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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Suno
Dec 03. 2024
고통의 측량
딸들에게
차가운 계절이 돌아온 탓인가.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 다시 찾아와 며칠 애를 먹었다.
살살 달래서 나아져야지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병원을 찾아갔다.
처음 방문하는 통증의학과의 의사 선생님이 질문을 했다.
- 지금 느끼는 통증을 숫자 10이 최대라고 했을 때 숫자로 표현하면 얼마나 불편한가요?
지금 내 통증은 과연 숫자로 표현했을 때 얼마일까.
고통을 측량하는 나의 기준에 따라 5쯤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대답에 알맞게 별다른 검사 없이 물리치료와 먹는 약을 5일치 처방해 주었다.
딱 내가 바라던 과하지 않은 처치였다.
겪어본 고통의 측량.
사람마다 그 측량은 절댓값이 얼마나 다를까 생각해 본다.
의사가 내 통증을 10 중에 얼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내가 겪은 최대치 10의 통증은 무엇인가?
경험적 판단에 따라 내 고통의 절댓값은 출산의 고통이다.
(혹시 군대 다녀오신 분은 군대가 그 절댓값인가요?)
첫애를 낳을 때의 산통이 이후로 나에게 고통의 기준치가 되었다.
그러니 둘째를 낳으러 갔을 때엔, 아직은 때가 아닌 것도 알게 되더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산통을 앙 다물고 견디고 있을 때,
- 산모님 통증 괜찮으세요? 그래프에는 많이 아픈 걸로 나오는데 잘 참으시네요.
-- 예, 아직은 때가 아닌 걸 알거든요.
내가 견디는 통증을 의료기가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니...
고통이 측량이 된다니 신기했다. 내가 인내하는 걸 기계가 알아주고 있다니.
아이를 낳고 난 이후로 몇십 년간 그랬다.
낯설고 막다른 두려움 앞에 있거나 도망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올 때,
나에게 거는 주문은
"나 애도 낳았잖아. 나 할 수 있지..!"
그러면 눈이 질끈 감아졌다.
그리고 웬만한 일은, 막상 해보면 두려워하던 염려만큼은 아니었다.
그런 경험들의 총체가 두려워지는 순간마다 삶을 견디게 만든다는 것도 살다 보니 터득하게 되었다.
마치, 산은 저마다 오르기 힘들지만 오르고 나니 다음 산도 다시 가게 만드는 것처럼.
내 고통의 측량값이 겨우 출산의 고통이라는 말이 어떤 이에겐 미안해지는 말일수 있다.
그보다 더한 고통을 아직 모르고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고통은 저마다에겐 절댓값일 것이다.
가시에 찔린 손톱 밑 통증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듯이.
고통의 절댓값은 누구나에게 꼭 필요한 게 아닐까.
내 살을 찢고 나오며 내게 고통의 절댓값을 만들어준 내 딸들이 있다.
열 달 품는 내내 출산은 막연한 두려움의 존재였고 산통은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탯줄이라는 물리적인 증거로
태생적으로 나와 연결되었던 내 새끼.
나는 그 아이들이 내가 겪어본 고통의 절댓값을 모두 알고 이해하길 원하지 않는다.
피가 흐르거나 살이 쓸리는 고통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아픈 사람의 존엄을 해치는 내면의 고통은 더더욱 모르고 살았으면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아이들의 고통의 절댓값이 턱없이 낮으면 어쩌지 싶어 걱정이 된다.
나는 아직도 내 딸들의 가장 영광된 순간과 가장 힘든 순간 모두를 알고 싶지만,
딸들은 앞으로 내가 모르는 시간에서 공간에서 고통도 겪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겪는 자신만의 고통의 순간도 올 것이다.
내가 그랬듯. 누구나가 그렇듯.
그러니, 너희들의 고통의 절댓값이 온실의 화초가 매겨둔 절댓값이 아니길...
어쩔 수 없이 바라고 있다.
내가 모르는 시간과 공간에서도 뿌리 뽑히지 않는 단단함이길.
상처받더라도 의연하게 털고 일어나 걸어나갈 고통이길.
살면서 끝없이 너희 스스로에게 질문할,
지금 느끼는 고통이 1에서 10까지 중에 얼마지?라고 묻는 질문에
너희가 가늠할 수 있는 고통의 총체값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하여 고통의 내력(耐力)이 굳건해지길, 고통의 뒷면에 맞닿아 있는 희노애락을 품을 수 있길.
고통의 총체를 알아버린 어미의 노파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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