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프로메테우스, 빅터 프랑켄슈타인
2024.06.05 ~2024.08.25
블루스퀘어 신한카드 홀
EMK 뮤지컬 컴퍼니
유준상, 신성록, 규현, 전동석, 박은태, 카이, 이해준, 고은성, 선민, 이지혜, 최지혜, 전수미, 장은아, 김지우, 이희정, 문성혁, 김대종, 신재희, 조민규, 김승후, 김승주, 장세린, 이시아, 다니엘라, 서만석, 도례미, 박래찬, 신지혜, 김선우, 박시하, 전예나, 현민기, 박진주, 공동환, 김찬후, 서태웅, 이호영, 조해인, 김세진, 노권, 조용옥, 박세형, 김찬, 안예빈, 박상령, 박세린, 류다휘, 배세은, 신예림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각색을 통한 비극성 강조
4. 프랑켄슈타인과 괴물
5. 처절한 자기 파괴적 복수, 스스로가 내린 천벌
6. 나오며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2024년을 기준으로 10주년을 맞이했다. <프랑켄슈타인>은 내세울 수 있는 한국 창작 대극장 뮤지컬로 마니아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많은 인기를 끌었고 브로드웨이에서 봤다는 자랑용(?)이 될 정도로 완성도가 훌륭하다. 그래서 이번 주제는 <프랑켄슈타인>으로 선정했다.
나폴레옹과 전쟁 중, 부상병들을 치료하던 앙리 뒤프레는 시체를 이용해 무기로 만드는 제 1사단 무기 관리 책임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발탁된다. 프랑켄슈타인은 인류를 위해 생명을 창조하는 목표가 있었다. 자신의 한계를 느끼던 앙리는 큰 감명을 받고 빅터와 함께 하기로 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 그들은 연구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전역한다.
빅터는 앙리와 함께 줄리아와 누나 엘렌이 있는 고향 스위스 제네바로 돌아온다. 전쟁 영웅임에도 유령 취급을 받으면서도 빅터는 생명을 창조하는 연구에 매진한다. 그러나 실험에 필요한 부패하지 않은 시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중, 룽게의 도움으로 시체를 구하지만, 이 일은 비극으로 되돌아온다.
장의사는 약속보다 더 많은 금액을 요구했고, 심지어 사람을 살해하여 준비한 시체였다. 이에 참지 못한 빅터는 돌로 장의사를 때려죽였고 앙리가 그를 걱정해 스스로가 죄를 뒤집어 쓴다. 죽음이 두려워도 빅터는 자신이 살해하였음을 자백하지만, 앙리는 사형을 선도 받는다.
결국 연구의 모든 걸 빅터에게 맡기고 앙리는 단두대에 올라 사형 당한다. 그렇게 빅터는 앙리의 머리를 이용해 생명을 창조하는 실험을 진행, 성공한다.
빅터의 실험으로 실험체가 생명을 얻어 기쁜 순간, 사라진 앙리의 머리를 찾아 룽게와 엘렌이 실험실을 찾아오고 그들은 실험에 성공한 광경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다. 경악을 금치 못하고 빅터를 지키려고 먼저 공격한 룽게는 피조물에게 목이 뜯겨 사망하고 만다. 빅터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자신이 살린 생명체를 죽이려 드나 실패한다.
몇 년이 지나, 빅터와 줄리아의 결혼식 날, 줄리아의 아버지이자 빅터의 외삼촌인 슈테판 시장이 실종된다. 그리고 빅터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그 손님은 바로 몇 년 전에 자신이 만든 생명체이자 실험체였다.
앙리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이제는 앙리라고 부를 수 없는 피조물은 빅터를 증오하고, 자신이 당한 만큼 고통을 안겨주겠다고 경고한다. 사실 도망자 신세가 된 괴물은 곰에게서 까뜨린느를 구해주면서 어느 투기장으로 유입됐고 돈과 유희를 위해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됐었다. 결국 참아왔던 모든 게 무너져 내려 괴물은 인간이길 포기하고 빅터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빅터는 괴물과 담판을 짓기로 한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동명의 원작 소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각색한 작품이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만들고, 괴물이 빅터의 주변인들을 살해하는 기본 골조는 동일하나, 차이점이 있다. 그중 가장 큰 차이점은 소설에선 괴물의 피해자였던 앙리를, 빅터가 앙리의 머리를 이용해 실험을 한다는 점이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관객의 이해와 비극을 위해 복수극으로 만들어 빅터와 괴물 사이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깊어진 갈등만큼 관객들은 흥미를 놓을 수 없다. 등장인물 간의 깊은 유대에서 그 진가가 발생한다. 등장인물들 사이의 유대를 한층 더 강하게 만들어 비극성과 그로 인한 주제 의식을 쉽게 전달한다.
작품의 큰 매력으로 꼽히는 1인 2역 이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빅터, 앙리, 엘렌, 줄리아 등 주역 인물들은 전부 1인 2역을 맡는데 맡은 캐릭터들간의 괴리가 극과 극을 달린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던 앙리의 머리를 가진 괴물에게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는데 거리낌 없는 에바와 쟈크와 같은 투기장이란 공간은 빅터만을 바라보고 걱정하는 줄리아와 엘렌, 룽게와는 대조적이고, 이런 대조는 관객의 마음에 더 강렬한 비극을 꽂는다.
작품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괴물은 이름이 없다. 빅터가 앙리의 머리로 생명을 되살렸지만, 기존의 앙리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체이고 창조주 빅터가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기에 이름이 없다. 그래서 그냥 ‘괴물’, ‘크리쳐’, ‘그것’이다.
하지만 빅터는 괴물을 앙리라 부르고 괴물은 자신이 앙리임을 거부한다. 세상은 괴물에게 앙리의 피와 살로 태어났으나 인간들 전부 괴물을 인간은커녕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인식은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끔찍함만 선사한다.
그래도 괴물은 까뜨린느와 잘 지냈다. 곰에게서 그녀를 구해내고 인간이 없는 북극으로 가길 원했던 까뜨린느와 짧게나마 ‘유대’를 경험하고 즐거웠었다. 빅터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괴물 지능이 상당함을 엿볼 수 있다. 괴물은 고독과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 보단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말은 어떻게 배웠는지 그런 걸 물어봐야 하지 않겠어?
<프랑켄슈타인> -도망자
하지만 사람들은 괴물이 죽은 사람의 머리와 목에 새겨진 접합 흔적 등 여러 이유로 괴물의 진심을 몰라준다. 빅터가 어릴 때 강아지가 죽어 슬퍼하는 줄리아를 위해 강아지를 되살렸고, 다시 살아난 강아지에게 줄리아가 물리는 사고가 있었다. 줄리아가 슬프지 않기를 바라며 한 행동이었으나 어른들은 오히려 경악하고 만다. 줄리아는 말한다, 왜 어른들은 너의 진심을 몰라주는 걸까? 라고.
빅터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화장된 어머니의 시체를 다시 들고 온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마을에서 유령 취급을 받지만, 줄리아는 빅터를 친구로 받아들였고 엘렌도 빅터를 진심으로 아꼈으며 룽게는 전쟁터를 따라가기 위해 군입대까지 하며 빅터를 보살폈다. 이들은 빅터를 매도하는 사회에서 마음을 알아주던 빛이었다. 괴물이 고독을 선사하겠다는 선언은 소중한 사람을 없애겠다는 이상의 의미다.
하지만 빅터도 괴물의 마음을 몰라주는 건 마찬가지였다. 태어나면서 이름도 받지 못하고 실험 일지와 코트만 가졌던 괴물이 원래 자신의 코트를 입고 돌아오고도 빅터는 괴물을 막고 죽일 생각뿐이었다. 빅터는 괴물과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한다.
괴물은 빅터에게 자신이 당한 만큼 돌려주겠다며 복수를 결심한다. 그 방법은 빅터 주변 인물을 살해, 빅터를 고립시켜 지독한 고독에 빠트리는 것이었다.
괴물의 복수는 할 수 있는 가장 괴롭고 끔찍한 방식이었다. 주변인들의 죽음을 고스란히 느끼는 건, 죽음을 극복하려 했던 빅터에게 죄책감과 동시에 무력감을 선사했다. 이 방법은 빅터가 월터를 살해해 시체를 준비한 장의사에 분노하여 돌로 때려죽인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실험에 미친 빅터에게 인간성이 남아 있어 통한 방법이었다.
안타까운 건 괴물이 복수를 할 때마다 모두가 그를 괴물이라 불렀던 것처럼, 정말 괴물이 되어간다는 점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짐승으로만 여기던 투기장에서도 간신히 붙잡고 있던 최소한의 선이 까뜨린느와 창조주가 자신을 버렸다는 배신감, 친구의 머리로 만든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끊어진다.
너도 커서 어른이 되면 인간 행세를 하겠지
<프랑켄슈타인> - 상처
고통을 주기에는 더할 나위 없지만, 괴물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은 빅터와 관련은 있을지언정 괴물의 칼끝이 닿아야 할 사람들은 아니다. 결국, 괴물은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마저 상처를 주는 어른이 되지 말라는 이유로 물에 빠트려 죽여버린다. 복수를 시작하면서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건너고 만다. 다만, 앙리의 기억이 떠오른 상태로 함께 했던 사람을 죽이는 괴물의 심경은 쉬이 짐작할 수 없다.
작품 초반부터 이 작품이 비극적으로 끝날 것을 암시한다. 오버츄어 속 그림들이 단서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메리 조셉 블론델 <이카루스의 추락>,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태아, 그 밖에도 작중에 등장하는 빅터의 연구실과 적안으로 변화하는 눈까지 모든 이미지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전체를 함축하고 있다.
신이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내용의 그림 <아담의 창조>로 빅터가 앙리의 신체를 이용해 생명체를 만들고,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을 모아 괴물을 만들었다는 원작의 설정과 강인한 군인을 만들겠다는 연구 목적을 의미하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실험을 위해 인간 신체 연구를 뜻하는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와 태아 소묘, 그리고 붉게 변하는 벽안은 파멸의 손길인 괴물이 빅터를 덮칠 것을 암시한다.
동선도 인물의 상황과 관련있다. 빅터가 앙리를 설득하는 ‘단 하나의 미래’ 넘버는 빅터가 신처럼 위에서 앙리를 내려다 본다. 앙리가 빅터의 포부에 빛을 보는데 아마 앙리가 바라본 빅터의 시선과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자신만만함을 볼 수 있다.
하지만 2막에서 괴물이 다시 등장할 땐 그 위치가 전도된다. 괴물이 자신을 앙리라 부르는 빅터를 내려다 본다. 미처 죽이지 못한 괴물이 어떻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어 두려운 빅터는 월등한 신체를 가진 괴물에게 이길 수 없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부제는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다. 티탄신 프로메테우스는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위해 신에게 바치는 제물을 바꿔치기하고 신의 전유물이었던 불을 몰래 훔쳐 인간에게 선물했다. 그 결과 바위산에 묶이는 형벌을 받는다. 빅터도 생명체를 만든다. 그리고 앙리, 룽게, 엘렌, 줄리아, 슈테판을 잃고 빅터는 고독에 빠지는 벌을 받는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헤라클레스의 도움을 받아 자유의 몸이 된다.
프로메테우스와 프랑켄슈타인의 차이는 바로 ‘왜’에서 온다. 프로메테우스가 신을 우롱하면서까지 제물을 바꾸고 불을 훔친 건 인간을 아끼는 마음에서였다. 반면 빅터는 어릴 적, 병으로 어머니를 잃은 충격이 원인으로 인류를 위해서는 명분이지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됐다.
결국 빅터는 괴물을 없애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죽인 건 아니다. 괴물이 빅터에게 죽음을 맡긴 것이었다. 앙리일 때 한 번, 괴물로 또 한 번 빅터로 인해 두 번의 죽음을 경험한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빅터가 마무리하게 하고 빅터가 직접적으로 살인하게 만든다. 지성으로 빛났던 빅터는 괴물처럼 복수자가 된다.
이러한 선택은 괴물이 자신이 향한 단죄일지도 모른다. 빅터에게 죽음을 내어줌으로써 인간보다 인간답지 않은 그들, 무책임했던 빅터와는 다르게 순순히 죗값을 받는 괴물의 선택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인간의 양면성이란 주제도 담고 있는 만큼 괴물의 마지막 행위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끝에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존재들은 다 죽고 이제 빅터를 기억하는 이는 없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성이 틀렸음을 스스로가 증명하고 말았다. 또 괴물은 죽었으나 빅터를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만든 존재를 그가 죽임으로써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빅터는 자신이 신이 아닌 나약한 인간임을 처절하게 배운다.
괴물은 끝까지 죽이러 오는 빅터에게서 모든 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괴물이 이런 선택을 내릴 때까지 무슨 심정인지는 알 수 없다. 아동기 때 부모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면 가질 수 없는데도 갈구하는데 처음 숨을 쉴 때 아이와 다름없었던 괴물도 마지막까지 매달렸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할 게 없는 괴물은 자신을 방치한 창조주 빅터의 증오라는 관심 속에서 죽을 수 있었다. 원작에서 먼저 죽어버려 증오마저 받을 수 없게 된 괴물과는 달리 살려두는 게 더 고통스러운 빅터에게 오로지 자신과 공허만 남기는 데 성공한다.
괴물이 빅터에게 부여 받은 건 고통으로 가득한 새로운 삶과 고독과 배신으로 이 모든 걸 괴물의 목에 난 상처가 대표한다.
앙리는 처음 만났을 때 비인륜적인 연구를 할 수 없다며 빅터를 거부했었다. 하지만 이후 그는 빅터의 뜻에 동참한다. 그는 부상병이라면 적이라도 치료하고, 실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철저하게 망가진다.
<프랑켄슈타인>은 모든 캐릭터들이 파멸로 향하는 파멸극이다. 죽어간 룽게와 엘렌, 줄리아에게 슬퍼하지만, 무엇보다 관객들은 괴물에게 연민하고 공감한다. 그건 괴물이 아무와도 교류하지 못하고, 정체성 혼란을 겪는 그 장면들이 우리도 겪는 고통인 탓이다.
괴물이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많지는 않으나 그는 자신이 생명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괴물보다 더 최악의 것들도 인간이라 행세한다.
신이 되고 싶었지만 무책임한 욕심일 뿐 인간은 왜 이 세상이 자기 것으로 생각할까
<프랑켄슈타인> - 상처
<프랑켄슈타인>이 관객의 마음에 깊고, 오래 남는 이유는 가슴 아프게 하는 파멸로 점철되어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일 것이다. 10주년 공연은 이제 안녕이지만, 다음이 기대된다.
* C - STRAW에 게시한 글입니다.
STRAW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리뷰 (c-straw.com)
*예매처
멜론티켓
인터파크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10주년 기념공연 (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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