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수박을 처음 본 사람들

거울을 처음 본 사람들보다 더 했다.

by 글임자
2023. 6. 4. 이게 어떤 수박이 될지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어째 수박이 안 크고 날마다 저 모양이다냐?"

"그러게. 이모가 종묘상에서 속아서 샀나 보네."


내일모레 일흔을 앞둔 엄마, 팔순을 향해 가는 아빠, 세상엔 커다랗고 둥근 수박만 있는 줄 알고 사신 분들이다.

수박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크기가 그대로여서 처음엔 모종을 주신 이모님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찔렀었다.

'가물어서 그런가' 하시며 아빠는 매일 줄기차게 물을 주셨다.

나도 재작년까지 집에서 동그랗고 커다란 수박 모종만 사다 심었기 때문에 작년에 심은 수박이 애플수박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그러니까 애플 수박 소동은 대강 이러했다.

작년에 친이모댁에서 수박 모종을 몇 개 가져와서 우리 밭에 심었다.

이모는 (문제의) '그 수박'이 정말 달고 맛있는 종자라며 특별히 우리에게 몇 개를 보내주신 것이다. 식구들이 수박을 잘 먹고 특히 손주들이 수박을 좋아해서 그 모종으로 만족하고 더는 따로 수박 모종을 사서 심지 않았었다.

작년에 좀 가물었던 터라 고추밭 옆에 가지와 수박을 더부살이로 키우면서 고추에 물을 줄 때 수박과 가지에도 물을 주며 애지중지 키웠다, 물론 아빠가 말이다.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수박을 따는 시기까지 검색하시는 치밀함을 보이시며 이제나 저제나 수박이 다 커서 익기만을 기다리셨다.

"그렇게 두드려 본다고 아는 것이 아니여. 때가 되믄 다 익어. 날짜 가기만 기다리믄 써."

라며, 자꾸만 통통 수박을 두드려 보시는 엄마 옆에서 아빠는 콧방귀를 뀌셨다.

그런데 입수한 정보대로 수박을 수확할 시기가 다 되어가는데도 어느 순간 수박이 성장을 멈춰버린 것이다. 아빠는 처음엔 물이 부족해서 잘 안 크나 싶어서 물을 주고 또 주셨다. 그런데도 수박의 크기는 변함이 없었다.

농사를 하루 이틀 지어보신 분이 아니라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셨다.

아니, 그보다 앞서 처형(내게는 이모가 되시는 엄마의 언니)을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어째 이런 것을 줬다냐. 종자도 안 좋은 것이구만. 좋기는 뭣이 좋다고! 저것이 클 줄을 모르고 맨 그 모양이다. 어째 다 그라고 생겼다냐. 종자가 다 불량이구만. 아이고, 어쩔끄나. 올해 수박은 다 먹었다. 종자 좋은 것이라고 그러더마는 못쓰겄다!"

라며 엄마 앞에서 대놓고 누군가에 대한 원망의 넋두리를 거침없이 하셨던 것이다.

"언니가 그 종자가 달고 맛나다고 준 것인디. 이상하구만. 물을 더 줘야 쓸란가?"

라고 말씀하시며 엄마는 은근히 팔이 안으로 굽으셨음은 물론이다.

"아이고, 올해 원 없이 수박 먹을 줄 알았더니 틀렸네. 그냥 장날 가서 사다가 심을 걸 그랬구만. 저거 크지도 않고 먹지도 못하는 거 어쩔까?"

라고, 아빠 편을 더 들며 말하는 이는 단연 나였다.

그동안 수박을 심고 키워 본 경험을 미루어 보아 크기가 어느 정도는 커진 후에라야 속이 차고 익기도 하는 것이었는데, 그때 그 수박들은 하나같이 아기들 머리통만 한 크기밖에 안 되었다. 그래서 종자가 안 좋은 것이라 중간에 크다 말았다고, 결국 제대로 다 자라지 못한 수박은 속이 익을 턱이 없으므로 수박 구경은 다 했다고 부모님과 나는 지레 단정 지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마트에서만 보던 '애플 수박'이었을 줄이야.

"언니, 어째 수박이 크도 않고 맨 저라고 그대로만 있네. 종자 잘못 샀네. 언니네 수박도 그 모양인가? 우리 집에 온 것은 다 그 모양이여."

어느 날은 엄마가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듯이 원망하셨다, 고 나는 느꼈다.

"내가 말 안 했냐? 그거 미니 수박이여. 쬐깐한 거여. 원래 그라고 쬐깐한 거여."

라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이모의 답변이 내 귀에도 또렷이 들렸다.

어쩐지, 그럴 리가 없지. 이모가 우릴 속일 리가 없지.

"수박이 원래 그라고 생긴 것이라고 하구만, 느이 아빠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랬다야."

이모와 통화를 끝낸 엄마는 속이 다 후련하다는 듯 이미 옆에서 다 듣고 상황 파악이 완료된 내게 말씀하셨다.

전래 동화 속에서처럼 '거울을 처음 본 사람들' 못지않게 애플 수박을 처음 본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소동이었다.

부모님은 그렇다고 치고, 나는 나름 신여성이라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분명히 마트에서도 그 요망한 애플 수박을 본 적도 있는데, 난 왜 그걸 생각 못했던 걸까?

"우리는 몰라서 그랬제만, 너는 젊은것이 그것도 몰랐냐?"

라고 불통을 내게 튀기는 아빠 말씀에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다.

몰랐다기보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었을 뿐이다. 씨 없는 수박 얘기는 많이 들어봤으나, 애플수박은 우리 집에서 낯설었던 것이다.


벌써 수박꽃이 피었다.

올해는 5일장에 가서 엄마와 직접 애플 수박과 일반 수박 모종을 사서 심었다.

그런데 아뿔싸,

어떤 게 애플 수박이고 어떤 게 일반 수박인지 모르겠다.

겉보기에는 넝쿨이며 꽃이며 막 생긴 모양새가 비슷비슷하다.

또 커봐야 알겠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더 이상 크지 않고 '계속 그 모양'인 것이, 그놈들이 바로 애플 수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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