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숙이

2021.11.10

by 물에물탄듯



2021년 11월 10일부터 32년의 시간을 거꾸로 돌아가 보려고 합니다.

-32년의 시간을 거꾸로 돌아가 보며, 열등감으로 차 있는 마음을 내려놓고 싶네요.




#1. 숙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동갑이며 같은 고향 사람이다. 출신 학교는 다르지만 워낙 작은 지역이어서 한 다리 건너면 모두가 알 수 있었다고한다.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절친인 성관이 아저씨의 집 근처에 살던 '숙이'에 대해 본 적은 없지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에 골목길에서 선배들이 때리고, 돈을 뺏으려고 하여 친구들과 그냥 도망가다가 아무것도 모르고 담 넘어 숨은 집이 '숙이'가 살던 집이었다고 한다. 숙이는 없었지만 미스코리아보다 이쁘던 숙이의 둘째 언니가 담 넘어 들어온 소리에 놀라 마당으로 나오셨다가 숨어있는 학생들을 보고 도와주셔서 아버지는 무사히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생 때 성관이 아저씨께서 '숙이 집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데 도와주러 가자'라고 하셔서 도와주러 갔다가 듣기만 하던 숙이의 어머니를 처음 뵙게 되었고, 숙이의 제일 큰 언니께서 도와줘서 고맙다고 차려주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왔다고 하셨다. 음식이 너무 맛있었고 야무진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고 하셨다. 그때도 숙이는 둘째 언니 집에 조카들을 돌봐주러 가서 만나지는 못했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그 숙이가 아버지의 사촌 동생 과외 선생님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게되었고, 작은 할아버지께서 숙이를 좋게 보시고 아버지와 선을 주선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어 할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집안 어른들께서 혼사를 결정하시던 시절이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작은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횟집에서 숙이는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고, 저희 할아버지께서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고 숙이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들어오시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숙이는 지금 아버지와 32년을 함께 살고 계시는 나의 어머니시다. 인연이 언제부터 시작이었나 싶게, 고등학생 때 담 넘어 도망간 곳이 나의 어머니 집이었고, 이사를 도와줬던 숙이 집에 몇 년 뒤 아버지께서 들어가셔서 함께 살게 되며 보금작리가 되었고, 그때 뵈었던 숙이의 어머니는 장모님이, 숙이의 큰 언니는 처형이 되었다.



#2. 저녁 9시.

저희 아버지께서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접고,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께서 하시던 어려운 사업을 이어서 하셨다.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사업은 시멘트 공장었는데, IMF로 시멘트 공장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모든 것이 넘어가면서 부도가 났다. 큰아버지께서는 정리를 하시고 다른 일을 하러 고향을 떠나셨지만, 저희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으로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시멘트 공장에서 혼자 일을 하셨다. 뜨거운 햇볕 아래, 줄무늬 민소매 러닝을 입으시고 시멘트를 찍어내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5살이었지만 할머니에게 '왜 우리 아빠만 일해?' '큰아빠는 어디 갔어?'라고 따져 묻던 나였다. 굳이 보태자면 할머니와 나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이란걸 서로 알았고, 손자와 손녀들 중에서 제일 사이가 어색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저녁 7시면 함께 퇴근을 해서 트럭을 타고 가까운 실업계 고등학교에 갔다. 아버지는 나를 조회대 위에 앉혀 놓고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신 상태에서 운동장을 몇 바퀴 뛰면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셨다.

그 달리기 시간에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을지.. 성인이 되어 헤아려봤다. 힘든 표현을 유난히 못하는 나의 아버지에게 그 시간은 숨 쉴 수 있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시간이었던 같다. 그 시간이 안식의 시간이었다면 아버지에게 공황장애 진단명 코드가 입력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달리기를 하고 계시는 동안 학교 조회대 뒤로 해가 지면 나는 '아빠~집에 가자'라고 하며 재촉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조회대 위로 올라오셔서 나를 안고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는 우리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