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들어보는 영화이야기
- 이번 글은 극장 개봉 영화 <누벨바그>를 관람하고 적은 후기입니다.
-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개인적 취향과 인상을 토대로 편하게 감상을 남겨보았습니다.
- 주요 인물 설명, 스토리 전반에 대한 간략한 언급, 그에 대한 의견 등이 글에 포함되어 있어 열람에 주의를 요합니다. 어떤 종류의 스포일러도 원치 않는 분께서는 먼저 작품을 보고 읽어주세요!
학구열이 필요한 영화가 있다. 이번 영화가 그럴 것이라는 예측은 제목 때문이었다. 영화 제목이 <누벨바그>인 것은 꺼내든 소설책 제목이 <리얼리즘>인 것과 비슷한 구석이 있고, 그런 제목은 관객이나 독자에게 일종의 긴장을 준다. 나는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극장을 찾았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전문적인 영화 지식이 많지 않은 내게 지적인 부담을 과중하지 않는, 사근사근하면서 재밌는 영화였다. 어려운 말을 쓰지 않는데도 지성적인 사람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고, 여유로운 위트까지 갖추고 있어서 대화가 즐거운 이들을 운좋게 만날 때가 있는데, 이번 영화는 바로 그런 사람이 들려 주는 즐거운 영화이야기 같았다.
이번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로, 실존했던 감독이 주인공이다. 이름은 장 뤽 고다르다. 나는 그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가 감독으로서 <네 멋대로 해라>를 찍었으며, 그 영화가 '누벨바그 영화'로 분류된다는 정도의 간단한 정보만 주워들어 알고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네 멋대로 해라>도 본 적 없다. (사실 프랑스어가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나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누벨바그가 뭔지도 몰랐고 지금도 정확히는 모른다. 그런데도 이번 영화를 보는 데 무리가 전혀 없었으니, 혹시 비슷한 이유에서 관람을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괜찮을 거라고 말해 주고 싶다. 더불어 이 영화에는 실존인물이 다수 등장하고 있어, 나는 기본적으로 영화의 내용이 전부 사실을 토대로 했으리라고 전제하면서 관람한 뒤에, 추가적인 사실 확인에 앞서 본 감상문을 먼저 작성하고 있음을 밝혀 둔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장 뤽 고다르는 비평가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를 직접 찍는게 꿈인 사람이다. 같은 시기에 트뤼포라는 감독이 끗발을 날리고 있어 그의 성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어영부영하다가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다가 마침내 도전을 결심하는데, 제작자나 배우들이 장편영화를 찍어본 적 없는 그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할 이유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제작자와 이야기한 끝에, 각본은 트뤼포에게 받아 사용하고 한정된 재원으로 영화를 찍어 보기로 한다. 촬영기간은 20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영화는 이 20일간의 촬영담이자 제작 비화라 할 수 있겠다.
녹록지 않은 조건에 조바심이 날 법도 한데, 감독의 여유만만한 태도와 엉뚱한 요구가 더해져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의구심을 산다. 그 엉뚱한 주문들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도 한가득을 채울 수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어떤 감독으로 비칠지도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 촬영장까지 걸어오라고 시키기. (교통수단 통제하는 감독)
- 주인공 여배우의 메이크업을 금하고, 여배우가 고용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병풍으로 세워두라고 하기. (화장 통제하는 감독)
- 세트장을 정리하지 못하게 하기. 사용 중이던 공간을 아무 조치 없이 그대로 세트장 삼아 촬영하기. (무성의한 감독)
- 배우와 제작진 어영부영 뽑기. (무성의한 감독 2)
- 촬영 스케줄 불참하고 오락이나 하다가(핀볼 게임을 한다) 제작자랑 싸우기(영화에서 진짜로 엉겨서 육탄전을 벌이는 모습으로 나온다). (막나가는 감독)
- 각본에 재능이 없다는 걸 순순히 인정해버리고서는 딱히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지도 않기. (무성의한 감독 3, 막나가는 감독 2)
- 기술적으로 후시녹음을 피할 수 있는데도 굳이 후시녹음을 쓰기. 정해진 대사를 주지 않고 아무 말이나 하도록 내버려두거나 강요하기. 그것을 후시녹음으로 땜빵치기. (막나가는 감독 3)
이렇게 볼 때 그는 '엉뚱하고 무성의하고 막나가는' 감독처럼 일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감독과 가장 대립하는 두 인물이, 그에게 투자하는 제작자와 주연 여배우라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한 번도 장편영화를 찍어 본 적이 없다는 감독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촬영방침을 고수하고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감독이 영화의 완성을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두 사람의 소중한 신용을 사지 못하는 것은 타당해보인다.
영화 속 고다르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유능한 전문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는 명감독으로 영화사에 기록되었고, <네 멋대로 해라>는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단지 행운이라는 벼락을 맞아 역사를 사들일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영화의 대답은 '아니오'다. 영화를 시종일관하는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고다르 감독을 좋은 영화인으로 회고하는 영화의 애정어린 목소리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되고 있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니, 위에다가 닥치는 대로 적어놓은 그의 만행들이, 실은 피사되는 대상이 품은 분방함 내지는 가능성을 싱싱한 그대로 지켜보려는 참을성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고다르는 영화를 '귀여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귀여운 아이를 보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을 때도 있고, 또 볼을 꼬집어 주고 싶을 때도 있고, 아이의 귀여움이 돋보일 만한 옷을 사입혀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쓰다듬거나 꼬집거나 옷을 사주는 것을 원치 않는 아이, 그런 관심사를 달가워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고다르는 자기 슬하에 있게 된 영화의 책임자로서, 영화라는 것이 귀여움을 받길 원치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가 치밀한 각본이나 계산된 세트장, 혹은 섬세한 메이크업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서투르더라도 어엿한 혼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서, 영화를 귀여워하는 많은 선의의 손길들에 잠시 참아 주십사 배려를 요청하는 '영화적 방임주의' 양육자의 모습이 비쳤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후시녹음을 사용하는 고다르 감독만의 방식이었다. 누군가에게 후시녹음은 기술의 한계로 인한 구시대적 차선책일 수도 있겠으나, 고다르 감독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방임주의적 원리에 오히려 후시녹음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후시녹음을 하면, 배우들이 대사를 달달 외우지 않아도 영화를 촬영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대사를 생각하지 않아도 촬영이 가능해진다. 정제된 대사와 각본이 가진 힘과 그 힘에 의한 명암을 알고 있기에, 후시녹음을 써서 배우들로부터 그 힘을 격리시키고 배우들이 가진 생동을 그늘지지 않게 활짝 피워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방임주의적 태도를 납득하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려고까지 했던 여배우가 어느새 촬영장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웠을 뿐아니라 일종의 뿌듯함까지 느껴지게 한다. 왜 화장을 해선 안 되는지, 왜 촬영장까지 걸어와야 하는지, 왜 미리미리 대사를 연습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 것인지, 그런 선택이 정말로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 처음에는 나도 그렇고 아마도 여배우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그의 바람대로, 나도 그녀도 모두와 함께 촬영장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여배우가 남자 배우를 향한 사랑에 빠졌음을 암시하는 듯한 연출이 후반부에 제시되면서 영화가 마무리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짧은 장면이지만 남자 배우를 바라보는 여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대목에서 여배우의 마음에 마침내 심상찮은 변화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는 <네 멋대로 해라>의 흥행과 두 주인공의 행적을 짤막한 자막으로 언급하면서 끝나는데, 남자배우에 대해서는 배우로서의 승승장구를 언급함과는 달리, 여배우에 대해서는 그간 이어오던 결혼생활의 파경을 알린다. 나는 이 영화가 여배우의 사생활로서 이혼을 언급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배우가 이혼했다'는 사건이 고다르와의 영화 촬영기, 즉 이 영화의 주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 영화상으로 일종의 추정적 결론이 내려진 것이며, 이 결론은 고다르의 영화 혹은 영화관이 한 사람의 인생에 깊게 작용할 수 있는 울림이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의도된 듯하다. 영화에 대한 영화로 시작했지만, 그 끝에 내가 목격한 것은 사랑에 빠진 여자의 얼굴이다. 이것을 '고다르적으로 좋은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누벨바그>의 코멘트로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관람을 마친 뒤에도 영화 속 고다르가 남긴 멘트 하나가 계속 뇌리에 남아 있다. '만신전에 들자'는 포부다. 전쟁에서 공훈을 세우겠다는 희랍 영웅의 오만불손한 외침을 상기시키는 발언으로, 평론가 고다르로서는 감독 고다르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이 영웅의 임전臨戰에 준하는 선택이었나보다. 만신전에 들자는 말은 공훈을 세우자는 뜻이고, 공훈을 세우자는 것엔 역사에 기록되자는 의지가 엿보인다. 마치 이름난 장수들의 위업을 받아적던 사관이 직접 무구를 갖추고 전장에 뛰어드는 모습이 연상되어 흥미로운 한편으로, 또 그런 공교로운 전직이 그를 역사에 남기는 데 일조한 게 아니겠는가 생각도 든다. 칼은 전쟁을 수행하는 도구 중의 하나여서 집도만으로는 전쟁이 성립하지 않는다. 한 장수의 집도가 요리나 수술이 아닌 전쟁이 되는 것은 칼을 사용하는 방식에 달려 있듯, 누군가가 촬영한 영상이 그대로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닐 테다. 고다르는 역사가이자 장수로서, 카메라의 영화적 활용이란 무엇인지를 깊이 연구한 끝에, 그 해답을 가지고 직접 영화라는 전장에 뛰어들어 자신의 이론을 실천에 옮기는 데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영화 속 고다르가 카메라의 영화적 활용이 무엇인지 고심했을 것처럼, <누벨바그> 영화 자체도 카메라의 영화적 활용을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예스러움을 부각시키는 생소한 화면비의 흑백 스크린도 그러한 고민의 일환으로 취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바로 전신샷이었다. 이 영화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인물소개를 겸하는 전신샷으로 뜸을 들인다. 그런 종류의 샷은 머그샷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재밌다. 약간은 노골적인 듯한, 그러면서도 약간은 농담을 건네는 듯한 이 전신샷의 반복적인 활용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인물소개 이상의 어떤 연출 과정과 의도가 있었을지 즐겁게 억측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했다. 마치 고다르가 했던 것과 비슷하게, 의도를 숨긴 채 카메라를 들이밀어 해당 샷들을 찍지는 않았을까? 단지 '영화 촬영 일을 하고 있다'라는 감각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샷 하나가 무작정 촬영되고 있다는 감각을 배우들이 느끼지는 않았을까? 영화의 이야기에 배우들이 노출되기 전에, 감독이 아무런 지시나 합의 없이 카메라로 배우의 전신을 잡는 것을 나는 상상해본다. 짧게나마 의미의 공백 앞에 노출된 배우들의 꿈틀거림, 마치 빛을 맞은 지렁이와도 같은 꿈틀거림 속에, 합의된 역할을 가지고 카메라를 마주해야 한다는 배우로서의 정체성과, 명확한 목표 없이 서서 어쩔 줄 모른 채 피사되는 인간으로서의 당혹이 혼재되어 있지는 않았을까? 하나의 카메라에 배우와 등장인물이 이중으로 촬영되는 영화만의 특수성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방식으로서 전신샷이 활용된 건 아닐지 하는, 좀 터무니없는 추측도 해 보았다.
고다르라는 사람의 모험담을 듣는 재미로 시작하지만, 그 끝에서는 영화라는 예술의 성립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고, 나아가 카메라라는 특수한 사물의 영화적 활용이란 무엇인지 탐구심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나는 아주 좋은 영화를 봤다고 생각한다. 나는 <네 멋대로 해라>가 보고 싶어졌다. 왠지 재밌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이미 충분히 좋은 영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