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찾는 사람의 틈 이야기
안녕하세요, 온틈 에디터 오세훈입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로 채워진 삶을 지향합니다. 더 많은 경험, 더 많은 관계, 더 많은 정보. 어쩌면 그 지향은 습관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관성적으로 무언가를 채워 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그렇기에 때로는,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비워내는 용기를 통해 비로소 진짜 휴식을 마주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온틈의 두 번째 인터뷰는 바로 그 ‘비움의 미학’을 이야기하는 사람, 마케터 서진 님의 이야기입니다.
서진 님은 일과 휴식, 집과 잠자리, 소음과 고요 사이에 자신만의 단단한 경계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 안에서, 비워냄으로써 채워지는 ‘여백’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여백을 좇는 그녀의 일상과 생각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 휴식, 경계를 긋는 일
세훈: 아주 조심스럽게, 일상부터 여쭙겠습니다. 퇴근 후, ‘아, 이제 정말 하루가 끝났구나’하고 실감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서진: (웃음) 대단하게 말할 건 없긴 한데요, 하나가 딱 정해져 있어요. 잠옷으로 갈아입었을 때요. 저는 집에서 입는 홈웨어랑 잠옷, 파자마가 구분되어 있거든요. 집에 돌아와서 활동할 때는 홈웨어를 입고, 정말 ‘이제 자야겠다’ 싶을 때, 침대에 들어갈 때만 파자마를 입어요. 사실 집안일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하고, 그런 활동들은 아직 일상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파자마를 입는 순간에 비로소 하루가 끝났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세훈: 하루의 끝을 구분하는 명확한 스위치가 있는 거네요. 그럼 ‘회사의 나’와 ‘일상의 나’를 구분하는 방법도 있을까요?
서진: 저는 그 둘을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딱히 그런 방법은 없는 것 같긴 해요... 근데 출퇴근길에 가끔 음악도, 그 무엇도 없이 그냥 바깥을 구경할 때가 있어요. 출퇴근길이 길어서 버스를 타고 역까지 가는 30분 동안, 이어폰을 꽂고 있더라도 음악을 틀지 않고 그냥 창밖 풍경을 보고, 사람들을 관찰해요. 너무 많은 콘텐츠를 보다 보니 스스로 지쳐서, 일부러 그런 시간을 만들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마케터다 보니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더라도 계속 일 생각이 나서, 의도적으로 비우는 시간을 만드는 것 같아요.
세훈: 비우는 것에 진심이시네요. (웃음) 그럼 정말 마음먹고 쉬어야겠다 생각할 때는, 보통 어떻게 하시나요?
서진: 저에게 일상에서 가장 쉽게 잘 쉬는 방법은,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자기'에요. 맛있는 거 해먹고, 푹 자는 거. 그리고 뭔가 지치고 답답할 땐 일단 산책을 나가요. 산책로를 어슬렁거리거나 벤치에 앉아 동네의 일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다 보면 조금 차분해지더라고요.
그리고 한 번씩 큰 에너지를 얻는 건… 아무래도 여행인 것 같아요. 여행 다니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여태 다녀왔던 곳 중에 튀르키예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같은 지구에 이런 세상이 있구나’하며 새로움에 설레기도 하고, 또 그 속에 ‘다 같은 사람 사는 모습’을 보며 평안을 느끼기도 하고요. 저는 문화와 역사가 가득한 도시도, 광활한 자연의 풍경도, 또 그 언저리에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는 모습들도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호기심 많은 저에게, 튀르키예는 그 모든 걸 보여주는 곳이었어요.
# 틈, 여백의 발견
세훈: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저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그럼 이제 주제를 조금 바꿔서, 일할 때나 평소에 자신도 모르게 계속 만지작거리는 ‘애착템’ 같은 게 있나요?
서진: 핸드크림을 정말 습관적으로, 아주 많이 바르는 편이에요. 어릴 적부터의 습관이긴 한데, 지금은 손이 건조하지 않은데도 계속 발라야만 편안함을 느껴요. 손이 촉촉하게 유지되어야 안정감이 드는 거죠.
세훈: 그럼 핸드크림을 고르는 기준은 어떤 게 있을까요?
서진: 제품력은 당연히 좋아야 하고, 그 제품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어야 해요. 워낙 핸드크림을 많이 써서, 독특한 향이나,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도 물론 써봤어요. 그런데 결국 손이 가는 건 제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미는 것들이더라고요.
세훈: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말이, 서진 님이 생각하는 ‘틈’인 걸까요?
서진: 네, 맞아요. 이전에는 틈 하면 ‘잠깐 틈날 때 뭐 해야지’하는 짧은 순간만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온틈을 만들어가면서, 여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시간의 여백, 그리고 공간의 여백이요. 제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제품을 선호하는 것도, 그 제품이 일상의 행동 속에서 여백의 시공간을 만들어준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예쁘고, 화려하고, 눈에 띄는 것도 좋지만, 뭔가 드러내는 아름다움에 가까운 것들은 저에게는 가끔 어렵게 느껴지거든요.
# 여백, 그리고 온틈
세훈: 그럼 당연히 온틈도 그 여백을 그리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으시겠네요.
서진: 맞아요. 사실 아직까지도 밑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에 있지만, 추후에는 온틈이 그런 브랜드가 되었으면 해요. 소비자가 제품을 접했을 때, 그 배경을 몰라도 충분히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그리고 그 제품으로 인해 조금은 쉬어갈 수 있는. 그건 브랜드가 단단한 철학을 갖고, 그 철학을 제품에 온전히 담아낼 때 비로소 가능한 거겠죠. 저는 온틈이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사람들의 일상 속에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로 스며들어, 그들의 공간과 시간에 기분 좋은 ‘여백’을 만들어주는 브랜드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세훈: 깊은 생각 꺼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에게 서진 님만의 여백을 만드는 팁 하나를 선물한다면요?
서진: 거창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퇴근길 버스에서 잠시 음악을 끄고,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늘 보던 풍경이지만, 분명 어제와는 다른 하늘색과 구름 모양, 새로운 간판이 보일 거니까요. 그 작은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이, 제가 생각하는 여백과 가장 가까운 것 같아요.
서진 님과의 대화는, ‘틈’이 어떤 휴식을 더하는 게 아니라, 덜어내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소음을 끄고, 생각을 멈추고, 잠시 비워두는 시간. 그 고요한 여백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자신을 만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덜어내고, 어떤 여백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