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여행기(3)

둘 째날, 차분했던 사카이시

by ideal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햇살에 눈을 비볐다. 혼자 마신 술에 취해 휴대폰을 충전하는 것을 까맣게 잊었다. 방전됐다는 알림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충전기를 꽂아두고 화장실로 향했다. 칫솔을 입에 물고 푸르스름한 턱을 어루어 만졌다.

오니기리 고리짱 난바점. 구글맵에서 오니기리 맛집으로 소개된 곳이다.

나는 일본 편의점에서 파는 오니기리를 참 좋아한다. 그 어떤 재료도 들어가지 않은 소금맛 오니기리를 가장 좋아한다. 그렇다면 오니기리 맛집에서 파는 것은 얼마나 맛있까. 호기심에 도착한 '오니기리 고리짱'의 웨이팅 줄을 보곤 바로 도망쳤다. 가끔은 내가 미식에 진심이 아닌 것에 감사한다.

결국 패밀리마트에 들러 편의점 음식을 샀다. 호텔방으로 돌아와 그 행복을 만끽했다.

회사 사람이 추천한 아메리카무라로 향했다. 도보 20분 거리에 있어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두어 블록을 건넜을 때 내 눈에 들어온 도시락 판매대. 580엔에 이 정도 도시락이면 패밀리마트의 말라비틀어진 타코야끼는 정말 반성해야 한다.

아메리카무라에 도착했다. 일본의 빈티지샵이 모두 모여있는 듯한 곳이다. 한국으로 치면 홍대 정도 되겠다. 벤치에 앉아 스타벅스에서 산 블랙커피를 홀짝였다. 한국의 스타벅스와 비교했을 때 더 맛있거나 맛없을 것 없이, 맛이 "달랐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한국어에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마침 달콤한 휴일의 늦잠을 마무리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약속 장소는 사카이시로 정해졌다.

난바역으로 가는 길.

이틀간 느낀 것인데, 일본의 도로에는 자동차 경적이 울리지 않았다. 상대의 공간에 대한 배려인지, 예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출발한 관습인지.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바역

오사카의 중심인 난바에는 작은 것도, 큰 것도 많았다. 그것들은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었다. 그 어느 것도 이질적이지 않았다. 그 덕에 나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천천히 이곳에 스며들고 있음을 느꼈다.

사카이역까지 약 40분 정도 걸렸다. 물론 헤맨 시간도 포함이다. 약속한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기에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커다란 역에서 나오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사카이역 동쪽 출구로 나오면 보이는 길.
동쪽 출구 오른쪽으로 걸어 나오면 강과 다리가 보인다.

이 강은 사카이 항구를 따라 바다까지 흐른다. 비록 운행하지 않았지만, 원래 작은 크루즈도 운행한다고 한다.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고, 스쳐가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의 주민으로 보였다. 신사이바시나 도톤보리에 흔히 보이던 영어 간판도 없었다.

양아치처럼 생겼다는 네코.

아카네를 만나 조금 더 멀리 걸었다. 날이 무척이나 좋았고, 동네는 조용하고 예뻤다. 마치 지브리 영화 시놉시스의 구성과도 같은 사건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털을 정리하던 고양이는 행동을 멈추고 우리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경계하는 듯 노려보며 다리 밑으로 걸어갔다.

초등학교의 체육 수업을 훔쳐 들었다. 아이들의 웃음에 취하려던 찰나 스피커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에겐 너무나도 생소한 종소리지만, 아카네는 추억에 잠겼다.

열심히 일본어를 배운다고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 같은 폰트다. 동네에 하나쯤은 꼭 있는, 그런 술집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처럼 꾸민 카페에 들어섰다. 원두를 그 자리에서 갈고, 핸드 드립으로 내린 커피다. 향은 단순했지만 그 맛은 깊었다. 오고 가는 N들의 대화. 밸런스 게임으로 한 시간 좀 넘는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카페 벽에 붙어 있던 동네 소개서.

예쁜 건물이 보여 굳이 길을 건넜다. 다가가보니 아기자기한 소품과 핸드메이드 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나는 노트를 두 권 샀다. 끄적이는 것을 좋아한다는 친구에게 한 권을 선물했다.

조금 더 걸으니 신사가 보였다. 이름은 아쿠치 신사. 동네 한가운데 신사가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차분한 이곳에 경건함을 주는 듯했다. 전통 의상을 입으신 분들이 신사를 지키고 있었고, 그들은 우리의 방문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사카이였다.

점괘를 볼 수 있었다. 아카네에게 '해독'을 부탁했고, 그중에 "이사해도 좋다"는 문장이 있었다. 몇 달 후 집 계약이 끝나는 나에겐 축포와도 같았다. 종이를 간직해야 그 효력이 지속된다는 말에 나는 고이 접어 가방에 넣었다.

차도 적고, 사람도 적은 이곳의 어느 골목이다.

마땅한 이자카야를 찾던 중 마주한 하늘.

어제는 야끼토리를 즐겼으니 오늘은 야끼니꾸를 먹기로 했다. 이 식당은 호르몬 전문점이었다. 나는 지난번에 교토에서 먹은 우설이 생각나 주문했다. 조금 짜긴 했지만, 생맥주와 함께하니 금상첨화였다. 절반은 한국인 아니랄까봐, 친구는 모둠 김치를 주문했다.

일본의 국밥이다. 먹으면서 해장이 되는 기분이었다. 참기름과 계란, 콩나물과 목이버섯은 거침없이 내 미각을 일깨웠다.

아쉽게도 아카네는 속이 좋지 않았다. 다음 날의 출근을 상기시켰던 나의 탓일까. 어제의 복잡한 생각이 다시 나를 휘감았다. 우리는 공원에 앉아 타코야끼를 먹으며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를 나눴다.

"일상에 재밌는 일이 없어." 아카네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했다. 새벽에 출근하고, 휴무일에는 쉬지 않고 다른 일을 했다. 이곳의 비싼 물가와 교통비, 그리고 세금은 그녀를 옥죄이고 있었다. 마음이 쓰라렸다. 겉모습은 분명 내가 기억하던 6년 전의 아카네지만, 그 속은 성장통과 현실에 치여 상처받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꿈꾸는 삶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다. 한국에서 사는 것,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그 문화를 흡수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단지 비자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가 그 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의 일을 즐기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 이 시간을 감내하고 있는 걸까.

나는 꿈도 없이, 일상에서 도망쳐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는 전쟁터인 이곳에서 감히.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움을 놓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꼭 이곳만이 내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곳일까. 꿈을 가진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 꿈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받고 싶다. 너에게 감사하게도, 이제 조금은, 타인의 꿈을 응원하는데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네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

"살다 보면 좋은 일 생기겠지!"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