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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존 포드, 1924)

철마, 시간 위를 달린 서부의 신화

by 이다연

1. 영화 정보

제목: 《철마》(The Iron Horse)

연도: 1924년

감독: 존 포드 (John Ford)

장르: 서부극 / 역사극

제작사: 폭스 필름(후일 20세기 폭스)

상영 시간: 약 150분 (무성 영화, 일부 편집판은 133분)

영화 링크: https://youtu.be/PoX8uPDIWUM?si=-doZfqdF99X-d9Uv


존 포드(John Ford, 1894~1973)

는 서부극의 상징적인 감독일 뿐만 아니라, 영화사의 거대한 거목이다.

1) 생애와 배경

존 포드는 1894년 미국 메인주에서 아일랜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존 마틴 페이니(Johann Martin Feeney)였으나, 영화계에 들어와 ‘존 포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1910년대 무성영화 시절에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고, 1917년에 첫 장편 연출을 맡았다. 이후 50년 넘게 140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하며, 헐리우드 황금기의 중심에 섰다.


2) 영화적 스타일

존 포드는 “아메리카의 신화 건축가”라 불릴 만큼, 미국 서부와 공동체, 가족, 애국심, 인간의 고독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그려냈다. 특징적인 요소는 다음과 같다.

서부의 광활한 풍경 : 모뉴먼트 밸리 같은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장대한 스케일을 담아냄.

인물과 공동체 : 개인의 고독과 공동체의 이상을 대비시키는 주제.

리얼리즘과 시적 영상 : 단순한 액션이 아닌, 여백과 침묵, 그림 같은 구도로 깊은 여운을 남김.

도덕적 모호성 : 선과 악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고,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탐구.


3) 대표작

《역마차(1939, Stagecoach) : 존 웨인을 스타로 만든 서부극의 고전. 서부극을 예술로 끌어올린 작품.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 How Green Was My Valley) : 가족과 공동체의 서정을 담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분노의 포도(1940, The Grapes of Wrath) : 대공황기의 이주민 삶을 다룬 사회적 리얼리즘의 대표작.

《수색자(1956, The Searchers) : 복수와 인종 문제를 탐구한 걸작, 현대 영화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미침.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 신화와 진실, 근대화의 갈등을 다룬 후기 서부극 명작.


4) 영향과 유산

미국 신화의 창조자 : 존 포드는 서부극을 통해 미국의 정체성과 신화를 스크린에 각인시켰다.

후대 감독들에 미친 영향 : 쿠로사와 아키라, 세르지오 레오네, 마틴 스코세이지,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등 수많은 감독들이 그의 영화적 언어에서 영감을 받았다.

장르의 확장 : 전통적인 서부극뿐 아니라, 전쟁 영화(《그들은 우리 청춘을 위하여》), 드라마, 역사극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헐리우드 거장’으로 자리매김.

아카데미 역사 : 감독상 4회 수상으로 최다 기록을 보유했다.


5) 평가

존 포드는 단순히 “서부극 감독”이 아니라, 미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영화로 기록한 철학자로 평가된다. 그의 영화에는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로서 느낀 뿌리 의식,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상과 모순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2. 줄거리 요약

《철마》는 미국 역사에서 대륙횡단철도 건설(Union Pacific Railroad) 과정을 다룬 영화다.

어린 시절 서부 개척의 꿈을 꾸던 소년 데이비 크락(George O’Brien 분)은 아버지를 잃고 성장한다.

그는 훗날 철도 건설에 참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인디언의 저항, 사기꾼들과의 대립, 자연과의 싸움을 겪는다.

철도가 마침내 완성되며, 개인의 서사와 국가적 신화가 결합된 장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3. 미학적 특징

스펙터클: 실제 철도 건설 현장을 배경으로 대규모 인원과 세트를 동원, 초창기 할리우드의 대작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리얼리즘: 포드는 역사적 사실과 신화를 교차시켜 "철도 = 미국 문명의 진보"라는 상징성을 강조했다.

서부극의 원형: 인디언과 백인의 갈등, 문명과 자연의 충돌, 개인과 공동체의 성장이라는 서부극의 핵심 요소가 담겨 있다.


4. 영향과 의의

《철마》는 존 포드가 국가적 서사를 서부극 형식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확립한 작품이다.

‘철마’라는 제목 자체가 산업 문명(철도)이 야생(말과 대초원)을 대체하는 과정을 은유한다.

이후 포드의 대표작 《역마차》(Stagecoach, 1939),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 1946), 《수색자》(The Searchers, 1956) 등으로 이어지는 "미국 신화 구축"의 초석이 되었다.


5. 감상평

《철마》는 단순한 무성 서부극을 넘어, “미국 건국 신화”를 영화적 스펙터클로 시각화한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관객은 철도 건설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 속에서, 한 개인의 성장과 시대적 진보를 함께 목격하게 된다. 존 포드 특유의 광활한 풍경 묘사와 영웅적 내러티브가 이후 서부극의 전범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지금도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꼽힌다.

[서부극의 기원과 특징 ]

탄생 배경: 서부극은 19세기 미국의 개척시대(Frontier) 신화를 바탕으로, 20세기 초 영화 매체에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초기 단편 영화인 《대열차 강도》(The Great Train Robbery, 1903)가 시초로 꼽히며, “개척 정신”, “개인의 자유”, “법과 무법의 경계”가 중심 테마였다.

주요 요소: 말, 총, 광활한 대지, 철도, 보안관과 무법자, 원주민과의 갈등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이는 미국인의 정체성과 ‘미국적 신화’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서부극의 배경: 19세기 후반 미국 개척 시대, 서부로 확장하는 개척민들의 삶과 갈등을 다룬 장르. 황야, 기차, 카우보이, 원주민, 보안관, 무법자 등이 상징적 요소로 자리 잡음.
▪︎초기 영화들: 《대열차 강도》(The Great Train Robbery, 1903) 같은 작품에서 이미 ‘기차’와 ‘총격전’이 결합된 서부극의 기초가 마련됨.


《철마》(The Iron Horse) 의의

존 포드의 《철마》는 서부극의 대작 시대를 여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이 영화는 단순히 총격전이나 로맨스에 그치지 않고, 대륙횡단철도 건설이라는 미국 국가적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삼아, 서부극을 ‘역사적 서사시’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서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문명과 야만, 질서와 혼돈, 통합과 분열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이는 훗날 수많은 서부극에서 반복적으로 변주되었다.

▪︎존 포드의 초기 대작: 1924년작 《철마》는 서부극을 단순한 오락물에서 역사적·신화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됨.
▪︎내용: 대륙횡단철도의 완성을 배경으로, 기차 건설 과정에서의 갈등, 인물들의 개인적 드라마, 원주민과의 충돌이 서사 속에 포함됨.
▪︎특징: ‘서부’의 신화를 국가 건설의 역사와 연결. 개인의 영웅담을 넘어 미국의 근대화·통합을 상징. 대규모 야외 촬영, 수많은 엑스트라 동원 등 서부극의 스케일을 확장.


② 근현대에 이르는 서부극의 진화

고전 서부극(1930~1950년대)/ 존 포드, 하워드 혹스 등의 감독들이 서부극을 완성했다. 《역마차》(1939), 《수색자》(1956)는 인디언과 개척민의 갈등을 인간의 도덕적 문제로 확장시켰다. ‘영웅적 카우보이’와 ‘법의 수호자’ 이미지를 굳히면서 미국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해체기 서부극(1960~1970년대)/ 미국 사회의 베트남전, 인권 운동, 정치 불신과 맞물려 반영웅적 서부극이 등장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이탈리아 마카로니 웨스턴(《황야의 무법자》 등)은 기존의 도덕성을 깨뜨리고 탐욕, 폭력, 생존의 냉혹함을 강조했다.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1969)는 피와 폭력으로 영웅 신화를 붕괴시켰다.

현대적 변주(1980년대~현재)/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1992)는 서부극을 회고적, 반성적 장르로 재해석했다. 카우보이의 신화 뒤에 숨겨진 폭력과 인간적 상처를 드러냈죠.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더 하더 데이 폴》(2021) 같은 작품들은 서부극의 미학을 현대 범죄극이나 흑인 문화 맥락 속으로 이식했다. 지금은 서부극이 ‘완전히 죽은 장르’가 아니라, 상징적 레퍼런스로 영화, 드라마, 심지어 SF(예: 《웨스트월드》)에서도 변주되고 있다.

▪︎고전 서부극 (1930~1950년대) 존 웨인, 게리 쿠퍼가 대표. 법과 질서, 선과 악의 명확한 구도. 《역마차》(Stagecoach, 1939), 《하이 눈》(High Noon, 1952) 등이 대표작.
▪︎전성기와 서사의 확장 (1950~1960년대) 존 포드, 하워드 혹스 등 거장들이 서부극을 미국 정체성과 신화로 구축. 대작 영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처럼 서부의 낭만과 몰락을 성찰하는 방향으로 진화.
▪︎스파게티 웨스턴 (1960~1970년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등. 잔혹하고 냉혹한 현실, 반(反) 영웅적 인물이 중심. 음악(엔니오 모리코네)과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장르적 전환점 마련.


현대 서부극 (1980년대~현재)

1.《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 1992, 클린트 이스트우드)
→ 서부 신화 해체, 폭력과 정의의 모호성 드러냄.

2.《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코엔 형제)
→ 서부극의 분위기를 현대적 스릴러로 계승.

3.《파워 오브 도그》(2021, 제인 캠피온)
→ 서부극을 통해 젠더·심리·권력관계까지 탐구.


《철마》의 영향과 현대적 의의

국가 신화로서의 서부극: 《철마》는 서부극을 단순 오락물이 아닌, 미국 근대사 서사의 일부로 정착했다.

철도 모티프의 계승: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철도는 진보·식민·자본·폭력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장치가 된다.

스펙터클과 리얼리즘의 결합: 수천 명의 엑스트라, 실제 철도 건설 현장을 동원한 사실적 연출은 훗날 전쟁 영화나 역사 서사극의 모델이 되었다.

▪︎국가적 신화의 토대: 《철마》는 철도라는 인프라와 국가 건설을 하나의 드라마로 엮으면서, 이후 웨스턴 영화들이 ‘서부 = 미국의 정체성’으로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
▪︎스케일과 리얼리즘: 대규모 야외 촬영 기법, 집단 드라마 구조가 이후 서부극뿐 아니라 전쟁 영화, 역사극에도 영향을 줌.
▪︎현대적 해석: 오늘날의 웨스턴은 더 이상 단순히 개척 시대의 영웅담이 아니라, 인간 소외, 문명의 폭력, 정체성의 위기 같은 주제를 다루는 데 활용됨. 《철마》가 국가 건설 신화를 노래했다면, 현대 서부극은 그 신화의 그늘과 균열을 파고드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음.


6. 철학적 확장 해석


1. 니체 ― 힘의 의지와 운명의 사랑

니체에게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한계를 넘어서려는 존재였다. 《철마》가 상징하는 철도는 단순한 문명의 발명이 아니라, 힘의 의지(Wille zur Macht) 그 자체다. 황야를 가르는 궤도는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새롭게 창조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니체는 또한 *운명의 사랑(Amor fati)*을 강조했다. 문명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황야의 시간들까지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서부극이 남긴 상실을 긍정할 수 있다.


2. 하이데거 ― 세계-내-존재와 기술의 본질

하이데거의 사유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로 존재한다. 《철마》의 철로는 ‘존재자가 세계와 맺는 방식’을 가시화한다. 철로가 생기기 전, 인간은 자연과 얽혀 있었지만, 철마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기술을 매개로 세계와 관계 맺게 된다.


하이데거는 기술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보았다. 서부극의 화면에 펼쳐진 기차는 곧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드러내는 방식의 변환”을 상징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기술적 드러냄 속에서 인간이 자기 본질을 망각할 위험 또한 내포하고 있음을 영화는 암시한다.


3. 들뢰즈 ―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

들뢰즈의 영화 철학에 따르면, 서부극은 전형적인 운동-이미지의 체계 안에 있다. 즉, 원인과 결과, 목표와 이동이 뚜렷한 서사. 《철마》의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는 전형적 운동-이미지의 상징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부극은 점차 시간-이미지로 전환된다. 단순한 개척의 행위가 아니라, “이 길이 과연 어디로 이어질 것인가”라는 물음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황야의 기차는 단순히 달리는 물체가 아니라, 시간을 사유하게 만드는 이미지로 변모한다.


종합적 사유

《철마》 이후의 서부극들은 결국 이렇게 세 가지 철학적 질문을 겹겹이 남겼다.

1. 니체: 우리는 상실마저 긍정할 수 있는가?
2. 하이데거: 기술은 우리를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를 망각하게 하지 않는가
3. 들뢰즈: 길을 달리는 철마는, 목적지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이 철학적 울림 속에서, 서부극은 단순한 장르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존재를 성찰하는 무대로 남는다.


7. 마무리

서부극은 결국 인간이 끝없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광활한 황야 위에서 말을 달리던 주인공들은 사실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고, 철로를 따라 이어진 길은 국가의 역사이자 개인의 기억이었다.


《철마》 속 철도는 단순한 산업의 산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망과 또 다른 이의 눈물을 함께 싣고 달린 거대한 강철의 강이었다.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잃고, 새로운 꿈을 얻으며, 마침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더 이상 말 위에서 총을 겨누는 서부의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서부극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우리 안의 모험심이자, 끝없는 경계를 넘어가려는 마음, 그리고 "어디가 진짜 집인가"를 묻는 영원한 질문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부극을 본다는 건, 사실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달려가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8. 에필로그

서부극은 결국 ‘개척’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다.
《철마》가 놓은 철로는 단순한 길이 아니라,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려는 인간 의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길 위에는 항상 두 가지 질문이 공존한다.

무엇을 위해 길을 내는가?

그 길 끝에서 우리는 진정 자유로워지는가?


근대 산업화가 자연을 정복하는 과정이었다면, 서부극은 그 안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정복하려 애쓴 기록이었다. 《철마》의 카메라가 황야의 먼지를 비추던 순간, 이미 우리는 문명의 도래와 함께 사라질 ‘순수한 시간’을 애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철도는 대륙을 잇는 선이었지만 동시에 인간 내면을 가르는 경계선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무한히 확장시키면서도, 동시에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을 새겨 넣었다.

결국 서부극은 묻는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자유란 어디서 오는가?
그리고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철마》 이후 이어진 수많은 서부극들은 바로 이 질문을 변주하며, 근현대의 인간에게 “우리의 철마는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라는 근원적 사유를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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