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8. 일찍이 케일 먹고 자란 닭 얘기는 못 들었느니라.<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가씨, 왜 케일을 저렇게 클 때까지 놔뒀어?"
"케일인 줄 몰랐지."
"그거 아가씨가 사 왔다던데?"
"엄마가 자꾸 브로콜리라고 하니까 그런 줄 알았지. 어쩐지 브로콜리가 생길 기미가 안보이더라."
큰오빠 내외가 친정 집에 왔을 때였다.
나를 보자마자 새언니는 도대체 케일이 저 지경이 되도록 수확도 안 하고 뭐 했냐며, 어떻게 케일을 브로콜리라고 착각을 할 수 있는지 황당해했다.
엄마 때문이다.
핑계일 수 있지만 엄마가 계속 그것을 브로콜리라고 우기셨다.
그러나 그 종자를 직접 사다 준 사람이 나다.
고로 내가 죄인이다.
"엄마. 우리 케일 심어서 나중에 즙도 짜 먹읍시다. 아빠도 드시고 나도 가져가서 먹어야겠네."
분명히 이렇게 내가 인심 쓰듯이 케일 씨앗 한 봉지를 사 들고 친정에 갔었다.
아빠는 정성껏 씨를 뿌리고(일일이 간격을 맞춰서 하나씩 심으셨다.) 날이 가물 때면 물을 주고 햇볕이 강할 때는 볕을 가려줬으며, 행여라도 달팽이 그 못된 것이 다 갉아먹어 치우지는 않았나 매일 들여다보며 그것을 기르셨다.
"엄마 저기에 뭐 심었어?"
"그거 브로콜리제. 어째 안 큰다. 진작 브로콜리가 나올 때가 됐는디. 너 종자 잘못 사 온 거 아니냐?"
"잘못 사긴 뭘 잘못 사? 곧 나오겠지."
나도 얼떨결에 케일을 브로콜리로 둔갑시키고 엄마 말씀에 휩쓸렸다.
내가 사다 주고도 케일인지 브로콜리인지도 모르다니.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집에 브로콜리 종자가 있어서 부모님이 그걸 심으신 거라고 생각했다.
작년에 애플 수박인 줄도 모르고 수박이 안 큰다고 속아서 종자를 가져왔다고 한참 누군가를 원망했던 사건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쩐지, 심은지가 언젠데 손톱만 하게라도 브로콜리 곱슬머리가 보일 때가 됐는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없더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케일을 브로콜리로 착각하다니.
우리 부모님과 나는 왜 이럴까.
"아가씨, 저게 보기엔 좀 커서 그렇지 그래도 쌈 싸 먹으니까 그렇게 안 질겨. 맛있더라. "
"그래. 그럼 언니 많이 챙겨 가슈."
나는 그렇게 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 게다가 내가 기대했던 것은 차라리 브로콜리였으므로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저런 것을 어디 가져가서 먹는다고 그러냐. 다 뽑아서 닭이나 줄란다!"
옆에서 며느리와 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엄마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단히 각오하신 바를 우리에게 선언하셨다.
엄마 혼자서 브로콜리라고 굳게 착각하시고는 이제 와서 저 나무 같은 케일을 못마땅해하셨다.
얼마 후 집에 가보니 케일이 있던 자리는 휑했다.
이미 다 뽑혀서 닭들이 케일 잔치를 벌였다.
너도 나도 케일 이파리 하나씩 물고 귀한 줄도 모르고 건성으로 뜯어먹다가 팽개쳤다.
촛불 잔치도 아니고, 케이크 잔치도 아니고, 케일잔치라니...
텅 빈 그 자리는 '풍금이 있던 자리'보다 더 쓸쓸해 보였다.
너희라도 잘 먹으니 됐다.
나도 먹은 셈 치련다.
누가 먹으면 어때?
아무라도 먹으면 그만이지.
그리고 먹고 죽은 닭은 때깔도 곱다더라.
솔직히 애초에 너희를 생각하고 심은 건 아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는 아니지.
그나저나 케일 먹고 자란 닭은 너희밖에 없을 거야.
이렇게 우린 너희를 생각한단다.
'태초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서' 닭들이 케일 뜯어먹는 소리 들렸으랴.
소문도 안난 잔치에 먹을 케일은 많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