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동의 반사적 이익
아빠도 반갑고 이바지도 반갑지
23. 3. 8. 퇴근길에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빠, 오늘은 뭘 가져왔어요?"
"우리 아들은 어째 아빠보다 딴 걸 더 기다리는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남편 말마따나, 그의 의심처럼, 그러하였다.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특히 아들이 만사를 제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신다.
눈길은 물론 아빠 얼굴이 아니라 아빠의 양손에 고정하고서 말이다.
"자, 이건 엄마 거, 이건 우리 아들딸 거~"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날라다 주듯 인사이동이 있은 후 각종 이바지 음식들을 남편이 날라왔다.
가끔은 직원들이 아이들 갖다 주라며 저마다의 몫을 흔쾌히 몽땅 쥐어 주시곤 한다.
"아빠,근데 왜 세 개야?우리 가족은 네 명인데?"
"아들아, 원래 아빠 몫은 하나야, 다른 직원들이 줘서 세 개가 된 거지."
그 와중에 우리집 최연소자는 4인가족에게 뭔가 부족한 1인분을 의아해하기도 했다.
"우와, 오늘은 새로운 걸 가져왔네?"
아들이 신상 이바지템에서 눈을 못 뗀다.
"이런 것도 받았어?"
딸도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매의 눈으로 훑어 주신다.
"웬 꽃이야?"
다른 여자에게 줄 것을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가 싶었으나 먼저 차지한 사람이 임자지 뭐, 내 몫이라고 했겠다?
이렇게 또 골고루 세 멤버에게 공평하게 이바지는 돌아갔다.
"갑자기 다 어디서 났어?"
"인사이동 있었잖아."
"참, 3월에 있었지?"
1월에 대폭적인 인사이동이 있었을 때도 처음 며칠간은 우리 집 가장의 두 손이 제법 묵직했었다.
"요즘엔 이렇게도 하나 보다. 하여튼 좋은 세상이야."
"응. 옛날에는 떡만 했던 것 같은데 별게 다 들어와."
격세지감을 느낀다.
라테는... 정말 옛날 옛적에는 떡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떡이 아니면 경고라도 받는 줄 알고 그저 떡만 돌렸던 때가 있긴 했다.
나도 과거 육아휴직 후 복직을 앞두고 떡을 들고 인사드리러 가곤 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말 달라, 우리 때랑은. 그치?"
"그렇긴 하더라."
"나중에 자기도 승진하고 인사 발령 나면 내가 하나 거하게 해 줘야겠다."
"그래."
어디까지나 '현재 상태에서의 의지의 표현'이지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말 한마디 하는 데 돈 드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나는 백지수표를 남발했다.
"자기도 이번에 뭘 좀 돌렸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날마다 얻어먹는 것도 좀 그렇잖아."
"됐어. 어차피 티도 안 난다니까."
"하긴,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누가 뭘 한 줄도 모르겠다."
"정말 그래."
"아무튼 다음번 승진 때 내가 한 번 일 저질러야겠어!"
"그러든지."
말로는 괜찮다고, 됐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말만 그랬지 사실 내가 어떤 액션을 취했다면 못 이기는 척 받았을지도 모르지.
"나는 우리 집에 농산물이 많으니까 양배추라도 한 통씩 돌릴까? 어때?"
"아이고 됐네."
"봄에 완두콩 따서 한 봉다리씩 담아 주리?"
"아니야. 안 해도 돼."
"내가 싣고 갈게. 가서 1층에서 OOO 씨 찾으면 되지? 피켓 들고 'OOO 면회 왔음' '부인은 절대 아님'이럼 되는 거지? "
"어딜 온다는 거야?"
"왜? 내가 못 갈 데 가?"
"그런 거 안 줘도 돼."
"지금 내가 창피해서 그런 거야? 왜 오지 말라는 거야? 갈지 안 갈지는 내가 결정해!"
"당신은 진짜로 올 것 같애. 얘들아, 너희 엄마는 오고도 남을 사람이야."
남편이 격하게 반대했다.
10년 넘게 살았다고 한다면 해 버리는 내 성격 파악도 정확하시다.
"우린 뭐 안 줬는데 자꾸 받아먹기만 해서 그렇지. 그나저나 뭐가 좋을까?"
"안 해도 된다니까!"
사람이 변했다.
과거에는 철마다 나는 농산물들을 차에 실어주면 잘만 가져가서 나눠주시더니만.
"에휴, 가고 싶어도 입고 갈 드레스가 없어서 못 가겠네."
그날도 나는 '기승전 드레스 타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