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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 Oct 28. 2024

해외여행에서 다치면 몰 할 수 있을까?

자전거 때문에 생긴 일

“끼-----익!!!”

귓속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내 몸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자전거를 타고 있던 나는 눈 깜짝할 사이 아스팔트 바닥에 엎어졌다.


  베트남 푸꾸옥으로 여행을 간 첫날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은 아침이었다. 전날 밤, 공항을 빠져나오니 우기에 방문한 우리를 놀리듯,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을 때쯤 비로소 비가 멎었다. 자전거를 타고 리조트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온 가족이 자전거를 타는 아침은 평화로웠다. 앞으로 펼쳐질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찬 우리는 해변을 향해 달려갔다. 리조트 건물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빨리 이 길의 끝에 도착해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고 싶었다. 해변이 가까이 오자 앞서 가던 아이들이 속도를 줄였다. 나도 속도를 줄이기 위해 브레이크를 잡았다. 누구나 그러하듯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자전거를 타기 전 주의사항을 들었다. 브레이크가 말썽이니 멈출 땐 발로 땅을 디뎌 속도를 줄여야 한다고. 자전거를 잘 타는 내게 아주 쉬운 미션이었다. 그런데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매일 먹는 영양제를 마주할 때마다 아까 먹었는지 어제 먹었는지 헷갈려 늘 기억을 더듬는다. 계좌 송금할 때 열 한자리의 숫자가 한 번에 외워지지 않아 거듭 확인하며 겨우 입력한다.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무엇을 꺼내려고 한 건지 생각나지 않아 당황하기도 한다. 방금 전 들었던 주의사항은 당연히 자전거에 다리를 올리는 순간 잊어버렸다. 이 경고는 내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중요한 것이었는데, 불행히도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쌩쌩 달린 끝에 브레이크를 잡았다. 이 행동이 불러온 결과는 참담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주의사항을 새겨 들어 자전거를 타는 내내 브레이크에 신경 쓰고 싶었다. 리조트를 걸어서 둘러봐도 되는데 자전거를 타겠다고 마음먹은 나를 나무라고 싶었다. 남아있는 자전거가 세대뿐이었는데, 애들과 남편만 태우지 않고 굳이 기다려서 망가진 자전거를 빌린 나를 말리고 싶었다. 어제처럼 비가 억수같이 내려 아예 자전거를 못 탔으면 좋겠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엄청난 쇳소리와 엄청난 통증만 기억난다. 처음엔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챌 수가 없었다. 굉음을 듣고 주위에 있던 리조트 직원들이 달려와 쓰러진 나를 자전거에서 분리시켜 주었다. 아이들은 너무 놀라 멀찍이 서 있었다 다친 곳은 없는지 손부터 살폈다. 손가락과 손바닥, 팔과 팔꿈치까지 바닥에 쓸리고 까인 상처로 피가 나고 있었다. 자전거에 깔렸던 왼쪽 다리를 보았다. 엄지발가락은 본래 형체를 잃고 사정없이 부풀어 올랐다. 무릎에도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왼쪽 다리가 먼저 바닥에 닿고 그 위에 자전거, 그 위로  나머지 몸뚱이가 샌드위치처럼 차곡차곡 포개졌다. 무릎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게 분명하다.

  움직이기 힘들었다. 여행객이었던 나는 돌연 환자가 되었다. 조식을 먹기 위해 기분 좋게 타고 온 버기카를 구급차처럼 타고 방으로 돌아갔다. 호텔 직원이 오늘은 베트남 독립기념일이라 대다수의 상점은 물론 병원도 휴무라고 알려줬다.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아이들이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하루만 쉬면 나아질 것 같다는 선의의 거짓말로 달랜 후 남편과 함께 수영장으로 내보냈다.


  부기를 빼기 위해 다리를 심장 위로 올리고 소파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일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잠깐 고민해 보았다. 5년 만에 친정 엄마와 함께 떠난 해외여행이었다. 힘들어서 가지 않겠다는 친정 엄마를 더 나이 들면 갈 엄두도 못 낼 테니 함께 가자고 설득했다. 출발일을 2일 남겨두고 비로소 동의를 구했다. 간신히 모시고 온 여행이었다.  엄마도 나가서 애들과 수영도 하고 바다도 보고 오라고 등 떠밀었지만, 딸이 이런 모양새라 간병인을 자처했다. 다리를 올릴 수 있게 쿠션도 쌓아주고(쿠션들은 속도 없이 땅으로 툭툭 떨어져 일을 자꾸 만들었다.) 찜질용 얼음도 녹기 무섭게 수시로 갈아주었다. 모처럼 여행 와서 딸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다. 이러려고 같이 온 게 아닌데, 다리도 아팠지만 머리도 아팠다.


  내일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떡 일어나 이 여행을 지속하면 좋겠다. 어떻게 온 여행인데 인터넷의 지식을 총 동원해 잘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몸의 이상신호의 이유가 궁금할 땐 인터넷을 검색하며 병을 키우는 편이다. 마지막은 늘 암환자의 증상까지 닿아 최악을 상상하고 병원에 가기 전까지 걱정한다. 이번에도 별 수 없었다. 진단도 받기 전에 걱정부터 키우기 시작했다. 엄지발가락은 나빠봐야 골절 같았다. 골절은 깁스로 고정하면 되는데 무릎이 문제다. 검색으로 알아낸  최악의 상황은 십자인대파열로 인한 수술이었다. 반년 전 십자인대 수술을 한 지인의 고등학생 아들이 떠올랐다. 지인에게 연락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보었다. 경우에 따라 사고 몇 달 뒤에도 수술이 진행되는 게 십자인대 파열이라고 알려줬다. 오늘 당장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받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앞으로 8일이나 남은 여행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다리로 몰 할 수 있을까? 통증을 참기 위에 무릎에 파스를 뿌리며 고민해 보았다.


-절뚝거리며 여행을 마친 후

한국에서 엄지발가락 미세골절과 내측인대 파열을 진단받고 깁스 치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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