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도 돔이다

by 주니스

“썩어도 돔이다.”


바다낚시를 즐기시던 아버지께서 늘 하신 말씀이다. 그만큼 손맛과 회맛이 다른 어종에 비해서 단연 일등이라는 뜻이다.

돔은 미끼를 야금야금 조금씩 베어 먹지 않고 한 입에 삼킨다. 삼킨 후에는 바늘의 통증을 못 이겨 허둥대거나 옆으로 도망가지 않는다. 자신만의 아지트인 심해 속으로 빠른 속도로 젖 먹던 힘을 다해 수직낙하한다. 다른 물고기와 달리 덩치에 비해서 힘이 천하장사이다. 은빛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파도의 찰랑이는 틈 사이로 언뜻 보이던 오색빛 동그란 찌가 전광석화처럼 사라진다. 낚아채는 순간 낚시줄 끝의 팽팽함과 손맛의 묵직함에 돔임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갓 잡아올린 돔은 날 선 손칼로 단숨에 아가미에서 피를 빼서 사후경직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스박스에 집어 넣는다. 적당히 차가워진 돔을 두툼하게 회를 쳐서 초장 듬뿍 찍어 깻잎 위에 마늘 한쪽 올리고 소주 한잔 곁들이면 황후의 밥상이 따로 없다. 살짝 데친 오징어의 고소함과 참기름 찍은 산낙지의 쫄깃함, 입안을 한참이나 멤도는 미역향 품은 돔회의 맛은 일품이다.

어릴적 주말이면 아버지를 따라 바다낚시를 자주 갔었다. 지금도 바다를 보면 아버지와 함께 했던 아련한 바다낚시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흩어지는 파도의 창백한 포말을 따라 기억의 파편들은 때로는 그리움이 되었다가 때로는 아픔이 되어 가슴 속에 겹겹이 사무친다. 10여년전 초연히 세상을 떠나시던 모습이 새벽 물안개를 헤치고 여명이 되어 서서히 떠올라 눈시울을 뜨겁게 적신다.


낚시바늘로 갯지렁이와 크릴새우를 끼우는 방법, 어종별로 입질과 손맛이 다르고 계절과 하루 시간에 따라서도 낚이는 물고기의 종류가 다르다는 설명을 자분자분 해 주곤 하셨다. 바다 낚시는 민물낚시와 달리 갈때마다 변화무쌍하고 신기해서 주말이 가까워 오면 노랑 개나리 흐드러진 꽃밭 속을 뛰노는 봄처녀 가슴 마냥 콩콩거리며 설레곤 했다.

돔의 종류는 참돔, 감성동, 벵에돔, 황돔, 돌돔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손맛과 회맛 모두 감성돔이 으뜸이다. 감성돔이 출몰하는 포인트는 늘상 따개비와 미역이 잔뜩 붙어있는 갯바위 사이 검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태고의 신비가 느껴지는 곳이다. 감성돔을 낚아 올릴때면 마치 산신령이 건져 올린 도끼를 기다리는 나무꾼의 마음처럼 두근거리고 가슴 벅차다.


입질과 손맛은 어종마다 판이하다. 도다리는 미끼를 소리없이 머금고 있어서 물었는지 안 물었는지 릴대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해야 알수 있는 음흉한 놈이다. 쥐치는 겁이 많아서 갯지렁이의 끝을 조금씩 조심스레 베어먹기를 반복해서 섯불리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가는 허탕치기 쉬운 찌질한 놈이다. 반면 감성돔은 태생이 장군처럼 용감하고 선비처럼 올곧고 패션 모델처럼 화려한 놈이다.

단순무식하고 용감해서 밀당하지 않고 미끼를 한입에 삼킨다. 썸도 없고 삼각관계도 없고 한번 물면 일편단심 바다 바닥으로만 내리꽂는다. 아버지의 감성돔 예찬론을 들을 때면 어머니도 한마디 거든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한번 마음 먹으면 돔처럼 물고 댕거러지거래이.’


입질과 손맛도 일품이지만 힘겨운 사투 끝에 수면 위에 떠올라도 물속의 위용을 잃지 않고 위풍당당하다. 자신감 있게 툭 튀어나와 겁 없이 두리번거리는 심해빛 눈알과 체지방이라곤 없을 듯한 통통하고 튼실한 근육질 유선형 몸매, 천적들이 놀랄만큼 활짝 펼쳐지는 화려한 지느러미까지 감성돔의 약동하는 힘찬 생명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어리버리한 어린 강태공의 마음에도 군자와 범부, 장군과 졸개를 구분하는 태초의 분별력이 탑재되어 있었으리라.


적군의 손에 운이 없어 잡혔음에도 불의에 굴하지 않는 눈빛, 군사 열병식하는 은빛 비늘 연병장에 일사불란하게 도열한 줄무늬의 향연, 몽골 고원을 달리는 징기스칸의 창이 되어 하늘을 찌르는 등 지느러미, 자유로운 날개짓을 펄럭이며 조나단 갈매기가 되고 싶은 가슴 지느러미, 초원을 달리는 노마드 야생마의 흩날리는 배 지느러미, 못다한 바다 여행의 아쉬움에 연신 파닥이며 힘이 뻗힌 꼬리 지느러미. 썩어도 준치다. 역시 썩어도 돔이다.


이 놈을 유심히 지켜 보노라면 삼국지의 도원결의가 떠오른다. 심연의 자유로운 유영을 원없이 마친후 속세에서 허둥대는 낚시꾼을 바라보는 유비의 너그러운 눈망울과 바닷물과의 대화를 걸림 없이 주고 받았던 유연한 아가미, 한치의 오차없이 가지런한 갑옷 비늘 위 관우의 지조가 느껴지는 꾹 다문 일자 입과 숨겨진 송곳 이빨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후퇴없이 말 달리는 장비의 호기로운 고함이 귓전을 때리는 펄떡거림. 그들의 복숭아 나무 아래 결의도 이렇게 힘차고 호방했으리라.


아버지는 떠나갔지만 가끔씩 바다낚시를 위해 동해바다로 떠난다. 때로는 갈길 잃은 파도의 울음소리만 남은 갯바위 위에서, 때로는 새벽 운무을 헤치고 포인트를 찾아다니는 선상 낚싯배 위에서 아버지를 조우한다.

감성돔은 아버지의 지난한 삶을 떠올린다. IMF 환란 끝에 전 재산 몽땅 다 날리고 신용불량자가 된 후 남기신 잊혀지지 않는 한마디. ‘니도 내 나이 되면 나를 이해할끼라.’

피할수 없는 가난 끝에 오직 하나 남긴 유산인 액자 속 빛바랜 한지에 직접 쓴 붓글씨 한가닥.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홀연히 이승의 바다를 떠나기 전날 저녁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남긴 마지막 말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살거라.’


평생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당신만의 길을 걸었던 호연지기 속 여유로움, 강인하고 곧바른 군자 같았던 삶, 죽음 앞에 독대할 때에도 타협하지 않고 숲속으로 홀로 걸어가는 코끼리의 뒷모습처럼 초연하고 헛헛한 표정 속에 느껴지던 의연함.

그 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되었다. 그토록 좋아하시던 감성돔의 일생처럼 바다 속 자유를 가족 위해 희생하셨지만 후회없이 당신의 외길 인생을 꿋꿋하고 의롭게 살다 가셨다는 사실을. 하늘의 소리가 들린다는 이순의 나이가 되니 비로소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리게 되었다는 진리를.


낚시 장비를 챙겨서 바다로 떠나봐야겠다. 아버지를 만나면 따뜻하게 한번 안아 드려야겠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잎새 떨어진 메마른 가지 위를 어루만지면 아버지의 쓸쓸한 그림자가 축 쳐진 어깨 위로 길게 걸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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