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에도 말했다시피 성악을 전공했고 유학까지 다녀왔다. 성악에 쏟아부은 시간을 다 합치면 20년이다. 이제 마흔하나 인 나에게 생의 절반이고 청소년기를 제외하면 전부라 볼 수 있다.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 나는 노래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삶에 연장선 따위는 없었다. 세상이라는 칼은 나의 20년을 도려냈다. 그동안 나에게 쏟은 부모님의 시간, 돈, 땀과 피가 흩어져 사라졌다.
힘들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지난 20년의 시간에 대한 생각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 잘려나간 시간의 더미 속에서 무엇이라도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려 애썼다.
그러다 깨달았다. 잘려나간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삶이란 빛과 존재, 그림자 같다는 것이고 나는 그저 그림자를 알기 위한 시기에 와있다는 것을.
진리에 관해 묻는다면 내가 딱 하나 확신하는 것이 있다. 세상 모든 불행은 상대적이고 그 불행이 있기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법칙이 우주만큼이나 절대적이라는 것.
상대와 절대마저 서로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듯 내가 아는 한 세상 모든 것에는 그에 반대되는 것이 있다. 있음과 없음, 차가움과 뜨거움, 높고 낮음.
그리고 선과 악, 미움과 사랑, 기억과 잊힘.
혹여나 누가 이런 내 생각에 의문을 제기해도 좋겠다.
그 의문마저 수용과 반대이니까.
물론 옛 철학자들처럼 변증의 줄다리기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불행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공식이다.
행복 = 현재의 좋은 상태 × 과거 불행에 대한 인지 정도
누군가를 잃어봐야 남아있는 사람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낀다. 만약 다리를 하나 잃었다면 그에 대해 원망하지 말자. 하나라도 남았다고 생각하자. 더 나아가 '팔은 아직 두 개 다 있네'라며 감사하자.
나의 20년은 나에게 당연했던 것이 어떻게 소중함이 되는 지를 가르쳐주었고 그 시간에 대한 탐색과 고민은 글로써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로써 온전히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불행은 나를 찾아오는 불청객이 아니다. 불행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필수불가결의 손님이며, 삶 전체를 완성하게 하는 그림의 명암과 같다.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 나의 삶을 노래하게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