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적 無知, 계승된 無知. 의견이 마음껏 충돌하는 세상을 꿈꾸며
군복무 시절, 나는 그곳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많은 변화를 남긴 채 떠났다.
강의실로 향하는 길에 반가운 얼굴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소소한 근황을 흘렸다.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걸음을 내디딘 우리는 각자의 졸업 후 계획을 나눴다. 졸업과 동시에 취직이 목표라는 나에게 툭 던진 친구의 질문.
"괜찮겠어? 잘 맞을 거 같아?"
나는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기울이며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안정적인 직장에 적지 않은 보수. 경제적 안전지대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나에게 괜찮지 않을 것은 없었다. 질문의 요점은 뒤에 있었다.
"뭐... 틀에 박힌 그런 거. 너 성격상 답답해할 거 같아서."
우선 취직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나에게 잘 맞는 삶일까에 대한 고민은 잠시 접어뒀었다. 나는 확립된 체계에서 불합리함이 느껴지면 변화를 던지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 내가 설정한 목표를 위해서는 그 목소리를 죽여야 한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업의 톱니바퀴를 양성하는 사회의 체계에 비판적이었고, 자신의 색을 지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 행복을 만드는지 궁금했다. 참 간사하게도, 취업 전형의 마지막 단계로 안내받음과 동시에 그 생각들은 정리됐다. '일단 뭐라도 해야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의식은 그대로 흘렀다. 죽이겠다고 다짐한 나의 목소리의 발악을 감상한다. 나는 틀 안에 뛰어들어 변화를 외쳤던 기억을 더듬었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 꽤나 많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마 북쪽에서 태어났다면 매질을 당해 볼기짝이 남아나질 않았을 거다. 물론 고종으로 태어났더라면 척화비를 세우지도 않았을 테고. 이처럼 나의 관점에서, 혹은 나를 지지했던 이들의 관점에서 내가 내세운 변화는 긍정적 결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관점에서도 설득력이 있는 변화였을까. 불특정 한 누군가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해 생겨난 무지함은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았을까. 다수를 설득해 편으로 만들고,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변화에 시동을 걸고 그 끝맺음을 확인하지 못한 채 떠나온 기억이 있다. 그 이야기는 나의 군복무 시절의 이야기다. 나는 그 틀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많은 변화를 남긴 채 떠났다.
군대는 명백한 계급 사회다. 나이와 사회적 지위는 무관한 곳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보다 어린 후임들에게 사적으로는 형이라 부르게 했고, 나이가 많은 후임들에게는 호칭에서 님을 제외하고 존대를 했다. 나는 그 사회의 룰을 부정한 것이다. 해야 할 때에는 열심히 할 것을 요구했고, 해야 할 때에 열심히 하지 않는 인원은 멸시했다. 병영 생활의 부조리를 없애준 것이 열심히 할 동기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부조리를 경험했던 동기와 선임 중 질서의 중요를 내세우며 나의 방식을 비판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들의 인간성을 비난하며 그 목소리를 잠재웠다. 무질서에 대한 우려, 되물림의 정당성은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옳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후임들을 위한 편의는 사실 스스로의 도덕적 우월감을 위한 것은 아닌가.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나의 방식 때문에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깨부순 그 체계가 내가 떠난 이후에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지,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닐지. 전역 후에도 지금과 같은 생각이 꿈틀댔기에 복무했던 부대에 다시 방문했던 것은 아닐까.
의식은 여기까지 흐른다. 우리는 만물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다. 따라서 궁극적인 진리와 이상은 애당초 존재할 수 없다. 오감을 통해 현상을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그 현상은 오감의 필터링으로 인해 해석이 생기고, 그것은 의견을 만든다. 고로 우리는 자신이 목격한 현상에 따라 의견을 내세우며 살아가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반면 그 의견은 끊임없이 충돌하며 진화를 만든다. 다양한 의견을 솎아내고 융합하여 풍미가 깊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진화하고 문명을 이룩한 방식이다. 하지만 빈손으로 이 사회에 들어선 청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죽이고 변론을 참아내야 한다. 생각을 버리고, 짙어지는 해석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사회에 내디딘 나의 첫걸음이 온전히 경제적 안전지대에 다다를 때까지 무탈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