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ien Rice
세상에는 각자 죽기 전까지 곁에 두고 싶은 앨범이 있다. 수없이 닳아버린 플레이리스트 속에서도, 어떤 시절의 나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차마 지울 수 없는 기록. 내게 데미안 라이스의 앨범 [O]는 그런 존재다.
이 앨범은 잘 다듬어진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연약하고 솔직한 감정의 파편들로 듣는 이를 흔들고,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우물 속으로 가만히 끌어당긴다.
앨범은 통기타 한 대와 첼로, 그리고 두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완성되었다. 단출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별다른 홍보 없이 영국 앨범 차트에 97주 머물며 조용히 퍼져 나갔고,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앨범 속 데미안 라이스는 말이 되기 전의 감정 같은 속삭임에서 시작해, 상처 입은 채 울부짖는 절규에까지 이른다. 그 위로,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리사 해니건(Lisa Hannigan)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겹쳐질 때, 이 최소한의 구성은 그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더 거대한 감정의 파고를 만들어낸다. 기술적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감정 그 자체가 하나의 악기가 되는 순간들로 가득한 앨범이다.
“Stones taught me to fly
Love taught me to lie
Life taught me to die”
- [O] 4번 트랙 cannonball 가사 –
[O]의 가사들은 삶과 사랑의 모순을 담은 한 편의 시와 같다. 대표곡 중 하나인 ‘Cannonball’에서 그가 “돌멩이에게 나는 법을, 사랑에게 거짓말을, 삶에게 죽음을 배웠다”고 말할 때, 우리는 아름다움과 고통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는 서글픈 진실과 마주한다. 이별을 직감하는 위태로운 순간을 노래하는 ‘Delicate’부터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상실의 시간까지, 앨범은 하나의 관계가 시작되고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물론 이 앨범을 세계적인 팬층을 이끈 데에는 영화 ‘클로저’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The Blower’s Daughter’는 수많은 이들을 그의 세계로 이끄는 관문이 되었다. 이 곡은 지금도 여전히 그의 대표곡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 앨범의 중심은 유명세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
[O]는 단순한 음반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모든 감정과 기억을 쏟아부은 기록이었고, 그 진심은 앨범의 모든 곡에서 고스란히 흘러나온다. 시간이 지나도 이 앨범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는 이유는, 슬픔의 가장자리까지 촘촘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O]는 한 시절의 감정을 남김없이 태워버린 재와 같다. 사랑의 가장 뜨거운 순간과 가장 차가운 상실이 나란히 누워 있는 이 앨범 안에서, 데미안 라이스는 가장 개인적인 고백이 어떻게 모두의 마음에 닿는 예술이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노래는 결국 단순한 이별 노래가 아닌,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태도이자, 그 안에 오래 머무는 마음에 대한 기록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삶의 어떤 모퉁이에서 길을 잃을 때면, 그의 목소리가 파놓은 이 깊고 슬픈 우물로 기꺼이 되돌아온다. 그곳에서 가장 오래된 슬픔과 마주 앉아, 이름 없는 안부를 묻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