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추가 먹고 싶고, 난 이제 원한이 없어

남매는 막상막하

by 글임자
2023. 6.1.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 사진임자 = 글임자 >


"다 됐어, 엄마."

"그럼 이제 할 일 해야지?"

"응. 다 끝냈으니까 이제 난 원한이 없어."


응?

우리 아들이 뭔가 없다는 말을 한 것 같긴 한데 지금 이 상황에서 바람직한 어휘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실컷 게임하고 나서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람?


"어이구, 원한이 뭐냐 원한이?"

"왜? 하고 싶은 만큼 다 했으니까 난 이제 원한이 없다고."

"어휴. 원한이 아니라 여한이겠지. 남을 '여', 한 '한'. 여한."

"아. 맞다! 여한이 없다고."

"너는 말을 어떻게 그렇게 하냐? 지금 이 상황에서는 여한이 없다고 해야 맞는 거야. 원한은 뭔가 마음에 맺힌 게 있다는 뜻이야. 둘이 전혀 상관이 없는데, 어휴~"

이것이 바로 초등 5학년생의 위엄이란 말인가.

동생과 엄마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우리 집 야무진 이가 또 시의적절하게 나서서 어린것의 잘못된 어휘 선택에 대하여 어떤 점이 부적절했는지를 콕 집어 알려 줌과 동시에 상황에 맞는 어휘를 선택함으로써 동생의 실수를 냉철하게 지적해 주었다. 동생이 이제 겨우 열 살이라는 점을,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지 불과 두 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다소 냉정한 처사였다.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예로부터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근데 엄마, 나 벤추가 먹고 싶어."

"뭐야? 우리 아들이 벤추를 어떻게 알아?"

"내가 다 알지."

"그걸 어떻게 알지?"

"엄마, 나 벤추 사 주면 안 돼?"

"벤추를 사 달라고?"

"응, 먹고 싶단 말이야."

"벤추를 어떻게 먹어?"

"벤추가 얼마나 맛있는데 그래?"

"맛있는지 어쩐 지는 잘 모르겠고, 비싸잖아."

"엄만 날 사랑한다면서 벤추 하나 못 사줘?"

"엄마가 우리 아들을 사랑하긴 하지만 벤추는 좀 무리인데?"

"나 진짜 벤추 먹고 싶단 말이야."

"네가 먹고 싶은 게 진짜 벤추 맞아?"

"엄만 날 어떻게 보고 그래? 벤추 먹고 싶다니까!"


이건 아니야,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벤추는 타고 다니는 거지 먹는 게 아닌데, 내가 알기로는.

벤추가 그렇게 맛있다고 소문이 났나?

여태 누가 벤추 먹어 봤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하여튼, 너는 진짜!"

딸이 또 출동했다.

"벤추가 아니라 빈추겠지!"

딸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아, 맞다. 빈추야 빈추. 엄마 내가 착각했어. 내가 말한 건 빈추였어! 한쪽에 과자 있고 반대쪽엔 초콜릿 있는 거 그거 말이야."

뒤늦게서야 아들은 제 누나에게 구원받았다.

역시, 그럼 그렇지. 우리 아들이 아무리 먹성이 좋아도 그렇지 벤추를 먹을 수는 없을 거야.

결정적으로 이 엄마는 그 벤추를 사 줄 수가 없어.


"근데 엄마, 아까 엄마가 한 그 말은 말의 양옆이 안 맞는 거 아니야?"

내가 이 말을 했다가 저 말을 했다며 딸이 또 한 마디 하셨다.

보통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말의 앞뒤가 안 맞는다."

라고 하지 않나?

딸은 도대체 저런 신박한 표현은 어디서 가져온 거람?

신조어인가?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인가?

유행에 민감하지 못한 옛날사람은 '저 소리가 무슨 소린고' 하며 한참이나 생각했던 날이다.

아울러, 남매는 뭔가 막상막하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 날이다.

난형난제, 용호상박, 백중, 백중지간, neck and neck을 입 속으로만 나 혼자 웅얼거리며 언젠가는 딸에게 얘기해줘야겠다며 증거자료를 또 하나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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