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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thing special/ 오륙도

27. 오륙도(五六島)

by 이다연



바다의 품, 오륙도(五六島)


“섬은 작아도,
바다는 언제나 품어준다.”

오륙도에 닿으면
먼저 느껴지는 건 ‘경계(境)’다.

바다와 도시의 선이 사라지고,
파도와 바람이 마음의 결을 다시 쓴다.


부산의 끝자락에서
바다를 향해 솟은 여섯 개의 바위섬.
물길에 따라, 바람에 따라
섬은 다섯이 되기도 하고 여섯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은
五六島, 오륙도.

섬의 수마저 바람이 정한다.

이곳엔 운명이 깃들어 있다.


1. 오륙도의 시작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도시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

오륙도는 육지에서 손에 잡힐 만큼 가깝지만,
섬에 발을 딛는 순간 도시의 소음은 멀리 밀려난다.


섬의 하루는 지금도 바다에 기대어 있다.
해무가 끼면 섬은 몸을 숨기고,
햇살이 비치면 바위의 결까지 또렷하게 살아난다.


오전엔 바다가 유리처럼 반짝이고,
해가 기울 무렵엔 섬의 능선에 붉은빛이 감돈다.


이곳에서는 시간을 시계로 읽지 않는다.

‘빛의 움직임’으로 하루를 읽는다.

잠시 걸음을 멈추면,
바람의 숨소리가 섬의 말을 대신한다.


2. 다섯 개의 시선, 다섯 개의 풍경


✅ 바람절벽


섬의 남쪽 절벽은 바람이 가장 먼저 닿는 자리다.

검고 낮은 바위 사이로 파도가 부서지며
거친 해풍이 얼굴을 스친다.

그런데도 마음은 오히려 고요해진다.


바람이 세면 섬은 여섯이 되고,
바람이 잦으면 다섯이 된다.

섬의 수는 언제나 바람이 정한다.
오륙도의 가장 오래된 질서가 바로 이것이다.


✅ 붉은 바위 능선길


정오에는 회색을 띠지만
해 질 무렵이면 능선 위로 붉은 광맥이 깨어난다.

마치 오래된 철광석이 햇빛에 일어나는 순간처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다 냄새가 조금씩 달라져
섬길을 걷는다는 것은 ‘방향’이 아니라
‘순간’을 따라가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 해무숲


안개가 밀려오는 날, 오륙도는 잠시 사라진다.

흰 해무가 바다 위를 덮으며
섬과 하늘의 경계를 지운다.

그 속을 걷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두렵지 않고
잠시 흐려서 더 아름다운 풍경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섬은 늘 그대로지만
우리는 날마다 다른 눈으로 그 풍경을 바라본다.


✅ 파도바위의 노인


오륙도 앞 파도바위에는
이른 아침마다 한 노인이 서 있다.

손에는 낡은 모자를 들고,
눈은 언제나 수평선을 향한다.


섬사람들은 말한다.

“그분은 평생 바다를 벗 삼아 사셨어요.
사람은 떠나도
바다는 돌아올 길을 잃지 않는다더군요.”

노인은 오늘도 파도와 오래된 대화를 나눈다.
그리움은 늘 바다로 흘러간다.


✅ 하늘정원, 스카이워크 위의 바람


스카이워크 위에 서면
투명한 유리 아래로 바다가 뒤흔들린다.

하얀 포말이 아래에서 터지고
바람은 섬과 하늘이 닿는 자리를 가볍게 스쳐간다.


그 순간, 나는 땅이 아니라
‘바다의 심장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늘정원의 바람은
언제나 솔직하고, 언제나 자유롭다.


3. 오륙도 정보 요약


위치: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형태: 동섬·서섬을 포함한 5~6개의 바위섬

특징: 물때·바람·시선에 따라 섬의 수가 달라 보임

명소: 바람절벽 / 붉은 능선 / 해무숲 / 파도바위 / 스카이워크

접근: 육지에서 도보·버스로 접근 가능(상륙 제한)


“바람과 물결이 하루의 얼굴을 바꾸는 섬.”


4. 섬의 삶과 사람들


오륙도 앞바다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바다의 표정으로 날씨를 읽는다.

아침 파도가 잔잔하면 좋은 하루,
서쪽 바람이 불면 비를 준비한다.

그들은 종종 말하곤 한다.

“섬은 늘 그대로인데,
우리가 먼저 변하잖아요.”

바다는 묵묵한 스승이고,
파도는 친절한 설명서다.

도시 가까이에 있어도
이곳은 여전히 자연의 법칙이 먼저인 곳이다.


5. 바람의 계절


오륙도의 바다는 계절마다 얼굴이 다르다.

봄, 연한 회청색의 바람
여름, 짙은 청록의 투명한 물빛
가을, 붉은 능선과 금빛 수평선
겨울, 잿빛 고요와 하얀 포말

그리고 어느 계절에도
섬은 본질을 잃지 않는다.

“변하는 건 바람이지,
섬의 마음은 늘 한 자리였다.”


6. Epilogue


노을이 바다에 스며드는 시간,
오륙도는 붉은 실루엣이 된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깔리고
바람이 섬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섬은 작아도, 마음은 넓다.”

바다가 대답한다.

“돌아오는 길이 있다는 건,
그곳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오륙도의 밤은 조용하다.
하지만 그 고요 속엔
수많은 항해의 숨결이 잠들어 있다.

“섬은 잠들지 않는다.
바다의 기억을 품고,
또 한밤을 지켜낸다.”


♡ Legend ―

《오륙도 바람의 그림자》


옛날, 해풍이 더 거칠고 풍랑이 잦던 시절,
오륙도 앞바다에는
배를 잃은 사람들을 지켜주는 바람의 정령이 살았다.

사람들은 그 정령을 *六影(육영)*이라 불렀다.

섬이 여섯처럼 보이는 날은 정령이 깨어 해안을 지키는 날,
다섯처럼 보이는 날은 정령이 쉬는 날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섬의 수는
눈으로 세지 않고 ‘바람의 그림자’로 셌다.


어부들은 종종 말했다.

“바람이 섬 하나를 데리고 다니는 거지.”

그 말은 지금도 바다 마을 사람들 입에서 전해진다.

어떤 늙은 어부는 이렇게 덧붙였다.

“섬은 늘 그대로야.
우리가 보는 모습은…
바람이 가르쳐 주는 환영일 뿐이지.”


섬은 그 자리에 서 있지만
바람은 매일 새로운 얼굴을 그린다.

바람이 그려낸 여섯 개의 얼굴, 오륙도.
그 환영 속에서 사람들은 오래도록 길을 찾았다.



― 《섬 thing Special》

《바람이 그려낸 여섯 개의 얼굴, 오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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