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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정 Mar 16. 2022

그럭저럭 산다

집에 돌아와 반기는 자식이 없으면

집에서만 힘들어야 하는데

밖에서도 힘드니 곤란했습니다


일하다 불쑥 밖으로 나와

고장난 기계 같은 몸을 벤치에 얹습니다

내가 과연 사무실에서 도망친 것인지

내 머릿속에서 도망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큰 결심을 하고

항우울제와 항불안제에 몸을 절이고

쓸데없는 애사심에 상사에게 보고합니다

제가 요즘 이렇고 저렇고 해서

성과가 잘 안 나는데 죄송합니다

곧 힘 내겠습니다


마음을 터놓는 몇몇 지인들은

하나같이 말렸습니다

왜 약점을 스스로 드러내느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거다


그래도 그냥 얘기했습니다

역시 지인들 말이 맞았습니다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년도 훨씬 넘어 지금 돌아보니

내가 맞았습니다

내가 편합니다

나 편한 게 맞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은 남이고

조직은 조직이고 나는 나였습니다

모두 언젠가 죽습니다

정말 대단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약에 기대 살아야 하는가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이제 신경 안 씁니다

편하면 됐습니다

잘 웃으면 됐습니다


그렇게

그럭저럭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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