맞지 않았고, 덕분에 주위에 선심을 쓴 적도 있다.
아무리 종류를 가리지 않는 떡보라지만 선호하는 맛은 확실히 있으시다.
미운 마흔 살 만큼이나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틀린 것도 마치 정확히 알고 있는 양 큰소리부터 치고 보는 9살 아들은 무조건적인 모성애로도 다 덮어주기 힘들 만큼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때가 있다.
언젠가 책을 읽어주는 누나 옆에서 알은체를 하는데,
"엄마, 엄만 누나가 읽어준 그게 뭐에 대한 건 줄 알아?"
"글쎄? 잘 모르겠네, 우리 아들은 그게 뭔 줄 알아? 좀 알려줄래?"
"엄만 그것도 몰라? 먹이살이잖아, 먹이살이! 파리를 개구리가 먹고, 그 개구리를 뱀이 먹고. 엄만 어른이 그것도 몰라?"
"우와, 우리 아들 대단하다. 그런 것도 다 알고. 근데 좀 뭐가 이상한 것 같은데?"
나의 기쁨, 나의 번뇌여.
엄마가 과학을 썩 잘한 편은 아니었지만 '먹이살이'와 '먹이사슬'은 전혀 아무런 관련성이 없으며 얼토당토않은 착각임이 분명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단다.
엄마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니 첫 번째 번뇌가 출동을 한다.
"어이구, 먹이살이가 아니라 먹이사슬이겠지!"
"아, 맞다 먹이사슬."
"어쩐지 좀 이상하다 했어. 우리 아들이 헷갈렸구나?"
"아니야. 처음부터 나도 다 알고 있었어. 엄마가 아나 모르나 시험해 본 거라고."
"그래, 엄마가 모르면 가르쳐 주려고 그랬던 거구나?"
"당연하지, 엄마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다 물어봐."
"역시 우리 아들이 최고네. 안 그래도 엄마는 옛날에 배워서 다 잊어버린 게 많은데 우리 아들한테 많이 물어봐야겠다."
"엄만 나만 믿으라구!"
"우리 아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엄만 정말 든든하다. 알았어. 이젠 우리 아들만 믿을게."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아무리 과정을 중요시하는 요즘 교육방식이 대세라지만, 수능을 볼 땐(수능을 보기나 할지도 의문이지만), 더군다나 대한민국에선 결과도 아주 중요하므로 결론이 틀려버렸다는 건 치명적이다.
딸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쯧쯧, 혀 차는 소리만 연신 하며 우리를 외면했다.
의무교육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지 이제 겨우 2년, 그동안 배웠으면 뭘 얼마나 배웠겠나 싶지만 어쩌다 새로 배운 것들을 현관문 열기가 무섭게 내게 뉴스 속보 전해주듯 전달하는 9살 인생이 대견하면서도 자랑스럽다가도 아찔하다.
잘난 척은 언제나 덤이다.
누구를 닮았을꼬?
둘 중 한 명인 것만은 분명한데, 어쩐지 내 성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나는 저런 유년 시절을 보낸 기억이 없다고, 호들갑이 무언지도 모르는 조신한 시절만을 거쳐 왔다고 혼자서만 도리질을 거세게 했다.
그러든 저러든 생각만 해도 입이 방긋 벌어지게 하는 존재인 것만은 확실하다.
저런 아들은 또 누가 낳았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