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 반기는 자식이 없으면
집에서만 힘들어야 하는데
밖에서도 힘드니 곤란했습니다
일하다 불쑥 밖으로 나와
고장난 기계 같은 몸을 벤치에 얹습니다
내가 과연 사무실에서 도망친 것인지
내 머릿속에서 도망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큰 결심을 하고
항우울제와 항불안제에 몸을 절이고
쓸데없는 애사심에 상사에게 보고합니다
제가 요즘 이렇고 저렇고 해서
성과가 잘 안 나는데 죄송합니다
곧 힘 내겠습니다
마음을 터놓는 몇몇 지인들은
하나같이 말렸습니다
왜 약점을 스스로 드러내느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거다
그래도 그냥 얘기했습니다
역시 지인들 말이 맞았습니다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년도 훨씬 넘어 지금 돌아보니
내가 맞았습니다
내가 편합니다
나 편한 게 맞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은 남이고
조직은 조직이고 나는 나였습니다
모두 언젠가 죽습니다
정말 대단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약에 기대 살아야 하는가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이제 신경 안 씁니다
편하면 됐습니다
잘 웃으면 됐습니다
그렇게
그럭저럭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