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고 소외된 자들의,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
2024.06.18. ~2024.09.08
제작 CJ ENM
예스24스테이지 1관
정욱진, 윤은오, 신재범, 홍지희, 박진주, 장민제, 이시안, 최호중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버려진 헬퍼봇
4. 사랑하지 않기로 맹세하다.
5. 소외된 자들
6. 나오며
유명했던 영화가 있었다. 스탠리 큐브릭이 원안을 내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작업한 는 많은 인기를 끌었고 감독의 대표작이 됐다. 그 밖에도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가 개봉됐고 감정이나 자율성이 없는 로봇이 인간을 사랑을 하는 등 흔히 생각하는 로봇의 차가운 성질과 반대되는 설정은 중요하지만, 너무 일상적이라 우리가 신경 쓰지 않고 소홀히 하는 것들이다.
올리버는 사람을 도와주는 헬퍼봇으로,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올리버는 하루를 계획한 스케쥴대로 살았고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혼자인 올리버의 집을 찾는다. 그 상대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클레어였다.
클레어도 혼자 사는 헬퍼봇으로, 충전기가 고장나 작동이 정지할 위기였다. 사회성이 낮은 올리버는 문 열기를 망설였고, 결국 클레어는 정지한다.
하지만 올리버는 내버려둘 수 없어 다른 집 앞에 클레어를 두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올리버가 그녀를 충전시켜 준 덕에, 클레어는 위기를 모면한다. 이후로 일주일 동안 충전기를 고치는 동안만 정해진 시간에 올리버의 충전기를 빌리기로 한다. 그러면서 둘은 장난도 치며 친해진다.
충전기도 고쳤겠다, 더 이상 올리버에게 신세 질 필요가 없어졌으나 이미 둘은 서로에게 익숙해진 상태였다. 올리버는 클레어에게 빈 병 줍는 사실을 들키는데 사실 헬퍼봇은 경제 활동을 하는 게 불법이었다. 올리버가 빈 병을 주운 이유는 제주도에 살고있는 자신의 친구, 제임스를 다시 보기 위함이었다. 클레어도 제주도에 대한 인연이 있었는데, 반딧불이에 대한 추억이었다. 클레어는 반딧불이를 다시 보고 싶었고 언제 작동을 멈출지 모르니 지금 당장 제주도로 가자고 한다.
둘은 클레어의 친구에게서 차를 빌려 제주도로 향한다. 헬퍼봇이 주인 없이 움직이는 건 불법이기에 둘은 연인 행세를 하기로 한다. 호텔 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둘은 서로에게 더 익숙해진다.
클레어는 주인을 친구라고 말하고 한없이 믿는 올리버를 보며 생각이 많아지며 점점 올리버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올리버에게 먼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는 맹세를 요구한다. 올리버는 헬퍼봇에게는 사랑은 입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웃으며 넘기지만 진지한 클레어의 모습에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기로 맹세한다.
제주도에 도착 후, 올리버는 제임스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한다.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과 그가 죽었다면 가족들을 위해 일할 생각이었지만 결국 그는 엘피판 하나와 쓸쓸히 돌아와야만 했다. 제임스는 이미 죽었고 가족들에게는 새로운 헬퍼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찾아온 것에 놀란 눈치였다. 클레어의 말대로 상처뿐인 결말이었다. 하지만 클레어는 제임스가 올리버에게 LP판을 남긴 것에 둘이 진정한 친구였음을 깨닫는다.
다음으로 클레어의 소원인 반딧불이를 보러 가기로 한다. 어두운 밤, 둘은 소원대로 반딧불이를 관찰, 안전하게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 어색한 분위기, 이상한 자신의 상태, 올리버와 클레어는 자신들이 사랑에 빠졌다는 걸 깨닫는다. 사랑에 빠지지 않기로 맹세했지만, 클레어와 올리버는 사랑을 시작한다.
클레어가 가끔 어딘가 고장나긴 해도 행복하게 사랑을 한다. 하지만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리즈 특성상 클레어의 내구성이 올리버보다 좋지 않은 탓이었다. 결국 클레어는 혼자 남겨질 올리버를 위해 그간 함께했던 기억을 지우고 아플 일 없었던 옛날로 돌아가기로 한다. 올리버는 그러고 싶지 않았으나 클레어의 뜻을 존중, 둘은 함께 했던 기억을 지운다.
클레어와 올리버는 주인이 없는 헬퍼봇이다. 올리버는 젊었던 집배원이 은퇴하는 긴 시간 동안 홀로 살아왔다. 두 헬퍼봇 모두 구식이 됐고, 그들을 부렸던 인간들은 책임은 지기 싫고 알량한 동정심에 아파트에 버리고 떠났다. 구식이라서, 쓸모가 없어서, 마음에 안 들어서 같잖은 이유로 인간은 그들을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헬퍼봇은 그 이름답게 인간을 위해 가동된다. 올리버는 제임스를 기다렸다.
영원한 마음 같은 건 없어
그녀는 날 보며 울었어
세상 어떤 사랑도
계절처럼 끝이 와
결국 모든 건 변해 가
영원한 마음 같은 건 없어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
<어쩌면 해피엔딩> -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
우리는 쓸모없어진 물건을 쉽게 버리는데, 관계까지 쉽게 버린다. 휴가철에 유기된 반려동물 수가 증가하는 일은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인간은 아니더라도 엄연히 살아있는 생명체를 버리는 일도 빈번한데, 인간 모양을 한 헬퍼봇을 버리는 건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겠는가? 물론,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작중 제임스만 해도 그런 부분에서 미묘한 캐릭터이다. 제임스는 죽기 전에 올리버에게 엘피판을 전해줄 것을 가족들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주소를 몰라 전해주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올리버는 무조건적으로 주인을 기다리는 유기된 강아지처럼 살았다.
인간은 이성을 지닌 존재라며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더 새로운 기능, 더 발전된 기술로 갈아탐을 욕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쉽게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할 일이다.
클레어는 제임스가 올리버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했다는 증거라며 감동하지만 단언하긴 어려웠다. 맥락상 진정으로 올리버를 생각한 게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배신만 당해왔던 클레어 상황과 대조를 이뤄 제임스 – 올리버 관계를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의문이 든다. 그렇게 올리버를 아꼈으면서 같이 제주도로 데리고 가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작품에 나오지 않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들의 상황은 인간의 이기심을 단번에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하지 않기로 맹세하는 건 로맨스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다. 그럼에도 올리버와 클레어는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헬퍼봇에겐 ‘사랑’은 입력되어 있지 않기에 불가능한 것이라고 했지만 둘은 그것을 해냈다. 인공 지능의 위대함일까? 그래서 상대를 위하고 걱정하고, 배려하고 그 아픔도 느낀다.
사랑은 이성으로 이해 가능한 영역은 아니다. 호르몬의 농간이기도 한 사랑은 가끔 아무런 이익이 없거나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하게도 한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할 수 있는 비이성적인 행위이다. 동시에 “사랑하니까.”라며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행위들을 이해시켜 주는 어떤 것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여러 가지로 구성되는데 그중 상대에 대한 마음, 믿음, 신뢰가 있다. 클레어는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는 맹세란 방어기전을 세웠는데 이전 주인들이 마음이 변해서였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 영원을 약속한다. 헬퍼봇들도 인간을 닮게 했으니, 영원이라는 개념을 알 거고 인간인 입력한 대로 움직인다. 인간이 수정하지 않는 이상 입력한 대로 움직일 테니 헬퍼봇들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지키지 않는, 영원히 변치 말자는 약속을 그들은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서롤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건 지워야만 해
그건 버려야만 해
그건 잊어야만 해
<어쩌면 해피엔딩> - 그것만은 기억해도 돼
역설적이게도 헬퍼봇들은 변하지 않는 점이 장점이며 인간은 변하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이 감성에 지배되어 영원할 거라는 착각을 하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깨버리기도 한다. 장점이란 이름의 배신이다. 반대로 올리버와 클레어는 서로를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사랑을 한다. <어쩌면 해피엔딩> 속 올리버와 클레어는 인간보다 더 인간답다.
이쯤이면 과연 인간과 로봇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입력된 기능이 아닌데도 사랑을 하고, 약속을 지킨다. 지켜야 할 약속을 깨고,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인간보다 더 낫다. 우리는 조종받은 대로 움직인다고 비하하는 표현으로 로봇을 사용하기도 한다. 인간이 가장 우월하다고 믿을 수 있는 걸까? 오히려 뛰어난 지성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인간과 로봇을 가르는 것 중 하나는 자율성, 주체성일 것이다. 인간을 위해 고안된 그들이 ‘나’에 대해 인식,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정의하고 기능에도 없는 사랑을 해낸 클레어와 올리버를 입력된 채로 움직이는 단순한 존재로 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클레어와 올리버는 서로를 사랑하는 오류(?)를 일으키지만 그걸 고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선 서로가 문제라 생각하지 않았고, 알아줄 인간 주인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 된 건 그들이 버려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구식 헬퍼봇이 됐고, 어딘가 고장난다. 폐기되지 않아서 다행일지도 모르겠지만 책임지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필요한 부품이 단종되는 등 주인인 인간도, 기업과 정부까지 무책임하다.
이런 모습에서 한편으론 무책임한 현대와 동시에 단절된 인간관계를 엿볼 수 있다. 갑자기가 아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멀쩡한 가족이 있어도 왕래를 끊고 연락조차 하지 않는 독거노인 수가 적지 않으며 진작에 문제로 대두했다. 일자리가 없어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고, 질병으로 신체 이곳저곳이 아파도 호소할 이도, 도와줄 가족이 없다. 정부 보조가 있더라도 모두가 그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올리버와 클레어의 처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곁에 아무도 없었기에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올리버는 클레어를 만나기 전엔 토끼처럼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 루틴대로라면 가슴 아플 일은 영원히 없었을 것이다.
s오늘 서울 하늘 무척이나 맑음
오늘 내 방 안은 늘 그렇듯 따뜻
모든 건 제자리에
달라진 건 하나 없는 걸
작은 내 방 가득 쌓인 추억들
어디를 봐도 네 모습만 자꾸 번져와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도
널 그립게 해 미안해 못하겠어
<어쩌면 해피엔딩> -나의 방 안엔&Goodbye, My Room
클레어를 만나며 새로운 경험, 새로운 감정을 느끼며 그의 세계는 한 발짝 넓어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클레어의 존재감은 커졌다. 그러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클레어가 커진 만큼 이별의 아픔도 커졌다.
인간은 영원할 수 없음을 알고도 영원을 약속한다. 그래서 헬퍼봇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인간의 마음은 야속하기 짝이 없어 변치 않는 영원함을 상대에게서 원하기에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말하고, 높은 지능을 가지게 헬퍼봇을 빚었다. 하지만 헬퍼봇 클레어와 올리버는 인간이 바라는 결정체가 됨으로써 마음, 진심, 사랑, 배려가 더 강렬하게 전달한다.
작중, 재즈 싱어가 <우린 왜 사랑했을까>라는 노래를 부른다. 사랑하게 될 줄 몰랐고,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거역할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하지 말아야 하는 사랑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절망적인 끝을 알고도 사랑에 몸을 던지기도 한다.
로봇이라 같은 동작을 몇 시간 동안 해도 아픔이 없다는 장점은 있을지언정 결국 어딘가 망가지고 작동이 멈추는 날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늙고 쇠약해진 노인처럼. 그래도 올리버는 놓지 않았다.
매일을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난
매일을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난
<어쩌면 해피엔딩> - 사랑이란, 어쩌면
올리버와 클레어의 마지막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제목 <어쩌면 해피엔딩>처럼 짐작할 뿐이다. 사랑은 불가능을 뛰어넘게 한다. 그 모습을 보며 관객은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다. 올리버와 클레어가 보여준 사랑이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랑의 기본이면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일 것이다.
분명한 건, 올리버와 클레어가 한 사랑은 올리버가 제임스를 잊지 못한 것처럼 소중하고, 어두운 밤에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이처럼 아름답다.
*해당 게시글은 C- STRAW에 게재된 글입니다.
STRAW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c-str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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