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풀 라이프>
주말 오후, 미뤄뒀던 핸드폰 갤러리를 정리하고 있었어요. 수천 장의 사진을 슥슥 넘기면서, 어떤 건 남기고 어떤 건 지우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만약 이 모든 사진 중에 딱 한 장만 남겨야 한다면, 나는 어떤 사진을 고르게 될까?
어떤 사진을 고를까, 하며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을 때, 오래전 봤던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제 머릿속에 묵직한 상상을 던져준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입니다.
# 평범한, 그러나 가장 소중한 기억
영화는 천국으로 가기 전, 일주일간 머무는 중간역이 배경이에요. 규칙은 딱 하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 고르는 거죠. 그러면 중간역 직원들이 그 기억을 영화처럼 재현해 주고, 사람들은 오직 그 기억 하나만 가지고 영원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신기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르는 기억이 전혀 대단한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고향에 돌아와 먹은 어머니의 주먹밥, 어릴 적 탔던 전차에서 불어오던 바람, 좋아하는 사람의 무릎을 베고 누웠을 때의 감촉 같은 것들이요. 아주 사소해서 잊힐 뻔했던 찰나의 감각, 남에게 굳이 전하지 않았던 틈이 그들의 인생을 대표하는 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 과연, 기억은 선택될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다 보니, 저는 이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과연 기억은 온전히 선택될 수 있을까? 어머니의 주먹밥이 소중했던 것은, 사선을 넘나든 고통과 유년의 사랑이 전제되었기 때문일 테죠. 연인의 무릎을 기댄 순간이 영원이 된 것은, 그 이전의 수많은 망설임과 설렘의 시간이 쌓여있었기 때문일 거고요.
결국 모든 기억은 서로에게 빚을 진 채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요? 하나의 정점을 위해 수많은 순간들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사소함의 경이가 긍정하는 인생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어떤 기억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이 그 기억을 소중하게 만들었는가’라고 말이죠. 하나의 기억을 영원으로 가져가겠다는 선택은, 결국 그 기억을 가장 빛나게 만들어 준 이전의 모든 희로애락까지 기꺼이 끌어안겠다는 다짐일 테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믿습니다. 당신의 가장 사소한 틈을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바로 당신이 살아온 모든 시간의 총합이라는 것을요. 애써 그 소중함을 되새기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지나온 모든 틈들이, 이미 당신을 충분히 빛나게 하고 있으니까요.
오늘 밤의 휴식, <원더풀 라이프>는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