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by 주니스

말 한 마디


“가람과 뫼는 옛 고어(古語)여서 현대인이 사용해서는 안될 현학적 표현이다.”

칠판에 하얀 백묵으로 또박또박 커다랗게 쓰여진 두 낱말. 가람과 뫼.


선생님은 4교시 수업이 끝나기 직전 느닷없이 이 말씀만 남기고 교실을 종종걸음으로 나가셨다. 늦가을 홍시 닮은 여드름이 하나둘씩 열꽃처럼 피어나던 시절. 코 밑에 콧수염이 거뭇거뭇 자라나기 시작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열뜬 마음은 이미 칠판을 떠났다. 종소리와 함께 후다닥 도시락을 먹어 치우고 유혹하며 손짓하는 하오의 운동장으로 모두 뛰쳐나갔다, 오직 한 소년만이 동그마니 교실에 홀로 멈춰 앉아 있었다. 멍한 눈길이 짙푸른 칠판 속 창백한 두 글자 사이에 갇혀 갈길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아무도 그 뜻을 몰랐지만 소년은 알고 있었다.


말은 누군가에게는 가없는 수평선을 유영하는 자유로운 물새로 화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은빛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때로는 물이 되어 영롱한 이슬로 깨었다가 유구한 강물로 약동하다가 싱그러운 분수로 피어난다. 때로운 불꽃이 되어 숲길을 까맣게 불태우고 사위어져 쓸쓸한 잿빛 흉터와 함께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다.

담임이었던 국어선생님은 꽤 멋을 부릴줄 아는 분이셨다. 까까머리 우리에게는 없던 찰랑거리는 장발머리가 늘 한쪽 눈을 반쯤 가리고 있었고 수시로 왼손으로 머리를 걷어올리는 모습은 연예인처럼 멋있었다. 반듯하게 다려입은 밝은색 남방과 조화를 이루는 짙은 양복바지, 광이 반짝이는 구두는 부임하지 얼마되지 않은 선생님의 단정함을 엿보게 하였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던 일자 바지 주머니, 근엄하지 않고 조금 반항기 섞인 둣한 멋진 말투도 왠지 사춘기를 벗어나기 아쉬워하는 우리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여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멋쟁이 총각 선생님이 영웅처럼 보이고 친해지고 싶었다. 학기 초에는 선생님도 임원을 맡은 나에게 살갑게 대해 주시곤 했다.


늘 다정하던 선생님의 관심이 멀어졌다고 느낀 것은 내가 문예반에 들어서 도에서 주최한 글짓기 대회에서 몇번 입상하고 나서인 듯 했다. 다른 국어 선생님이 문예반 담당을 한것이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내가 미운 짓을 해서일까. 도통 모를 일이었다.


어쨋던 조금씩 무관심해짐을 넘어서 화살처럼 날아온 ‘가람과 뫼’ 칠판사건은 선생님의 의도대로 정확히 내 심장을 꿰뚫었다. 글짓기 대회에 입상한 나의 싯구절에 ‘가람과 뫼 돌고 돌아 한반도에 메아리치는 침묵의 함성..’이라는 잘난척 하는 표현이 마음에 안 드셨나 보다. 그래도 나를 불러 조용히 일러주었으면 좋았을 터이다. 어려서인지 생각보다 상처가 꽤 깊고 오래 갔다.


그 당시 대회에서 늘 상을 받을수 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지도 덕분이었다. 모두에게 무섭고 과묵한 호랑이 선생님이었지만 나에게는 무척 다정다감한 분이셨다. 교내 글짓기 대회에 출품한 글을 보고 ‘넌 시적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면서 방과후에 따로 한달간 개인 글짓기 수업을 해 주셨다.

진짜 시적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의 부러움과 선생님의 격려 속에 나의 마음은 이미 유명한 기성 작가가 된 것처럼 오색 풍선이 되어 하늘 높이 끝없이 날아올랐다. 졸업후에 내가 입학한 중학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이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남겼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


잘난척 한 기억은 없는데 멋쟁이 총각선생님은 내가 많이 얄미우셨나 보다. 철없는 어린 소년의 숨겨진 자만심에 대한 벌이었을까. 호랑이 선생님의 작은 관심은 따뜻한 춘삼월 만개하는 벚꽃의 두근거림을 선물하였지만 멋쟁이 선생님의 싸늘한 무관심과 뾰족한 말 한마디는 엄동설한 앙상한 나목처럼 소년의 마음을 여위어가게 했다.


칠판사건 이후에 소년의 마음 속에 가람과 뫼는 금지어가 되었고 글쓰기에 대한 여린 불꽃은 제대로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여지없이 사그러들었다. 그 후에도 글을 쓰고 싶은 욕구는 끊이지 않아서 일기를 오랜 기간 썼지만 매년 초가 되면 일기장을 태우는 습관은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나 보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문예반의 문을 두드리고 나서 늘 문 앞에서 좌절한 것은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발가벗은 부끄러움을 피하려는 어설픈 몸짓이었나 보다.


강산이 4번이나 바뀐 즈음에 다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호랑이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아서일까. 교실을 나간 멋쟁이 선생님이 운동장을 지나 교문 밖 사위에서 멀어져 간다. 오도마니 혼자 앉은 텅빈 교실 창문에 소리없이 앉은 찬바람이 낯설다. 문을 활짝 열고 호랑이 선생님이 천천히 걸어오며 환하게 미소지으신다.


새벽에 깨어 자판을 두드리노라면 옆에 살포시 앉아서 백발이 되어가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주시는 호랑이 선생님의 손길이 꿈결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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