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허무함과 짊어질 책임을 위해
저는 단단한 사람입니다. 스트레스를 쉽게 극복하는 편이고, 부정적 생각을 금세 덜어내는 편입니다. 남들의 입을 바짝 마르게 하는 불안도 제겐 귀여운 발단에 불과해요. 스쳐가는 불쾌함도 한두 시간 지나 돌이켜보면 그다지 불쾌하지 않더군요. 그런데 어제 느꼈던 감정은 하루가 지난 지금에도 가슴에 응어리져 남아있네요.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허무함 같아요.
가장 가깝다고 여겨 늘 행복을 빌었던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에게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찾아온 감정은 거대한 허무함이었어요. "너는 그런 사람이다." 나를 단정 지어 던진 말이 뇌리에 쐐기처럼 박혔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그 사람과 주고받은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생각이 정리됐어요. '이 사람은 나를 이렇게 여겨왔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그 정도에 한계를 두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생각해요. 이때 본인이 보고 싶은 대로 나를 단정 지어 버리는 그 말은 거대한 무의미, 무가치를 끌고 왔습니다. 그의 시선은 나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과, 그 노력을 할 가치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 시선을 바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이 공허하더군요.
모순적이게도 기분이 나쁘진 않아요. 관점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존재여도, 언제든 나에게 부정적 시선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의한 섭리 덕에 슬프지 않아요. 그저 허무하네요.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더는 남아 있지 않기에 크게 허무합니다.
이 또한 살아가며 모아야 하는 지혜의 파편이라면, 기꺼이 품겠습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고, 살아가는 단계를 밟는 것이라고. 그렇기 믿으니 되려 책임감이 생깁니다. 그런 생각들도 품어야만 진정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저는 단단하고 아량이 넓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편협함도, 그 시선까지도 언제나 곁에서 축복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