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익조(比翼鳥)가 된 연리지(連理枝)
새벽 5시.
밤새 내린 끈적한 어둠이 목 위까지 차오른다. 여명이 은빛 파편 되어 사위에 스며든다. 낡은 등산화 끈을 새로 질끈 고쳐 매고 길을 나선다.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이 힘을 잃어갈 즈음 갓바위 오르는 계단 위에서 승무를 추는 연등들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1년 365일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 올라가라는 1,365개의 계단. 다 오르고 나니 숨이 차 올라 물 한 모금으로 땀을 식힌다.
한가지 소원은 이루어준다는 석조여래좌상의 옅은 미소가 어지러운 중생의 마음을 쓰다듬어 내린다. ‘항마촉지인’ 땅을 가르켜 악마를 물리치는 오른손의 투박한 돌손가락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준다. 선정에 들어 하늘을 향하는 무릎 위 왼손바닥을 따라 잠시 운무 사이로 눈을 돌린다. 부끄럽게 고개 드는 발그스름한 태양 끝자락에 시선이 머문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하’ 내뱉아 본다. 폐부에 은은하게 퍼지는 여래의 자비로운 향기에 취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두손 모아 눈을 감고 합장을 올린다.
천천히 눈을 뜨니 4m 높이 지존의 큰바위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하늘을 가린다. 초생달 모양 인자한 두 눈썹 아래 두툼하게 감겨진 여래의 양 눈두덩이에서 흘러내린 오똑한 콧날이 희뿌연 무의식 속에서 나를 건져 올린다. 하나둘씩 모여들어 소원을 염원하는 낯선 사람들 속에 묻혀 함께 108배를 올린다. 머리 위에 짊어진 지름 1.8m, 두께 15cm 무거운 갓의 번뇌가 소리없이 구름 속으로 흩어진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올라올 때보다 한결 가볍다.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갓바위와 도림사 사이 끄트머리 산 중턱 부모님과 형을 모신 선산에 습관처럼 다시 오른다. 도림사 가는 나들목 삼거리 슈퍼에서 막걸리 한병과 자유시대 한 개를 주섬주섬 챙긴다.
선산 끝자락에 올라서 바라본 동녘하늘에 방금 다녀온 갓바위의 형상이 새벽안개 틈을 비집고 희미한 윤곽을 드러낸다. 합장 한번 더 올리고 고개 드니 익숙한 노송에 눈길이 머문다. 험준하게 깍아내린 산비탈길 억척같이 뿌리 내린 소나무들 사이 외로운 참나무 하나. 외롭게 손 내민 모습이 애처롭다. 그 손 덥석 잡은 소나무 한 그루. 녀석의 용기가 가상하다.
연리지. 비바람에 긁힌 서로의 상처가 아물면서 하나가 된 두 나무. 홀로 남아 외롭고 딱딱한 흉터가 되지 않고 둘이 만나 둥글게 상처를 감싼 모습이 정겹다. 살며시 내려 잡은 손 위로 올려 어깨동무하며 이겨낸 세월의 풍파가 새겨진 둘의 모습이 훈기 없이 살수 없는 인간사와 닮았다. 같은 나무끼리 한몸이 되지 않고 어인 연유로 서로 다른 소나무와 참나무가 한몸이 되었을꼬. 선산 위에 용케 자리 잡은 녀석들의 소담스러운 사연이 궁금하다.
참나무의 여리고 상처입은 줄기를 껴안은 소나무의 손길이 투박하지만 따뜻하다. 굽어내린 참나무가 부끄럼 많은 새색시라면 올곧게 쏫아오른 소나무는 씩씩하고 거침없는 새신랑이었으리라. 살아 생전 손 잡는 모습 제대로 본적 없는 부모님이 이제라도 이 놈들처럼 손 꼭 잡고 계셨으면 하는 바램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애정이 깊은 부부나 연인이 서로를 못 잊어 가지 뻗어 하나의 나무가 된다는 연리지. 한쪽 눈과 날개로 혼자서는 날지 못하다가 똑같은 새를 만나야 날수 있다는 비익조의 전설처럼 신비로움이 깃들어 있다.
중국의 백거이는 장한가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리라”는 시로 죽어서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랑을 표현했다니 견우직녀처럼 애틋하다.
‘하이고마. 힘들낀데 말라꼬 또 왔노. 다들 무탈하제’
추레한 아들 모습 안스러워 맨발로 뛰어나와 두손 따뜻하게 잡아주시는 어머니 뒤에서 뒷짐 진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으신다.
‘에헤이. 가마이 쫌 있어보라카이. 어디 보자. 우리 아들. 막걸리 한잔 쭉 따라보거라.’
연리지 바로 아래 10여년전 나란히 터를 잡은 부모님의 봉묘가 오랜만에 발걸음한 아들을 곰살맞게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살아생전 즐기시던 막걸리 한잔 가득 따라드리고 재배 올리니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후두둑 서편 하늘로 날아오른다. 청량한 새울음 소리 따라 눈길 돌리니 어느새 다가온 형이 어깨를 툭툭 친다.
‘동생. 잘 지내제. 우애 답은 찾았나.’
형의 목소리가 꿈속처럼 아련하게 귓전을 맴돈다. 늘 궁금했다. 형이 그렇게 말없이 우리 곁을 떠나간 이유가.
요란하게 귀를 찢는 119 사이렌 소리. 차가운 아스팔트 위 생사를 오가는 심폐소생술의 헐떡거림. 잡은 손 놓지 못한 형수와 조카의 회환과 그리움에 삼켜진 1년의 시간들. 목이 잠긴다.
끊어진 기억들은 길 잃은 화두가 되어 웅크린 가슴 속에 쪼그려 앉아 오롯이 숨어 있다.
어째서 형은 그렇게 젊은 나이에 말도 없이 떠났을까?
인간의 생노병사는 생주이멸, 성주괴공하는 자연과 우주의 자연스러운 이치이거늘 나는 어찌 선문답하는 어린 동자승처럼 답 모를 우문을 차마 삼키지 못하고 되씹고 있을까?
뒤돌아 내려가는 형의 뒷모습을 따라 희미하던 갓바위가 햇살되어 떠오른다. 나무 사이를 벗어난 바람소리에 깜짝 놀란 새가 후두둑 구름 속으로 숨어든다. 나무는 뿌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흙을 툴툴 털고 새와 함께 날아오른다. 잿빛 하늘 위 크게 한바퀴 원을 그린 후 여래의 갓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욕계와 색계, 무색계를 떠난 새는 이제 하나의 눈과 하나의 날개만으로 길을 떠난다. 도솔천을 지나 윤회를 끊고 번뇌의 불꽃 사그러진 니르바나의 품속으로 스며든다. 여래의 갓을 떠난 새는 새로운 눈과 날개를 달고 다시 비상한다. 참나무는 이제 소나무의 눈과 날개가 아니다. 소나무는 이제 참나무의 눈과 날개가 아니다.
고행을 끝내고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해탈한 싯다르타의 염화미소가 형의 눈빛과 날개짓에 화답한다. 선문답만 하던 어린 동자승이 허둥지둥 새의 날개를 잡고 날아오른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휘어 굽어진 가지 끝 이슬에 비친 여래의 너른 얼굴에 겹쳐진 형의 환한 미소가 눈부시다.
답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