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휴일의 연애편지

검정치마

by siyu


요즘 들어 부쩍 검정치마의 음악을 다시 꺼내 듣게 된다. 몇 년이 흘러도 그의 음악 주변엔 새로운 ‘독자’들이 끊임없이 모여드는 걸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리스너라기보다 독자라는 표현이 참 와닿는데, 그의 노래는 귀로 듣는 동시에 눈으로 읽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조금은 투박해도 솔직하고, 어딘가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가사들. 처음 그의 음악을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은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생생할 것이다.


201 앨범 커버










“1집 나왔을 때 사람들이 가사에 초점을 많이

맞추더라고요. 저로선 그게 너무 의외였어요...”

(2011, 더뮤지컬 인터뷰)



정작 본인은 의외였다고 말하지만, 그 솔직함이 사람들을 끌어당긴 건 분명하다. 돌이켜보면 검정치마의 시작부터 그런 꾸밈없는 매력이 있었다. 2004년 뉴욕, 3인조 펑크 록 밴드. ‘검정치마’라는 이름도 그냥 어감이 좋아서 지었다니, 뭔가 그 시절 인디 밴드들의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멤버는 바뀌고 이제 조휴일 혼자 ‘검정치마’를 지키고 있지만, 그 이름 자체에 그의 음악적 뿌리가 담겨 있는 듯하다.


앨범 ‘201’, 한국대중음악 명반 리스트에도 올랐지만, 이 앨범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지점은 따로 있다. 뉴저지 지역번호 ‘201’, 고등학교 때 끄적인 곡들. 잘 짜인 이야기보다는 감정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는데, 바로 그 점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치 남몰래 훔쳐본 누군가의 일기장처럼, 서툴지만 진솔한 감정들. 정형화된 세상 밖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으려 했던, 그 시절 인디 씬의 공기와 맞닿아 있다는 느낌. 어쩌면 특정 세대가 이 앨범에 유독 열광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조휴일도, 그의 음악도 변해갔다. 특히 가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이 흥미롭다.


“예전엔 멜로디가 중요하고, 가사는 그걸 실어 나르는 도구라고 생각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쓴 걸 자꾸 좋다고 하니까 그걸 의식하게 되고, 그럴수록 오히려 안 좋아지니까요.” (2017, 엘르 인터뷰)


실제로 이후의 곡들에서 가끔 가사에 힘이 들어간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감상도 있다. 하지만 그는 외부 시선에 흔들리기보다 결국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뮤지션으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이는 그의 뚝심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TEAM BABY 앨범 커버


6년 만의 정규 앨범 <Team Baby>. 그 사이 세상도, 팬들도 변했다. ‘댓글만 달던 중학생’들이 이제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고, 그는 또 다른 세대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Hollywood’ 같은 실험적인 싱글을 거치며 다양한 방향을 탐색했지만, 결국 무엇을 하든 ‘검정치마’라는 이름이 가진 고유한 색으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그도 그리고 듣는 이들도 점점 더 분명히 깨닫게 됐다. "힙합이든 록이든… 결국 내 스타일처럼 들린다"는 그의 말처럼, 어떤 장르든 결국 ‘검정치마 스타일’로 들린다는 건, 그만큼 자신만의 색과 언어를 확고히 했다는 뜻이다.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결을 지켜낸다는 건, 아티스트에게 가장 강력한 자산 중 하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조휴일을 인디 신의 가장 독특한 존재로 남게 한다.


<Team Baby> 앨범 커버에 부모님의 결혼사진을 사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음악은 지극히 개인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 스스로 "음악하는 사람 중 가장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 출신일 거라 말하며, 어린 시절엔 예술가에게 어울릴 법한 "멋진 상처"가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는 일화는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그의 솔직한 면모다. 예술가에 대한 흔한 클리셰를 비웃는 듯한, ‘덜 멋있어서 오히려 더 멋진’ 솔직함. 이런 모습들이 그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Team Baby>는 단순히 한 사람을 향한 노래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를 찬양하기 위해 만든 앨범"이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지, 그의 음악은 그걸 보여준다. 누군가는 위로를, 누군가는 추억을 발견하며 그의 음악에 공명한다. 그래서 검정치마의 음악은 여전히 그의 많은 독자들에게 도착하는 ‘연애편지’와 같다. 밴드로 시작해 홀로 그 이름을 지키며 걸어가는 그의 길 위에는, 여전히 솔직하고 꾸밈없는 인디 정신이 빛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아직 이 길고 애틋한 편지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것이 [Thirsty]의 어두운 욕망이든, [Teen Troubles]의 혼란스러운 성장통이든,

그의 편지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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