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다려왔어, 체험학습

이게 몇 년만이야?

by 글임자
2023. 4. 8. 기쁜 봄날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우리 체험 학습 5월 4일 날 간대."

"정말? 좋겠다."

"어디로 가는데?

"글쎄?"

학교에서 학사 일정이 나오자마자 체험학습일과 여름방학, 겨울 방학 시작하는 날짜를 제일 먼저 확인하던 딸이었다.

마치 직장인들이 이듬해 달력을 보고 빨간 날을 애타게 찾아 나서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 우리 체험학습 놀이공원으로 간대!"

최근 딸이 중대발표를 했다.

"우와, 누난 좋겠다."

열 살은 열두 살에게 부러움의 눈빛을 가득 담아 우러러보았다.

"당연하지!"

열두 살은 열 살에게 살짝 우쭐함마저 느낀 듯했다.

"혹시 가족이랑 같이 갈 수는 없어?"

열 살이 행여라도, 하는 마음으로, 지푸라기를 꼬아 새끼라도 꼬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물었다.

"안돼!"

그런 턱도 없는 소리 하덜덜 말라고 단칼에, 열두 살은 딱 잘라 말했다.

"나도 가고 싶은데..."

열 살은 급기야 침울해졌다.

"너도 5학년 되면 갈 수 있어."

열두 살이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며 선심 쓰듯 천기누설을 했다.

야, 너도 갈 수 있어!


체험학습을 갈 곳은 놀이공원으로 정해졌다.

"근데 왜 놀이공원으로 가지?"

그동안 체험학습을 놀이공원으로 간 적이 있었던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도통 기억에 없다.

최근 3년 동안 체험학습이라는 것 자체가 멸종해 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지.

갔던 것 같기도 하고 안 갔던 것 같기도 하고, 다만 확실한 것은 유치원 다니고 어린이집 다닐 때는 확실히 여러 차례 갔었다는 사실이다.


그 놀이공원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족까리 몇 번은 간 곳인데 딸은 태어나 한 번도 안 가본 것처럼 마냥 들떠있었다.

"가면 좋지, 바이킹도 타고."

"합격아, 너 바이킹 무서워할 것 같은데? 엄마 아빠도 없고 가서 타다가 무섭다고 중간에 내릴 수도 없는데 신중히 생각하고 타라."

"에이, 그게 뭐가 무서워?"

딸은 겉으론 짐짓 대범한 척했지만 내가 알기론 겁이 있는 편이라 내심 걱정되었다. 남편이 바이킹을 타고 눈을 질끈 감고 넋 나간 사람처럼 얼떨떨해할 때 우리 세 사람은 앞뒤로 흔들리는 바이킹 아래서 깔깔대며 웃었지만 직접 타보라고 하면 선뜻 나설 멤버는 한 명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놀이기구에 강한 편은 아닌 것 같았고 특히나 딸은 어려서부터 겁이 많은 편이라 심히 걱정되었다. 나도 굳이 왜 돈을 주고 그런 무서운 체험을 하나 싶었다. 세상엔 그런 것들 말고도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딸은 그동안 어린이용 바이킹만 탔던 것 같다. 무서울 수도 있겠지만 참을 만한 애교 수준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그 애교스러운 무서움도 나는 사양한다.

놀이 기구는 질색하는 나에겐 범퍼카나 회전목마가 딱이다.


"맞아 엄마. 우리 어렸을 대 바이킹 탔잖아. 어떤 어른이랑 같이."

아들이 뭔가 회상하듯 기억 속에 잠긴 눈치 더니 이내 외쳤다.

"그래, 맞아. 그때 OO 이모가 같이 타 줬잖아. 그 이모 기억나?"

(혈연 관계도 아닌 남을 일컫는 말로 이모라는 명칭은 옳지 않다고 하지만 달리 아이들에게 쉽게 불리게 할 호칭이 없어 그냥 쓰기로 했다.)

"응."

우리 아들은 기억력도 좋구나.

벌써 7년도 더 전의 일인데 그걸 기억하다니 신통방통해하며 혹시나 하고 딸에게 물었다.

"합격아, 혹시 너도 그때 기억나?"

"아니! 난 기억 안 나! 그 어른이 누구야?"

딸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 아이들 어렸을 때 어린이용 (장난감 같은) 바이킹을 같이 타 준 적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참 잘도 따르던 직원이었다.

한두 번 만난 것도 아니고 그 직원이 너희한테 얼마나 살갑게 잘해 줬는데 그래?

정말 많이 예뻐해 줬는데 다 부질없었구나...

이래서 '어린이들이랑 바이킹같이 타 준 공은 없다.'라고 하는가 보다.


"그럼 또 이번에 도시락을 뭘로 준비하지?"

아직 한 달 가까이 남았는데 난 벌써부터 도시락 메뉴를 생각하고 있었다.

김밥이나 유부초밥, 둘 중에 하나가 간택될 게 뻔했지만, 별다른 메뉴도 없을 테지만 지레 걱정할 필요도 전혀 없는 노릇이지만, 미리부터 각오를 해야 한다.

아들이 그날 비록 같이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그 아쉬운 마음을 충분히 위로할 수 있을 만큼, 누나의 체험학습을 빙자해 어떤 음식을 요구하더라도 기꺼이 준비할 생각이다, 지금 마음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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