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대의 전통(?)을 존중하고 있는가?

작은 것일지라도 시공간을 아우르는 정신이 담겨있다

by 누리장인
"전통은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지 모양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 현, p.248》




어떤 것이든 전통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통의 뜻은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ㆍ관습ㆍ행동 따위의 양식'이자 '과거부터 전해진 문화유산(文化遺産)'이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집단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개인에게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으며, 대체가 불가능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전통은 겉모습만을 따라 하여 흉내 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앗아갈 수 없으며, 시초가 되는 존재의 의지와 배경 그리고 나름의 가치가 새겨진 이유를 필요로 합니다. 심지어 사람, 사물, 건물, 동물, 식물 등 모든 것에 반영할 수 있으며, 음악, 미술, 가치관, 종교, 언어, 시스템 등을 통해 고유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내포하기도 합니다. 설령 이를 따라 한들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중들이 이를 쉽사리 수용하고 인정할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경복궁과 유사한 건축물을 본래의 지역을 떠난 장소에 요즘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재건한다고 해봅시다. 현대식 기술이 가미된 만큼 더 견고하고 튼튼하며 퀄리티 또한 높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가치 있을까요? 그저 건축물로서의 가치만 매겨질 뿐 내재된 역사성과 정체성은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그 나라 때와 동일한 기술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만든 사람들이나 위치 또는 건축 소재 어느 하나라도 바뀐다면 그 미세한 차이 하나가 많은 것을 희미하게 만들 것입니다.


'장소에 남겨진 역사적 의미'와 '과거와 현재 간의 고유한 거리'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헌신이 담긴 시대정신' 등이 고스란히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은 절대 카피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죠.


전통은 사람 몸속에 존재하는 '피'와 마찬가지입니다.

피는 자신들이 거주하는 신체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바운더리를 벗어났을 때는 본래의 효능을 굉장히 많이 상실합니다. 설령 다른 신체에서 제 역할을 한다 하더라도 영향력은 현저히 떨어지게 되며,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매우 높죠. 수혈을 예로 들어보자면, 최근 글로벌 가드라인으로 봤을 때 피가 70프로 이상 빠져나갔을 때나 수혈의 가능성을 고려하라 할 만큼 부작용이 많으니 자제하라고들 합니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서 빅데이터들을 통해 조사해 보니 수혈을 받는 환자들이 받지 않는 환자들에 비해 감염률이나 사망률이 더 높더라는 논문들이 나오고 있다고도 합니다. 의외로 사람은 피가 좀 많이 빠져나가도 버틸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조치에 문제가 없기도 한 거죠. 1990년대 전쟁이 많아 수혈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는데, 그만큼 간염이나 에이즈 등이 유행했던 만큼, 가능한 한 수혈을 지양하는 게 현 의료계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피는 갖가지 정보가 담겨 있는 만큼 혈액 검사로도 다양한 질병 및 DNA를 검출하고 파악할 수 있으며, 현존하는 기술력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미래에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축출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전통의 보이지 않는 사상이나 관습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주위에 가볍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죠. 바로 사연이 있는 물건입니다. 값이 싸고 비싸고의 문제가 아닌 그 존재 가치가 개인에게 많은 의미를 안겨줍니다. 누군가에게는 부모님이 남긴 오래된 녹음기가 가족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고, 친구가 선물한 색연필은 친밀했던 추억의 상징이 될 수 있으며, 어린 시절의 사진은 소중한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편린이 될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물건인 것이죠. 이 또한 과거부터 전해진 우리만의 '문화유산'이 되기도 합니다.


숭례문 화재가 일어난 지 15년이 되었고, 복원한 지는 10년이 되었습니다. 국보 1호라는 타이틀에서 국보로 바뀐 지금, 이런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은 과거 선조들의 경험과 신념을 기억할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70대 노인분이 토지보상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자 방화를 저지르게 되었고, 당시 한국인들은 평범한 화재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가족을 잃은 듯이 깊이 슬퍼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역사를 한눈에 기억할 수 있는 귀중한 상징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정찬성 선수의 은퇴경기 한쪽의 글러브가 퇴장 도중 어떤 팬에 의해 빼앗긴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 경기를 치르면서 착용하던 글러브가 아닌 생애 마지막 경기의 의미 있는 물품이었죠. 홧김에 나머지 한 짝도 벗어던졌지만, 이내 돌려받게 되었고 현재 수소문 중에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기념품일 뿐이겠지만 인생을 다 바쳐 쌓아 온 커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물건인 만큼 매우 특별한 사연을 가진 보물인 것이죠. 데뷔부터 은퇴까지 쏟아 내린 땀과 눈물이 남아있는 물품이었습니다.


이처럼 전통 역시 위치, 시간, 기억 등은 새로 만들거나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한다고 해서 '궁극적인 정신'까지 재현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건의 의미는 소유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시시각각 변할 수 있으며, 이를 존중하고 소중히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종종 다른 사람의 물건, 음식 그리고 경험 등을 함부로 생각하고 훼손시키고 갈취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상대 자체를 존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며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숭례문 화재 사건의 범인이나 스포츠 선수의 마지막 물건을 훔치는 행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숭례문 방화사건의 범인은 비교적 접근하기 좋았던 문화재였기에 방화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쉽게 가까워집니다.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하고, 일을 같이 하면서 말이죠. 그만큼 그들의 소유물에도 노출되기 쉽습니다. 예시로 들은 몇 가지 사건은 공개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인간관계에서 역시 어쩌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스토리가 담겨 있을지 모르는 그들의 물건을 감히 하찮게 보거나 경시해서는 안됩니다.


상대방의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커뮤니티를 특별하게 가꾸고자 한다면 상대방의 물건에 대한 시선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스스로도 뿌듯한 인생을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출처 : 숭례문 화재 현장. [사진=문화재청]

참고자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39882&cid=40942&categoryId=33371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2030701912

https://www.jeonmae.co.kr/news/articleView.html?idxno=955379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68951.html

https://youtu.be/QqpaJ1wyDNM?si=wD-M6PI3-9y1xqs-

(2부) 수혈받았더니 내 몸에 타인의 DNA 있었다 f.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박종훈 교수

https://youtu.be/Xo6l4VMa9N8?si=kQAn3iIsug7S2tO6

(1부) 남의 피를 수혈받는 게 몹시 위험한 이유 f.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박종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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