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결국, 입원하셨다.

엄마가 집을 비우는 방식

by 글임자
23. 4. 6.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근데 아빠 밥은 할 줄 아셔?"

"밥은 할 줄 알제. 코드만 꽂으면 되는 거 그거."

"엄마 없으면 아빠가 다 해야지 어쩔 수 없지 뭐."

"내가 미역국 끓여 놨다."


내일모레 출산할 산모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당분간 집을 비울 엄마는 사골국도 아니고 뜬금없이 미역국을 한 솥 끓이셨다.

분명히 아빠 혼자만 드실 예정이었으나 동네에 혼자 계신 분들을 다 초청해서 몇 끼를 드시고도 남을 양이다.


"아이고, 무슨 미역국을 이렇게 양껏 끓였수 그래?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라도 한두 번 먹어야 맛있지 하루 종일 며칠 먹으면 맛도 없다니까 그러네."

내가 매일 들여다보며 새로운 반찬을 해서 나를 것도 아니면서 괜히 엄마의 채비를 타박했다.

이렇게 결국 엄마는 입원을 하게 되셨다.

어지간해서는 아프다는 얘기도, 병원 가자는 말도 안 하시지만 오죽했으면 입원이라도 해야겠다고 했을까.

처음에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랐다.

병원비가 무서워서라도 입원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짠순이가 바로 우리 엄마다.

그런데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며칠은 입원해야 쓰겄다."

이렇게 단호하게 나오시는 게 아닌가.

아빠와는 합의가 된 사항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으나 엄마는 이미 결심을 하신 후였고 나는 옆에서 필요할 때 도움만 주면 그걸로 족했다.

"1인실 말고 다인실로 해라."

라고 신신당부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물론.


"한 번씩 집에 가 봐라. 아빠 어쩌고 계신가 들여다봐라."

"엄마 없어도 아빠는 알아서 잘 계시니까 그런 건 신경도 쓰지 말라니까!"

"그래도 니가 한 번씩 가 봐."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병원에 있는 동안은 집 생각하지도 말고 푹 쉬고 계셔."

47년도 더 넘게 산 부부 사이에 무슨 애틋함 같은 것이라도 있는 걸까.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끈끈한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집에 가면 장 뚜껑 열어 놨는가 확인해 봐라. 느이 아빠 틀림없이 열어 놓지도 않았을 거다."

"엄마, 지금 장 뚜껑이 문제유? 뚜껑을 열든 덮든 아빠가 다 알아서 할 거라니까?"

"가서 안 열어 놨으믄 니가 가서 열어 놔라."

"아이고, 걸핏하면 미세먼지도 심한데 좀 안 열어 두면 어때?"

"그래도 열어 놔야 써!"

엄마는 장독대의 장들이 눈에 밟혀서 어떻게 입원을 하셨나?

엄마는 아빠의 안부가 궁금한 것인가 아니면 장독대의 안부가 궁금한 것인가, 과연.


나이가 들면 결국 부부밖에 없다는, 그 믿을 수 없고 믿기도 힘든 말들을 많이 들어온 터라 한때 오해할 뻔도 했다.

그러나, 엄마의 입원일을 바로 코앞에 두고도 장 달이는 일을 가지고 두 분이 티격태격하시는 모습을 목격한 나는 과연 저런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 정말 근거가 있기는 한 말인지 또 뜨악해질 뿐이었다.

하긴, 내가 잠깐 본 두 분의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남남이 만나서 47년 이상을 같이 살면서 어떻게 항상 좋을 수만 있으랴.

47년이라니.

내겐 너무나 까마득한 시간이다.

이제 겨우 결혼 12년 차인 나는 상상도 안되는 시간이다.

그 결혼 생활이란 것도 언제나 좋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겐 너무 터무니없고도 허무맹랑하게만 들릴 뿐이다.

사이좋은 부부는 사이좋은 대로, 수 십 년이 흘렀어도 티격태격하며 사는 부부는 또 그 나름대로, 각자 그들의 세월을 사는 거겠지.


어린 자식이라도 떼어 놓고 잠시 어딜 다니러 가는 사람처럼 엄마는 아빠만 남을 집을 못내 못 미더워하셨다.(고 나는 느꼈다.)

"병원에서 뭐라고 하던?"

그래도 입원 수속을 마치자마자 바로 내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아빠였다.

아들도 아니고 며느리도 아니고, 하나뿐인 사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입원 중에도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꼭 통화도 하셨다고 한다.

47년을 거저 산 건 아니었나 보다, 우리 부모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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