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만 원짜리 돌멩이를 만들어볼까요?

by ontm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립니다. 홀린 듯 꺼내 든 화면에는 빨간색 숫자 배지가 붙어 있고, 인스타그램 아이콘은 보랏빛과 주황빛이 섞인 황홀한 그라데이션으로 반짝입니다.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앱을 누르는 순간, 총천연색의 사진과 영상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우리는 흔히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보는 자신을 탓하곤 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박약일까” 하고요. 하지만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애초에 이 기계는 당신이 눈을 뗄 수 없도록,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천재들이 작정하고 설계한 ‘디지털 슬롯머신’이니까요.


전 구글의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는 이를 ‘브레인 해킹(Brain Hacking)’이라 불렀습니다.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인간의 뇌가 원시 시대부터 ‘빨간색’과 ‘화려한 색’에 얼마나 취약한지 뼛속까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본능을 이용해 우리의 시선을 훔치고, ‘좋아요’라는 도파민 사탕을 끊임없이 먹여줍니다.


# 화려함을 걷어내자 드러나는 것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정교한 설계에 아주 작은 훼방을 놓기로 했습니다. 설정 버튼 몇 번으로 화면의 색을 완전히 빼버리는 흑백 모드입니다.


결과는 꽤나 충격적입니다. 흑백으로 변한 인스타그램 속 맛집 사진은 그저 명암이 다른 덩어리처럼 보이고, 빨간색으로 재촉하던 알림 배지는 힘 빠진 회색 점이 되어버리거든요. 150만 원짜리 최신형 기기가 순식간에 ‘지루한 돌멩이’가 되는 마법 같은 순간입니다.


뇌는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재미없어.”


짜릿한 시각적 보상이 사라지자, 신기하게도 손가락은 더 이상 스크롤을 내릴 이유를 찾지 못하고 멈춥니다.


# 3초 만에 흑백 세상 만드는 법


iPhone: 설정 > 손쉬운 사용 > 화면 및 텍스트 크기 > 색상 필터 ‘켬’ > 그레이스케일

Galaxy: 설정 > 접근성 > 시인성 향상 > 색상 조정 ‘켬’ > 흑백


# 지루함이 선물하는 감각의 주권


우리가 흑백 모드를 켜는 진짜 이유는 배터리를 아끼기 위함이 아닙니다.


나의 감각을 내가 선택하기 위함입니다.


화면 속 세상이 무채색으로 시시해질 때, 비로소 화면 밖의 세상이 채도를 되찾습니다. 눈앞에 놓인 따뜻한 차의 수색, 창밖 나무의 초록, 곁에 있는 사람의 생기 있는 표정까지. 우리는 그동안 손바닥만 한 세상의 색깔을 탐하느라, 정작 나를 둘러싼 ‘진짜 세상’의 색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스마트폰이 다시 재미없는 도구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재미있는 삶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당신의 세상에서 도파민의 색을 빼보세요. 그 밋밋하고 심심한 흑백의 틈 사이로, 잃어버렸던 당신의 진짜 감각들이 선명하게 피어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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