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살림살이 관섭하는 며느리

관섭 = 관심 + 간섭

by 글임자
23. 2. 9.

< 사진 임자 = 글임자 >


"도대체 나한테 이발비 받아서 어디에 쓰는 거야?"

"송금했으면 그만이지 그게 왜 또 궁금하실까?"

"그냥 궁금해서."

"나 혼자만 과자 사 먹을까 봐?"

"대체 어디에 쓰길래 그래?"

"내가 그 돈을 어디에 쓰는가를 궁금해하기 전에 이발비를 좀 인상해 줄 의향은 없는지, 성과급이라든가 야간 할증요금 뭐 그것부터 좀 생각해 보시는 건 어때?"


3주마다 이발을 마치자마자 득달같이 그 수고비를 받아내는 나를 보고 남편은 집에서 내가 도대체 어디에 돈 쓸 일이 있냐며, 왜 속 시원히 그 사용처를 밝히지 못하는 것인지에 늘 의문을 가져왔다.

가만히 앉아서도 순식간에 서 너 가지 물품들을 입양하시는 달인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다시금 깨달았다, 숨 막혀 죽지 말라고 콧구멍도 두 개인 것이다.

내가 돈이 없어서 못쓰지, 쓸 데가 없어서 못쓰나 뭐.


"어머님, 이번 설에 가서 보니까 도마가 너무 오래됐던데요. 칼자국도 많이 나고 쓴 지 오래돼서 이참에 제가 하나 샀어요."

"아이고, 뭐 하러 샀어? 그것도 네가 사 준 건데."

"제가 그거 사드린지도 벌써 오래됐잖아요. 진짜 많이 낡았더라고요. 도마는 주기적으로 한 번씩 바꿔주는 게 좋대요."

"안 그래도 딸이 '엄마는 며느리가 사준 것만 아끼고 안 버린다'고 뭐라고 했단다."

"금방 도착할 거예요, 새거 오면 그걸로 바꿔서 쓰세요."

"그래, 며늘아 고맙다."

"주말에 합격이 아범 이발해 주고 이발비 받은 걸로 샀어요. 아들이 사줬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다, 그게 왜 아들이 사 준 거냐, 우리 며느리가 사 준 거지. 허허허."

"아무튼 아들, 며느리가 같이 사 드린 거니까 옛날 것은 버리시고 새 걸로 바꿔 쓰세요."

"알았다. 우리 며느리 최고다. 고맙다."


물론 나는 최고의 며느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최저도 아니다.(라고 믿고 싶다.)

그냥 중간(?)이나 보통이라고 하고 싶지만, 남편이 종종 나보고 '아무것도 안 한다.'는 망언을 일삼으므로 '그냥' 며느리다.

나도 최고의 며느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중간의 며느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고, 그냥 며느리이고만 싶다.

이젠 시부모님께 애써 잘하려고도 하지 않고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내 마음이 편한 대로 하고 살고 있는 중이다.

너무 애를 쓰면, 남을 의식하고 신경 쓰고 살다 보면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었던 과거도 있었으나 이제는, 내 마음을 억지로 끌어 오며 살고 싶지는 않다.

시부모님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설에 시가에 가서 보니 도마가 생각보다는 꽤 낡아 있었다.

이미 중간에 한 번 교체를 했어야 했다.

그것도 몇 년 전에 내가 사드린 것이었는데 어머님은 가볍고 쓰기 편하시다며 내가 갈 때마다 좋다고 늘 말씀하셨다.

친정, 나, 시가 모두 같은 도마를 쓰고 있다.

물론 친정도 주기적으로 내가 바꿔주고 있다.


설마 어머님이 그 실리콘 도마 하나 살 돈이 없으실까.

그래도 며느리가 사 준 것이라고 일단은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부터 하시고(시골에서는 신문물이 들어오면, 특히 며느리나 사위가 그 신문물을 들여오는 주체가 된 경우에는 자랑거리가 되어야 마땅하다. 아들, 딸의 경우는 두말할 나위도 없음은 당연하다.) 1년이고 2년이고 주야장천 애정하시며 사용하시는 것이다.

시누이가 그런 어머님을 보고 버리고 새로 사시라고 해도

"며느리가 사 준 건데 아깝게 어떻게 버리냐."

라고 하시며 한사코 지금껏 실리콘 앞면이 마르고 닳도록 사용하고 계시는 중이다.

우리 엄마도 그렇지만 어른들은 아무리 낡고 해져도 한번 들인 물건은 쉽사리 버리지 못하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다른 물건은 오래되고 낡아도 쓸 만하면 최대한 그것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할 때까지 오래 쓰지만 그래도 도마만큼은 위생을 생각해서라도 주기적으로 교체하기를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이다.


어제 낮에 시가에 전화를 하니 어머님은 또 마을 회관에 마실을 가시고 아버님이 전화를 받으셨다.

혹시 모를 일이다, 새 도마를 포장지째 들고 방문하셨는지도.

아들, 딸, 손자, 며느리, 사위 자랑의 핫 플레이스가 바로 마을 회관이다.

물론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의가 상해서 오기도 하는 '슬픈' 만남의 장소이기도 함을 부정할 수 없다.

아침에 어머님이 마을 회관으로 출근하시기 전에 다시 전화를 드려봐야겠다.

별 이상이 없이 도착했는지 확인차, 두 가지 색상이니 구분해서 쓰시기 좋을 거라고, 야채와 생선을 각각 처리하시기를 적극 권장해도 좋으리라.

사용은 어머님 몫, 후기작성은 며느리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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