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너... 좀, 부담스러워 이제.

싫다는 건 아니고

by 글임자
2023. 6. 12. 우리 집 왕 스파티필룸

< 사진 임자 = 글임자 >


우리 집에 온 지 벌써 7년째지 아마?

이파리가 내 얼굴보다 더 커졌어.

꽃송이도 내 손바닥만 해.

정말 많이 컸다.


처음엔 공기정화에 좋다는 이유만으로 너를 덥석 들인 건 맞아.

그땐 너의 기능만 생각한 것도 맞아.

별다른 애정도 특별한 관심도 없긴 했지 그때는 말이야.

물을 주는 것도 단지 내겐 일거리였어.

처음 목말라하며 거실 바닥으로 그 많은 잎사귀들을 축 늘어뜨리던 때는 정말 가슴이 철렁했지 뭐야.

네가 잘못될까 봐 무섭기까지 했다면 믿을래?

그런데 물을 흠뻑 주고 나니까 세상에! 이제 막 땅에서 돋아난 새싹처럼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었어. 다시 살아난 네가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내가 바로 너를 포기하지 않았던 게 참 다행스러웠어. 스파티필름 넌 내가 처음 키워보는 식물 종류라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

그때 나는 새삼 알았어.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너도 생명이 있고 숨을 쉬는 존재라는 걸 말이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너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도.

네가 우리 집에 와서 처음 하얀 꽃을 피우던 날, 그때 내가 느낀 기쁨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사실은 말이야.

솔직히 나, 이제 네가 좀 부담스러워졌어.

오해는 하지 마.

싫어졌다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내 말은 다만 내가 평생 너를 잘 돌봐줄 수 있을지 염려된다는 거지.

너도 잘 알다시피 우리 집에 네 자녀(?)들이 여덟 개의 화분에 다 분갈이되어 있잖니? 물론 지인들에게 입양된 수도 좀 있긴 하지.

거실 환기를 하려고 네 옆을 지날 때마다 탐스러운 네 꽃에서 은은히 퍼지는 향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어. 근데 네가 사는 그 화분이 네겐 좀 버거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줄기차게 여전히 새 잎들이 나고 있긴 해서 아직도 네가 건재한 것 같긴 한데 과연 넌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10년째 키운다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

지금 이 상태로 계속 자라다간 내 키만큼 자라는 게 아닌가 몰라.

그동안 너에게 영양제 한 방울을 먹이지 못했는데도 이렇게 잘 자라줘서 난 고맙기 그지없어, 얘.


너의 꽃말이 '세심한 사랑'이라며?

그걸 이제야 알았지 뭐야.

그 꽃말이 무색하게 난 너에게 좀 무심하긴 했어 그치?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네 이파리들을 보고 있자면, 며칠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네가 제일 걱정인 거 혹시 너 알아?

매일 아침마다 바람도 쏘이고 간접적으로 나마 볕도 쬐게 해야 하는데 네가 눈에 밟혀서 떠나기 전부터 심란해지니 이게 다 웬일이라니?

감히 법정 스님의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어.

어느 순간 네가 말없이 나를 구속하기 시작했지.

자꾸 번식해서 불어나는 네 자식들을 보며 살림 느는 재미에 폭 빠져버린 새색시처럼 그렇게 부자라도 된 것처럼 얼마나 신나던지...

하지만 내겐 너 말고도 다른 멤버가 좀 있잖니.

고무나무, 금전수, 산세베리아, 스투키도 마구마구 자라나고 있잖아.

그중에 너희 가족이 가장 많은 건 너도 알지?

여기저기 나눠줘도 줄지가 않아.

조만간 또 입양 보내야겠어, 괜찮겠지?

너희가 짐이 된다고 느껴지기 전에 우리 사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그래.

무성한 잎 하며 쭉쭉 뻗은 줄기에 탐스러운 꽃을 보고 네가 탐이 나서 벌써 찜한 친구가 있단다.

처음엔 정말 널 보낼까도 심각하게 고려해 봤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역시나 넌 내가 끝까지 책임지는 게 좋겠어.

그동안 같이 산 정이 얼만데,안그래?


옆에 있으면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귀한 줄 모르다가 정작 없으면 생각나고 아쉬운 그런 사이, 우리...이미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나 봐. 네 마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다른 건 하나도 안 바랄게.

그저 지금처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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