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또, 완두콩이 풍년일까 봐 그래.
'과유불급의 적절한(?) 예'를 푸념하는 이
2023. 5. 15. 어떤 예감< 사진 임자 = 글임자 >
"올해도 완두콩이 엄청 열릴 것 같아. 심란하다."
"왜 그래, 엄마? 많이 여리면 좋은 거 아니야?"
"좋긴 하지. 근데 너무 많이 열려도 문제야."
"왜? 많으면 무조건 좋지 않아?"
"무조건 많다고 좋은 건 아니야.""
"아, 엄마가 일이 많아져서 그런 거야?"
"응. 옛날에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과유불급'이라고 한다지 아마?
방정맞게 지레 겁먹는 소리까지 하면서 콩깍지에 말라붙은 하얀 꽃을 떠올렸다.
정말 주렁주렁 많이도 달렸다.
"엄마, 올해는 완두콩 조금만 심었나 보네? 마늘밭에 있는 게 다야? 얼마 열리지도 않았던데."
"거기만 있는 줄 아나? 저기도 있고 고기도 있고 조기도 있제."
"뭐라고? 저게 다가 아니라고?"
"쩌~어기 가 봐라. 너 올해 그거 다 딸라믄 날마다 와서 살아야 쓰겄다."
그깟 완두콩이 열려 봤자 얼마나 열리겠냐 했지만 나는 경험상 잘 알고 있다.
내 두 손이 기억한다, 선명히도.
자손의 번식을 기원하며 폐백을 받는 자리에 더 이상 대추만 던져 줄 일이 아니다.
이젠 완두콩에게 자리를 내어주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추 혼자서만 오랜 세월 그 자리를 독식해오지 않았는가.
대추에게도 양심이 있다면 이제 그만 이렇게 박수 쳐 줄 때 떠나야 마땅하리.
완두콩이 그렇게 가성비가 좋은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얼마나 '징그럽게도' 많이 열리는지 정말 질릴 정도였다.
지난 이태 동안 완두콩이 얼마나 풍년이었는지 나만 호되게 당했었다.
덕분에 지인들에게 인심을 실컷 쓰긴 했지만 말이다.
(농사는 부모님이 다 지으시고 나는 다 열린 완두콩에 두 손만 올려서 따 온 것뿐인데.)
작년 겨울에 심은 완두콩이 한창 여물어가고 있다.
처음에 나는 전에 비해 현저하게 그 양이 줄어든 줄 알고 살짝 서운한 마음까지 들 뻔했다.
그러나 엄마가 알려주신 그 핫스폿들을 순찰해 본 결과 올해도 아마 '어마어마하게' 수확을 할 것 같은 (불길하다고 해야 하나, 행복하다고 해야 하나?) 예감이 들었다.
가끔 엄마는 나만 믿고 '일단' 일을 저지르는 게 아닌가 싶게 대책 없이 '무작정 많이' 심고 본다, 고 나는 확신해 마지않는다.
가끔은 힘에 부쳐 못마땅해하면서도 결국엔 다 내 차지가 되어 수확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농사일이란 게 뿌린 대로 다 거둔다는 보장도 없고, 수확할 시기까지 그 농작물들이 무사할지 어쩔지도 모르는 일이니만큼 '안전 제일주의'를 지향하시는 분이 바로 나의 엄마다.
간혹 '혹시 몰라서' 여유롭게 대비한 일이 감당도 못할 정도까지 되어버릴 때면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최근에 완두콩을 해년마다 100Kg도 넘게 수확한 것 같다.
분명히 밝히지만, 우리 집은 완두콩 장사하는 집이 아니다.
그저 밥에 '조금' 넣어 먹으려고 한 것뿐이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해서 모자자란 듯싶으면 더 욕심이 나고, 넘친다 싶으면 귀찮아진다.
처음엔 알알이 여문 그것들을 톡톡 까면서 콩깍지 한가득 들어찬 콩알들이 대견했지만, 그런 재미도 한두 번이지 싫증이 나다 못해 귀찮고 짐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애쓰고 가꾼 농산물을 순식간에 헌신짝 취급을 해버리는 딸이라니!
이런 걸 고급 전물 용어로 '복에 겨웠다.라고 한다지 아마? 유사 표현으로는 '호강에 겨웠다.'가 있을 것이다.
풍년이면 그저 고마워할 일이다.
하늘과 바람과 땅과 부모님과 문제의 그 완두콩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게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의 딸 된 도리려니...
저 콩알만 한 것이(콩들은 다 콩알만 하다.) 올해는 또 얼마나 어마무시하게 본때를 보여주시려나?
완두콩밭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올해도 기필코 다 따고야 말지어다.
벌써 나눠줄 지인들 리스트를 작성하는 중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집 냉동실에는 아직도 2022년산 완두콩이 안정을 취하고 있다.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마땅하지만 '햇것'에 더 끌리는 마음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일단 냉동실에 들어간 오만가지들은 철저히 소외당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내 잊힌다는 것을 말이다.
새것이 어여쁘고, 싱싱하고, 본능적으로 끌린다.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이 강력한 무엇.
그러나 이게 어디 완두콩에만 한할 일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