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선선한 새벽, 문득 시계를 보니 01:45를 가리키고 있었다. 약간의 피곤함을 느끼고 있을 찰나 112신고가 연달아 들어왔다. 하나는 택시기사의 신고였고 다른 하나는 손님의 신고였다. 서로가 서로를 신고한 셈이다. 택시관련 신고는 주취 상태의 손님이 못 일어 나는 일이 대부분이고 다음으로는 요금 시비다. 이 경우에 손님은 보통 주취상태다.
손님은 목적지에 도착 후 요금이 10,500원 이라는 택시기사의 말을 들은 후 영수증을 요구했더니 영수증에는 9,500원이 적혀있어서 기사가 1,000원 더 받으려 했다는 주장이고 기사는 9,500원 영수증은 이전 손님의 것이고 영수증 2개가 연달아 나왔기 때문에 오해가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였다.
어떤 영수증이 진짜 영수증인지 실랑이가 있었다. 영수증엔 탑승 및 도착시간이 적혀있으니 그것만 확인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빠르게 확인 해보니 뒤에 나온 영수증이 손님의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손님은 만취해있었고 그에게 이를 설명하는 것은 소귀에 경읽기였다.
손님은 무조건 블랙박스를 확인해야 한다며 큰소리를 떵떵 쳤다. 블랙박스를 빠르게 확인 한 후 택시요금도 지불시키고 손님도 귀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판단해서 재빨리 블랙박스를 확인시켜주었고 결과는 뻔했다.
뭔가 망연자실한 표정의 만취손님은 그제서야 요금을 지불하기 위하여 주섬주섬 가방속에서 지갑을 찾고 있었다. 이 일로 30분 넘게 실랑이 했는데 괜시리 택시기사에게 측은지심이 들었던 것이었을까. 이사건 때문에 택시 운행을 30분 넘게 못하셨다는 동료경찰관의 한마디에 만취손님은 인심이라도 쓰듯 지갑에서 5만원권 한장을 턱하니 꺼내더니 기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런 자신에게 분했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해대며 골목저편으로 걸어가 시야에서 곧 사라졌다.
사실 알고 보면 별일 아니었으나 새벽에 여러사람 고생하는 것을 느낄 때면 뿌듯함 보다는 허무함이 더 크다. 술이 들어가면 자존심이 더욱 세지고 평소에는 넘어갈 일도 절대 굽혀지지 않는법. 가끔은 주취자의 자존심을 세워줘야 상황이 해결되는 일도 있다.
영화에서는 좌천 되면 지구대로 발령나지만 현실에서 지구대 업무는 그 범위 조차 매우 광범위 하고 또 복잡해 보이지만 오히려 쉽게 해결되는 일도 많다. 영수증 탑승시간과 블랙박스만 확인해줘도 간단히 해결되는 이번일 처럼 말이다.
신고자가 바라는 경찰관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뭐든 해결해 주는 슈퍼맨이어야 한다. 경찰관은 새벽을 지키는 슈퍼맨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슈퍼맨 수트를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