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달새 돌아오다

by 주니스

종달새 돌아오다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곤 한다. 하늘을 나는 꿈이다.


날아다니는 꿈을 자주 꾸기 시작한 것은 사춘기 무렵으로 기억된다. 슈퍼맨이 되어 하늘을 슝슝 날아다니기도 하고, 스파이더맨이 되어 건물 사이를 휙휙 뛰어 건너기도 하고, 스프링 달린 신을 신은 듯 수십 미터를 퉁퉁 뛰어오르기도 한다.


날아다니는 꿈보다 더 이상한 것은, 꿈속에서는 내가 날아다니는 일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실이다. 억압된 욕망인지, 자유에 대한 갈망인지, 무의식의 표현인지 알 수 없지만 신기하고도 궁금하다. 때로는 장자의 꿈처럼 나비나 새의 형상을 하고 날아다니기도 한다. 주로 밤보다는 이른 새벽이나 밝은 낮, 푸르고 눈부신 창공을 날아오른다.


깨고 나면 어떤 꿈은 아쉬움이 남고 어떤 꿈은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부모님을 만나거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함께 뛰어 노는 꿈은 ‘아’ 하는 짧은 탄식을 남기고, 나만 시험 날짜를 잊고 있다가 갑자기 시험 치는 꿈은 ‘휴’ 하는 긴 탄성을 남긴다. 하지만 같은 꿈을 꾸어도 시기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언제부터인지 같은 날아다니는 꿈인데도 결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날아다니고 ‘싶어서’였다면, 지금은 날아다닐 수 ‘있어서’이다. 억지로 버티던 밤이 사라지고, 비로소 나의 리듬을 되찾았기 때문일까.


젊은 시절, 스트레스 없이 산 사람이 어디 있었겠냐마는, 곰곰이 떠올려 보면 힘겹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나의 젊음을 가장 힘들게 한 이유 중 하나는 종달새형 인간인 내가 평생을 올빼미처럼 살아온 데 있었다. 유난히 저녁잠이 많은 나에게 학창 시절의 야간 수업과 직장에서의 야근은 늘 딜레마였고,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농담처럼 건네던 친구의 말이 꼭 우습지만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돌머리는 억지로 쑤셔 넣으면 되지만, 고무머리는 넣어도 자꾸 튕겨 나오잖아. 답도 없대이.”

해가 지면 고무머리로 바뀌는 듯한 나의 머리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아침과의 차이는 너무도 컸다.


밤에 읽는 책의 까만 활자들은 물 위의 기름방울처럼 흩어져 갈 길을 잃고, 일을 할 때도 능률이 오르지 않아 의욕은 꺼져가는 촛불처럼 희미해졌다. 늦게 자니 일찍 일어나도 늘 잠이 모자랐고, 하루는 늘 흐릿하게 흘러갔다.


이제는 밤늦게 공부나 일을 안 해도 된다. 일찍 잠드니 새벽에 눈이 떠지고, 그 시간은 놀랄 만큼 맑고 또렷하다.


여전히 날아다니는 꿈을 꾸지만, 예전과는 느낌이 다르다. 과거에는 올빼미의 꿈이었다면, 지금은 종달새의 꿈이다. 꿈에서 깰 때 ‘또 이 꿈이야’ 하던 한숨 섞인 독백이, ‘그래, 이 꿈이지’ 하는 환희로 바뀌었다.


요즘도 저녁만 먹으면 졸음이 밀려온다. 대신 새벽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 되었다. 저녁 일찍 잠들고 새벽 일찍 눈을 뜨니, 땀 흘리고 샤워한 듯 상쾌하고 개운하다. 한때 그렇게 하기 싫던 책 읽기와 글쓰기도 이제는 숙제가 아니라 즐거운 취미생활이다. 새벽에 펼친 책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머릿속으로 스며든다. 일찍 시작한 하루는 의욕으로 가득 차고, 힘이 솟는다. 억지로 밀어 넣던 공부도 아니고, 선잠을 견디며 버티던 밤의 노동도 더는 아니다.


누군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올빼미로 살던 지난날이 아니라 종달새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하겠다.


올빼미는 그 숱한 밤들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그믐달 아래 구슬피 울던 올빼미의 귀에 이제 종달새의 맑은 노랫소리가 들린다. 밤을 지새우던 쾡한 눈이 새벽 안개 속에서 부드럽게 열리고, 닫혀 있던 부리는 노래를 만든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던 다리는 날갯짓이 되어 허공으로 풀려난다.


수직으로 날아올라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하고, 수평으로 미끄러지듯 날며 구름과 호흡을 나눈다. 봄바람이 불면 가벼운 솜털 되어 몸을 맡긴다. 밤을 지새던 올빼미의 짐은 벗어던지고, 새장을 나와 끝없이 비상하는 종달새는 오늘도 꿈을 꾼다. 흩어진 새벽 공기를 모으며 목청껏 노래하는 지금, 이 아침이 참 좋다.


오랜 시간이었다. 작지만 맑은 종달새의 노랫소리를 다시 듣기까지. 이제야 종달새의 나라로 돌아왔다. 올빼미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이토록 기쁠 줄은 몰랐다. 종달새는 끊어진 아침을 다시 물어다 주었다. 이 선물을 잃어버리지 말고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오늘도 나는, 다시 돌아온 아침의 날개를 달고 더 높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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