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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뮤연뮤 Jul 30. 2023

4. 연극 <아마데우스> 리뷰

 천재와 범재, 신과 인간

포스터 - page1

2023/02/12~2023/04/11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제작사 : page 1

츌연 : 김재범, 김종구, 차지연, 문유강, 전성우, 이재균, 최우혁, 김벼리, 유유진, 임춘길, 박소리, 김민철, 김하나, 김예진, 김우선, 손의완, 도유안, 강현성, 이은정     

Instagram @yeonmyu_0113


1. 들어가며

2. 줄거리

3. 숭배의 대상에서 투쟁의 대상으로

4. 실패한 투쟁

5. 마치며     


1. 들어가며

<아마데우스>는 <에쿠우스>를 쓴 피터 셰퍼의 작품으로 이미 영화 <아마데우스>로 익숙한데 지난 2018년 초연이 올려졌고 남성 살리에리 역에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2023년에 다시 막이 올랐다.     


Instagram @yeonmyu_0113


2. 줄거리

<아마데우스>는 희곡 <에쿠우스>를 창작한 피터 셰퍼의 다른 작품으로 안토니오 살리에리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 관한 작품이다. 더 정확하게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기해 파멸에 빠지는 내용으로 모차르트를 살해한 사람이 사실 살리에리 자신이라는 충격적인 고백에서 출발한다.     

살리에리는 음악을 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종이 되겠다고 절대자에게 약속한 사람이다. 우연한 기회로 음악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자, 그는 정말로 신의 종이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신동으로 이름 날렸던 모차르트가 빈으로 오면서부터가 본격적이다.     

궁정 작곡가인 살리에리는 같은 음악가인 모차르트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를 환영하는 곡을 만드는데 모차르트는 처음 드는 그 순간에 더 훌륭한 곡으로 바꿔버린다.    


모차르트  작곡은 쉬운 거라니까요!      - <아마데우스>


그리고 방정맞은 태도로 작곡은 전혀 어려운 게 아니라고 모차르트는 말한다. 음악은 음악 냄새가 너무 나선 안 되며 신의 뜻에 따라 겸손한 태도로 검소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온 살리에리가 받아들이기에는 모차르트는 너무나도 건방지고 저급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는 살리에리에게 걷잡을 수 없는 파멸과 괴로움의 시작이었다.     


결국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작품에 자신의 여제자가 노래 부르는 걸 보게 되고 제자 카트리나와 모차르트 사이에 부정한 거래가 오갔음을 눈치챈다. 모차르트가 약혼자가 있음에도 여제자와 동침은 살리에리는 배신감과 눈부신 재능에 대한 질투를 느낀다.      


모차르트를 절대 인정할 수 없었던 살리에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법으로 모차르트에게 복수를 계획한다. 사랑하던 자신의 여제자와 관계를 가졌으니 모차르트의 약혼녀인 콘스탄체를 유혹할 심산이었다. 마침, 모차르트가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공주의 음악 선생 자리가 절실한 점을 노려 살리에리는 콘스탄체에게 자신과 동침하면 황제에게 잘 말해주겠다며 간통을 꾀한다.    

 

그러나 콘스탄체는 이미 살리에리의 속내를 다 알고 있어 오히려 살리에리에게 부끄러움을 준다. 살리에리는 신을 섬기기로 약속한 몸인데도 추잡한 방식으로 거래와 간통을 저지른 자신에게 크나큰 충격을 받는다.    


1막 12장
살리에리  ...오늘까지 전 엄하게 덕을 쌓아왔습니다. 벗을 구원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바쳤습니다. 당신이 주신 재능을 갈고닦아 열심히 일했습니다. 당신은 제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아시잖습니까! - (중략) 마누라에게 엉덩이를 얻어맞으며 배설물 소리나 지껄이는 모차르트! - 그런데 그런 자를 당신은 신의 대리자로 선택하셨습니다!                          - <아마데우스>


결국 살리에리는 신의 소리를 전하는 수단으로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신에 대한 배신과 분노 때문에 항상 목에 메고 있던 십자가를 스스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그는 결심한다.    


사진 - page1
1막 12장
살리에리  불공평한 신이여! 당신은 적이오! 이제부턴 – 당신을 이렇게 부르리다. ‘영원한 적’이라고! 그리고 맹세하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이승에서 당신을 거역하고 말겠소!           - <아마데우스>


살리에리는 본격적으로 신의 뜻을 거스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방법은 신이 선택한 모차르트를 파멸시키는 것이었다. 복수의 대상이 모차르트가 아니라 절대자로 바뀌었기 때문에 방법도 바뀐다. 가장 먼저 콘스탄체를 거부한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공주의 음악 교사로 재능 없는 음악가를 추천하고 그 결과, 모차르트는 파산한다. 모차르트에겐 난잡한 소문이 있다고 황제에게 귀띔하던 살리에리는 그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가 만든 작품에 관심 가지며 친분을 유지한다.     


모차르트는 제자가 생기지 않는데도 씀씀이는 줄지 않고 발표하는 오페라마다 흥행에 실패한다. 살리에리가 목표대로 모차르트는 점점 더 추락한다. 반대로 살리에리는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살리에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가고 있는데 이상하게 마냥 웃을 수 없었다.     


모차르트의 작품이 대중에게 외면받을 때 살리에리는 홀로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감탄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자신의 작품이 성공할수록 그 고통은 커진다. 왜냐하면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몰라주고 부족한 자신의 작품을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은 우매한 대중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멍청한 대중들에게 칭찬받을수록 오히려 살리에리 자신의 능력은 보잘것없는 것임을 확인받았고 홀로 모차르트의 대단함을 알고 있는 데에서 오는 외로움, 그럼에도 신은 봐주지 않아 더 깊은 괴로움에 빠진다.     


결국 경제적인 문제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준에 이른 모차르트를 끝까지 몰아붙이려 죽음이 두려운 상태인 모차르트에게 작곡을 의뢰하는데 바로 레퀴엠이었다. 결국 작업을 수락한 모차르트는 레퀴엠 작업에 착수하고 그의 정신은 더 악화된다.     


모차르트는 악보를 그리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생각한 악상을 대신 악보로 그린다. 살리에리는 대신 악보를 그리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껴 쉬려는 모차르트를 재촉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감정이 격해지면서 살리에리는 이때까지 모차르트를 괴롭힌 사람이 자신이라는 비밀을 털어놓고 그 결과 화해하지 못한 상태로 헤어진다. 그 이후 홀로 남겨진 모차르트는 사망한다.     


시간이 흘러 발표 당시에는 성공한 살리에리의 작품들은 점점 사장된다. 반대로 모차르트는 죽어서도 관심을 받는다. 살리에리는 결심한다. 신에게 맞서 싸우겠노라, 절대 뜻대로 살지 않겠다고. 그렇기에 죽어서도 사람들의 관심받는 모차르트와 달리 사람들에게 잊히는 벌을 내리는 신에게 대항하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한다.    


바로 모차르트를 살해한 건 자신이라 밝히는 것과 자살 시도였다. 그러나 그는 죽지 못했고 위대한 살리에리가 그럴 일 없다며 모두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 마지막까지도 그는 처절했고, 성공하지 못했다.                                                                                                                                  

3. 숭배의 대상에서 투쟁의 대상으로

<아마데우스>에는 주인공 살리에리가 투쟁하는 대상이 있는데 각각 1막과 2막에서 그 대상이 다르다. 1막에서 투쟁의 대상은 모차르트였다면 2막에서는 모차르트에게 사랑을 주는 절대자로 투쟁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그 이유는 신의 소리를 전하는 사람으로 자신이 아니라 모차르트를 선택했다는 생각에서였다.     


왜냐하면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접하고서는 자신이 가진 재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지독한 열등감에 빠졌기 때문이다. 재능은 하늘이 주는 것이라는 말답게 자신은 선택받지 못해 음악가로서 재능이 없다고 여긴다.     

1막 2장
살리에리  “주님, 제가 작곡가가 되게 해 주소서! 찬란한 명성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소서. 그 대신 선량하게 살겠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전력하겠습니다. 전 저의 인생을 통해 많은 음악으로 당신께 영광을 돌리겠나이다!”... (중략)... “저는 평생 동안 당신의 종이로소이다!”...                                   - <아마데우스>

살리에리는 작곡가가 될 수 있다면 평생 절대자의 종이 되겠다고 맹세했기에 신에 대한 배신감이 더더욱 클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모차르트에게 고통을 안겨주어 복수하려는데 콘스탄체를 유혹해 카트리나와 동침한 것과 똑같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콘스탄체와 키스로 이런 불결한 짓까지 하게 만드는 모차르트를 원망하다가 결국 이게 다 모차르트를 선택한 절대자 때문에 자신이 궁지에 몰리고 타락했다며 탓을 돌리고 전쟁을 선포한다.     


서양 문화권에는 기독교가 아주 생활 속에 깊게 녹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절대자에게 한낱 인간이 영원한 적이라고 선포하는 행위는 상당히 도발적이다. 그것도 살리에리는 신의 종을 자처한 자였다.     


죽어서 신의 품에 안긴다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사후 세계도 포기하고 한 투쟁이었다. 사실 그의 경우 원망을 누구에게로 돌리고 복수하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복수는 성공하고 나면 더 허무해지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복수하다지만, 살리에리는 오히려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지고 결국 신에게 승리하지 못했다.                                              

    

4. 실패한 투쟁

살리에리는 신과 싸우려 신이 아끼는 모차르트를 괴롭힌다. 음악 교사 자리, 오페라 공연 흥행, 나중에는 상황이 알아서 모차르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까지 한다. 반대로 살리에리는 승승장구하고 명성까지 얻는다. 모두가 그를 칭송한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괴롭히면서도 그의 공연들을 전부 챙겨봤다. 이상하게 그는 신에게 반항하면서도 천재적인 재능 있는 모차르트의 작품을 자신만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대중들이 살리에리를 칭찬하고 성공할수록 그는 오히려 더 깊은 절망감만 느낄 뿐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만든 작품은 모차르트에게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대중들은 모차르트가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칭찬할수록 진정한 가치도 몰라보는 바보들에게 환호받아봤자 아무 의미 없으며 동시에 자신만이 진정 대단한 모차르트의 예술을 아는 데서 오는 고립감과 왜 자신은 저런 예술을 할 수 없는 데에서 오는 절망감과 억울함 때문이었다. 겉보기에는 승리했으니 투쟁은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인기를 끌게 되고 물속에 가라앉는 모래처럼 살리에리의 음악들은 점점 사장되어 갔다.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는 예술가, 그야말로 예술가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그래서 모차르트를 살해한 사람은 살리에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2막 20장
바람잡이 1, 2  이 세상에서 누가 그걸 믿겠어!                                                            - <아마데우스>

그러나 명망 높은 살리에리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살리에리는 죽기 전까지 절대자에게 저항하겠다는 말대로 마지막 저항을 한다.      

2막 20장

살리에리는 자기 만족감에 즐겁게 웃는다. 케이크를 집어든다 –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먹지 않고 면도물이 든 대야에 처넣는다- 면도칼을 들고 자신의 목을 벤다.

...바람잡이 2 (읽는다) 살리에리는 자기 목을 베었다 – 그러나 아직 살아있다.             - <아마데우스>

기독교에서 자살을 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런데 살리에리는 자살 시도를 한 것이다. 끝까지 신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 투쟁은 실패할 게 정해져 있었다. <아마데우스>에서 주된 감정 중 하나가 질투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지만, 그 질투로 자신을 성장하는 방향이어야 도움이 된다. 살리에리도 영향받아 작품 활동을 하지만 모차르트 파괴에 더 열심히라 불행한 결과는 당연했다.     


5. 마치며    

2막 20장
살리에리  (전략).... 이젠 나 스스로가 망령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차례가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나는 그늘에 서 있을 것이고 여러분의 고통받은 귓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실패하고 – 잡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신의 조롱 소리를 들을 때 – 내가 나의 이름을 속사여줄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의 신성한 수호자 – 살리에리. 여러분은 실의의 밑바닥에서 나에게 기원을 하세요. 비밀의 살리에리. 그러면 난 여러분을 용서할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아마데우스>

살리에리는 실의에 빠졌을 때 자신을 찾으라고 한다.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의 입장에서 흘러가는 작품이다. 흔히 재능은 신이 내린다는 말이 있다. 모차르트는 선택받았고 살리에리는 선택받지 못했다. 모차르트는 신의 대리인 격이다. 작가의 성격을 고려하자면 살리에리는 선택받지 못한 보통의 편, 인간의 편이다. 작가의 관심은 꾸준히 인간에게 있다. 선택받은 모차르트 보통의 살리에리, 아주 다른 두 사람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관객을 이해시킨다.     


작품은 살리에리의 생각과 마음 위주로 진행된다. 전적으로 그의 입장이다. 그러니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고백에 대중들이 믿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래서 다른 인물들의 심정을 자세하게 알 수는 없으나 살리에리의 마음은 확실하게 드러난다.     


<아마데우스>에서 질투와 원망이 중심이다. 이는 인간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추악한 면이면서도 당연한 감정이다. 그리고 모차르트를 파멸로 몰아넣으면서도 레퀴엠으로 제정신이 아닌 모차르트에게 사죄하며 용서해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인간은 이중성을 가진 존재라 죄를 저지르면서도 용서받고 싶어 한다. 작가는 살리에리로 인간의 밑바닥을 세세하고 드러내고 있다.     


살리에리는 순수함과는 거리가 있다. 관객들이 모차르트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과 보통 사람들을 용서하겠다는 마지막 장면에서 특히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대신, 솔직하다.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면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작가는 그런 면을 비판하거나 교정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연극 <아마데우스>가 향하고자 바는 무엇일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각각이 대표하는 천재성, 천재성과 평범에서 오는 갈등 등이 있겠지만, 그 이외의 것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패배가 정해진 투쟁을 한 살리에리로 알 수 있다.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그리고 실의에 빠졌을 때 자신을 찾으라고 말한다. 투쟁하고 거역으로 지쳤을 때 같은 인간의 편인 자신이 위로해 주겠다며 말이다. 살리에리는 인간의 편이었다.     


투쟁에서 언제나 승리하진 않는다. 그러나 투쟁은 인간을 살아가게 한다. 신에게 거역한 세월과 행위는 살리에리가 살아있었다는 증거였다. 작가는 신에게 저항하는 모습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라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Instagram @yeonmyu_0113


*범우사에서 출판한 희곡 <아마데우스>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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