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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May 18. 2023

같잖은 짝퉁 충무김밥

오늘 나는 실패했으니, 그대라도 맛난 식사 하시오...


딱히 먹을 반찬이 없다.

세상 게으른 주부인 나는 하루에 딱 한 번만 음식 만드는 데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데, 오늘은 그나마도 귀찮다.

밥상은 한없이 초라해지고 나를 대신할 사람도 없다.

라면 끓이기도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않는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싫을 때.

궁핍한 냉장고를 뒤적여봤자 아무것도 없다.

계란이라도......?

에잇, 귀찮다.

몸도 마음도 에너지도 텅 비어버렸다.


그때 문득 젊었을 적에 처음으로 명동에서 먹었던 충무김밥이 떠올랐다.

누가 날 데리고 갔는데 누군지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은 여러 번 먹어 본 듯이 자랑했는데... 누구였지?

아무튼 그가 그렇게 자랑한 충무김밥을 처음 먹어 본 나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엄마가 아침에 빈속으로 나가려는 내 입에 억지로 밀어 넣어준 김밥, 그저 조미김에 밥만 있는 그 김밥보다도 훨씬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맨 밥에 섞박지와 오징어무침?'

'이런 것을 돈 받고 팔아?'

김은 누졌는데 기름도 바르지 않아서 입에 쩍쩍 달라붙고, 섞박지는 시고, 오징어무침은 매웠다.

그 맛에 실망했고, 그깟 거 먹어봤다고 자랑질했던 그 사람도 우스웠다.

그런데 며칠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맛없는 충무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졌다.

나는 모르고 있었던 거다.

그게 충무김밥의 마성이라는 것을.


궁핍한 냉장고에서 그나마 비슷한 카테고리에 드는 음식들을 꺼내서 조화시켜 본다.

<오늘의 메인, 짝퉁 충무김밥>.

배추김치, 낙지젓, 구운 김에 밥.

'여긴 명동이다... 명동이다... 명동이다...'

.......

아니다. 여긴 명동이 될 수 없었다.

혹시라도, 누군가라도 이런 도전을 생각한다면 당장에 그 손을 내려놓으라고 하고 싶다.


오늘의 메인은 실패다.

맥주나 한 모금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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