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찹쌀, 오는 로컬푸드
<사진 임자 = 글임자 >
지난주 부모님이 시가에 찹쌀 한 박스를 보내셨다.
시가에서는 올해부터 벼농사를 전혀 짓지 않으신다.
연로하시기도 하고 힘에 부쳐서 그만두기로 하셨단다.
그래서 아빠가 올해 수확한 찹쌀을 20KG 보내주셨다.
결혼 후 친정에서는 해년마다 시가, 두 시누이에게 양파를 20KG씩 10년도 넘게 보내주신다.
최근엔 오빠까지 가세해서 오빠가 생산한 농산물을 보내준다.
시가에서는 항상
"세상에 이런 사돈도 없다."
라며 고마워하신다.
"어머님이 이제 농사 안 지으신다고 했더니 아빠가 찹쌀 좀 보내주신대요."
"아이고, 우리까지 다 신경 써주시고 고맙다고 꼭 전해 드려라. "
"네."
"나는 줄 게 없는데 어쩌냐. 생강이나 좀 보내 줄거나? 무도 좀 먹을래?"
"무릎도 안 좋으신데 괜찮아요. 그거 보내신다고 또 힘들게 일하지 마세요."
"올해 많이 했다. 좀 보내줄게. 먹어라."
"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어머님."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한 어머님의 성의를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사양하고 안 받는다고 하면 어머님 입장에서는 받기만 하고 미안해하실까 봐 굳이 거절은 하지 않았다.
친정도 농사를 지으시기 때문에 안 보내셔도 되지만 어머님이 꼭 주고 싶다고 하셨기에.
이틀 전, 저녁 6시가 다 되어 어머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택배 왔냐?"
"택배 보내셨어요? 아직 안 왔는데요. 한번 나가서 다시 확인해 볼게요."
간혹 택배가 밀리면 저녁에라도 뒤늦게 갖다 주신 적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나가봤지만 바깥문 앞은 깨끗했다.
"어머님, 택배 안 왔네요. 요즘 가을이라 시골에서 택배 많이 보내서 좀 늦어지기도 하더라고요. 곧 오겠죠."
"혹시 어디로 잘못 간 거 아니냐? "
어머님은 애가 탔다.
한여름이 아니라 별 탈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엉뚱한 데로 잘못 배달되었을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택배 운송장 번호라도 알면 내가 조회해 보련만 고희의 노모는 안절부절못하시는 것이었다.
드디어 어제 오전에 반가운 시부모님의 정성이 배달되었다.
정도 많고 손도 크신 분들이다.
20KG짜리 상자가 두 개나 도착했다.
어찌나 무거운지 질질 끌다시피 해서 집안으로 들였다.
서리태 10KG, 배추 한 포기, 무 5개, 당근 여남은 개, 고구마 10KG 정도, 생강 5KG, 이렇게도 다양하고 많은 농산물이 왔다.
순식간에 로컬푸드 매장이 된 것 같았다.
서리태도 흠 하나 없이 깨끗한 것들로만, 당근과 무는 깨끗이 초벌 씻어서, 배추는 겉잎은 다 떼고, (며느리가 임신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도 안되는데) 당근은 모양도 이쁘고 실한 것들로만, 고구마는 크기도 다양하게 골고루 섞어서, 생강도 최상급으로만 골라 보내주셨다.
깔끔한 성격의 시어머니는 하나하나 다 손질해서 정성껏 고르고 골라 보내셨으리라.
택배가 도착했다는 며느리의 전화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계실 어머님께 당장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택배 왔어요. 근데 무슨 택배를 이렇게 많이도 보내셨어요?"
"그래, 왔냐? 별 이상은 없고?"
"네, 다 싱싱하고 좋네요. 이거 준비하시느라 또 고생하셨겠어요. 두 상자나 보내셨네요."
"그래, 우리 며느리, 전화해 줘서 고맙다. 잘 먹어라."
"네, 어머님,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생강차 만들어서 아범 줘야겠네요."
"그래, 그래, 고맙다. 콩이랑 생강은 엄마랑 나눠 먹어라."
"네, 어머님, 전해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애써 농사지으신 걸 택배로 부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도 좋은 걸로만 선별해 보내는 일은 더욱 그렇다.
친정에서 자주 친척들에게 농산물을 택배로 보내시기 때문에 잘 안다.
내가 시가에 엄청난 효도를 하는 며느리도 못되고, 잘하는 편도 아닌 것 같지만(남편 말이 아무것도 안 한다고 자꾸 그러는데) 어머님은 며느리의 전화 한 통에도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그건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다.
며느리들이 전화를 하면 엄마도 항상 전화해 줘서 고맙다고 하신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건 고액의 용돈보다도(물론 전혀 상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겠지만) 종종 안부 전화 한 통이라도 진심으로 하고, 보내주신 농산물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 마음을 전달하고 그러는 게 아닐까도 한다.
저렇게나 대단한 양식을 받았는데 고맙다고 인사하는 건 당연한데도 어머님은 고맙다고 말하는 내가 고맙다고 하신다.
어머님은 시어머니가 무슨 벼슬이나 되는 줄 알고 유세 떠는 그런 사람과 차원이 다르시다, 고 느껴왔다.
어머님께는 전화를 드렸지만 은근히 아버님께서 또 기다리실지 몰라 아들을 대동했다.
리허설에 들어갔다.
"할아버지, 고구마 잘 왔어요. 정말 맛있어요. 고맙습니다. 따라 해 봐"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아들에게 시켰다.
안타깝게도 초등 저학년에 재학 중인 어린 나의 아바타는 아직 홀로서기를 할 수 없다.
먼저 알아서 척척 전화를 해 주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철이 안 들었으니, 내가 선동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아들 스스로 진심으로 우러나와서 그 마음을 전달하면 가장 좋겠지만 아직은 무리다.
손자 나이, 이제 아홉 살일 뿐이다.
"할아버지, 저 OO예요. 고구마 잘 받았어요."
여기까진 술술 잘했다.
옆에서 엿들으니 호탕한 시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 뭐라고? 뭐라고 말해? 잘 안 들려. 다시 한번 말해 봐."
당당히 대놓고, 그것도 전화기를 입에 바짝 대고서 큰소리로 내게 묻는다.
"고구마 구워 먹었는데 맛있어요, 이렇게 말해."
최대한 아들 귀에만 들리게 모기만 한 목소리로 지시했지만, 아바타는 엄마 속도 모르고 자꾸 묻는다.
시아버지라고 모르시겠는가, 어미가 시켜 한 전화라는 것을.
자식이 무어라고, 또 대관절 부모는 무엇이관데 항상 자식에게 더 퍼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가.
내리사랑이 이렇다.
그런데 과연 나는 얼마나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그래, 항상 좋기만 한 남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들 아빠고, 그 사람이 미울 때도 있지만(남편도 마찬가지일 테고) 어쨌거나 아이들은 시부모님의 손자들이고, 남편을 사이에 두고 엮인 나와의 관계, 친부모 같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을 있게 해 주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면 고맙고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
가정 잘 돌보고 남편과 사이좋게 잘 살아 주는 것(아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극한 직업이긴 하다. 남편과 사이좋게 살기란 하버드에 들어가는 일 보다도 천만 배 더 어렵다.), 아이들 뒷바라지 잘해주는 것 그게 가장 효도지 달리 무엇이 더 있을까.
내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만큼 그들을 있게 해 주신 그분들에게도 그에 걸맞게 해 드려야 사람 된 도리가 아닐까.
오늘은 시가에서 물 건너온 고구마을 굽고 자꾸 깜빡하고 안 챙겨가는 레몬청을 그이의 두 손에 들려 보내야겠다.
아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사소한 내조, 남편이 간증한 말마따나 남들도 다 한다는 그 내조, 시늉이라도 내봐야 할 막연한 의무감마저 느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